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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금 턱을 괴고 앉아 있나요?

by injury time

몇 해 전에 3개월 기간제 근로를 한 적이 있었다.


같이 근무하는 직원은 총 12명, 대부분 내 또래의 유부녀들이었는데 청일점으로 50대 후반의 아저씨가 껴있었다. 그는 약간 머리가 벗어졌고, 왜소한 체구에 조용한 성격이었다. 눈이 상당히 안 좋은지 돋보기안경같이 볼록한 렌즈의 안경을 쓰고 다니셨다. 낯을 많이 가렸던 그분이 유부녀들이랑 3개월을 같이 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몇 마디 대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웬일인지 혼자 사시는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초라해 보였다. 하루 종일 말없이 업무를 보다 퇴근하곤 하셨는데 어느 날 그의 노트를 보고 깜짝 놀랐었다. 필체가 예술이었다. 착실하실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글씨가 끝내줬다.


나는 그렇게 근무를 하다가 일신상의 문제가 생겨 중간에 그만두고 연은 끝났었다.


일 년 후쯤 도서관에 갔는데 그분이 거기서 근무를 하고 계셔서 다시 한번 반갑게 인사하고 끝냈다.(뭐 반갑게 인사하는 건 항상 내쪽이었지만)


그리고 그를 얼마 전에 또 만났다. 2년 만이었다. 관공서에 뭔가를 접수하러 갔다가 그분이 거기 담당자로 앉아계셨다. 나는 한눈에 그분을 알아봤다. 그는 내가 건넨 서류를 받다가


"어,,, 어디서 뵙던..."


하며 나를 한동한 쳐다보셨다.


"네, 맞아요 예전에 같이 일 잠깐 했고, 2년 전에 도서관에서도 한번 뵈었죠?"


나는 세상 다정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는 그때서야 나를 기억했고


"그때 남편분 편찮으셔서 그만두셨었죠?"


하며 나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셨다.


"엇, 기억하시네요"

"네, 남편분은 지금 괜찮으시죠?"

"그럼요"


그렇게 그분과 어색한 대화를 이어갔고, 그분은 내 서류를 검토하고 계셨다. 머리숱 없는 정수리를 보이며 내 서류를 보고 있을 때 나는


"그때 같이 일할 때 글씨 정말 잘 쓰셨던 거 기억해요"

하며 창구에 바짝 다가가 턱을 괴고 앉아 또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 그분이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이제, 그렇게 잘 못써요"


그의 눈밑에 난 사마귀 점이 참 웃겼다. 왜 내가 턱을 괴고 그분과 눈웃음을 치며 대화했는지 알 수가 없다.




학생 시절, 수업 시간에 지루하게 느낄 때 종종 턱을 괴고 있었던 경험이 있다. 턱을 괴는 행동은 지금의 상태로 좌절이나 지루함을 느낄 때에 나오기 쉬운 행동이라고 한다. 불만이나 지루한 감정을 품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외로움이나 불안을 느낄 때 자신의 몸의 일부를 만짐으로써 허전한 마음을 채우려는 행위를 '자기 친밀 행동'이라 하는데 턱을 괴는 것도 그런 행동 중 하나라고 한다. 헐, 턱을 괴는 게 마스트베이션의 일종이라니; 이런 변태 같은 여자 같으니라고는!


생각해보면 혼자 커피집에 앉아 있을 때도 종종 턱을 괴고 앉은 적이 많았다. 나도 모르게 턱을 괴는 이유가 도화살이 껴서 그런가 착각했었다.


도화살 있는 여자-

어린아이 같은 순수하면서도 꾸밈없는 매력을 가진 사람. 주변에 애정표현을 아낌없이 하기 때문에 그만큼 모여드는 사람도 많다. 호기심이 많고 감정에 대해 꾸밈없이 표현하지만 변덕스럽고 무책임한 성향이 있어 연애를 할 때 쉽게 질려하거나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있다


나는 스스로를 미화시켜 도화살 있는 매력적인 여자로 생각했었나 보다.


내가 그분 앞에서 바짝 다가가 기울이고, 턱을 괴고 있었던 이유가 외로움과 지루함의 표현이었다니 뭔가 발가벗겨진 기분이 든다.


하긴 이젠 뭔가 개선될 일도 없고, 달라지거나 폭삭 망할 일도, 용기 있게 독립을 선언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세계 정복을 한다고 배낭 하나 메고 나갈 일도 없고, 건드리기만 해도 뜨거워질 사랑을 해나갈 일도 없고, 더 이상 예뻐질 일도 없고, 더 잘 살 일도 없으니 외로움과 불안, 지루함 같은 게 내 온몸에서 뚝뚝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스스로를 위로한다.*


자신 앞에 바짝 다가가 턱을 괴고 앉은 여자를 발견하면 얼굴 붉히며 긴장하지 말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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