땀으로 끈적거리는 그들의 몸은 좀체 식지 않았고, 바다로 떠밀려왔는지도 모른 체 한동안 서로에게 파묻혀있었다. 잠시 의자에 기대 있다가 밖을 내다본 상식은 비로소 해변에서 200미터는 떠밀려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벗어놓은 옷들도 사라졌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아차렸다. 도대체 옷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어떻게 해요. 우리.”
울먹이는 은옥을 안심시키며 상식은 선반 위에 아무렇게나 돌돌 말아놓은 무릎 담요를 펼쳐 은옥을 가려주었다. 그리고 보트의 시동을 켰다. 그러나 어찌 된 건지 시동도 켜지지 않고 달달거리다가 꺼져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료가 바닥 나있었다. 가관이다. 그 와중에 상식의 고추는 식을 줄 모르고 내내 덜렁거렸다. 상식은 운전석 위에 깔아놓은 때 묻은 방석으로 아랫도리를 가린 채, 하는 수 없이 해양경찰에 구조요청 무전을 쳤다. 올 때 입을 옷 두어 벌도 가져다 달라고 어이없는 부탁까지 했다.
해양경찰이 도착했을 때 은옥은 선실에 웅크리고 숨어있어 다행히 해경에게 들키지는 않았지만 여자랑 있다가 봉변을 당했을 거라는 건 그들도 짐작했으리라. 오늘의 일은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상식은 몇 번씩 악수를 하고 고개를 숙였다.
경찰에게 얻은 약간의 가솔린으로 어두운 등대 밑에 조용히 배를 대고 바다를 빠져나온 은옥과 상식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헤어지는 순간에도 상식은 은옥의 손을 놓지 못하고 다섯 손가락 깍지를 단단히 낀 채 은옥의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은옥의 손은 작고 부드럽게 힘이 없었다.
상식은 핸드폰이고 지갑이고 다 잃어버리고 허름한 행색을 한 채, 파란지붕 집으로 돌아왔다. 영순 엄마는 영순이와 안방에서 티브이를 켜놓은 채 이미 잠이 들어있었다. 상식은 조용히 딸내미 방으로 가서 요도 깔지 않고 담요 하나만 덮은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은옥이 보였다. 그 배꼽에서 정확히 한 뼘 아래의 오통통한 부드러운 감촉. 꿈처럼 바다 한가운데 떠밀려온 것도, 옷이고 뭐고 다 잃어버린 거, 해양경찰의 도움으로 무사히 돌아온 것, 모든 것이 하루 동안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고갈비집에서 상식이 은옥에게 낚싯배 이야기를 하는 순간, 그녀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상식 곁에 바짝 다가왔다. 은옥이 상식 옆에 다가와 앉아 이리저리 옷매무새를 만지더니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 더 풀었었다.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만 풀었을 뿐인데도 그때부터 신기하게도 상식의 눈에 은옥은 매우 육감적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녀가 일부러 천천히 행동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상식의 눈에 은옥은 슬로비디오처럼 나른하게 움직였다. 풀어진 블라우스 앞섶 사이로 은옥의 볼륨있는 살결이 보였다. 잔털이 살아있는 탐스런 복숭아 같았다. 그때부터 상식은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던 것 같다.
상식은 딸내미 방에 누워 딸내미가 붙여놓은 천정의 반짝이는 야광별을 보며 또다시 발기되는 고것을 주물러대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영순네가 딸내미 방에서 잠이 든 남편을 위해 멸치 다싯물에 청국장을 맛나게 끓이고 있다. 무를 통째 손에 쥐어 잡고 연필 깍듯 쓱쓱 얇게 어슷썰기 해서 찌게에 넣어야 무가 청국장과 잘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두부와 돌려 깎기 해 넣은 무를 넣고 보드랍고 고소하게 푹 끓인 청국장을 상식은 제일 좋아한다.
“영순 아빠, 어서 일어나요. 해가 중천에 떴어라.”
영순 엄마는 영문도 모른 채 늦게 돌아온 남편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잠이 든걸 미안해하는 눈치다.
상식이 눈을 떴을 때 볼이 발그레하고 조금 넙데데한 얼굴이 눈앞을 꽉 채웠다. 마누라 얼굴이다. 영순네가 남편 옆에 쪼그리고 앉아 남편 목덜미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다. 영순 엄마는 남편 목덜미에서 풍기는 약간 기름진 남자 스킨 냄새를 좋아한다. 상식은 눈을 떴다가 다시 돌아 누워버렸으나 이내 아내에게 귀엽게 볼기짝을 맞고서야 궁시렁거리며 일어나 앉았다.
“어깨 좀 주물러봐. 어젯밤에 그 순천지점 직원들이 얼마나 술이 세던지 내가 당최 당해내지 못하겠다니께.”
어제는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이랑 술 한 잔 한다고 둘러댔던 터라 능구렁이처럼 상식은 아내를 속이며 엄살을 부렸다. 은옥이 힘없이 얇기만 하던 손으로 안아주고 깨물던 어깨였다. 영순 엄마는 남편의 잔 근육 있는 어깨를 정 넘치게 손아귀 힘을 다해 한참을 주무르며 오지게 쓰다듬었다.
“당신 좋아하는 청국장 끓였응께 빨리 아침 먹읍시다.”
마을에서 제일 신식으로 꾸민 영순네 주방에서 모처럼 세 식구가 모여 오순도순 청국장에 조개젓과 깻잎김치와 달걀말이로 아침식사를 맛나게 했다.
상식은 청국장의 보드라운 두부를 먹으면서도 은옥을 생각했고, 통통한 달걀말이를 먹으면서도 은옥을 생각했고, 깻잎김치를 한 장 집어 하얀 쌀밥에 싸서 먹으면서도 은옥을 생각했다. 은옥은 정말 부드럽고 통통하고 특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