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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은 예뻤다. 3

청년과의 재회

by injury time

청년과 재회한다. 브런치에 내가 쓴 청년에 관한 글 두 개를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꼬시려고 브런치에 청년에 관한 글을 쓴 게 아니지만, 어쨌든 브런치 글로 인해 청년과 나는 다시 재회하게 되었다.

청년은 글이 너무 재밌다고 흥미롭게 반응했다. 세 번째 글을 위해 점심을 사주기로 했다. 어차피 청년이나 나나 한가한 실업자로 돈은 많고 시간은 더 많은 때였다.

어릴 때 가끔 만났던 유부남 아저씨 같은 텐션을 보이며 그와 약속을 했다. 그리고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특수 과외, 열공하고 싶을 정도로 기대되는 만남이었다. 너무 멋 내지 않는 모습으로 청 반바지에 흰 티, 그리고 이웃에게 빌린 니트 뷰스티에를 입기로 했다. 오랜만에 여름을 겨냥한 네일아트도 하고, 청년을 만날 날만 기다렸다. 차에서 들을 음악도 준비했다. 젊은 이웃에게 요즘 유행하는 노래가 뭐냐고 했더니 '놀면 뭐하니'로 뜨고 있는 2PM 노래를 다운받으라고 했다. 차에서 90년대 댄스곡만 듣던 나는 새로운 최신 노래로 장착 완료했다.

그리고 근처 맛집을 검색했다. 처음에는 카페 형식의 부대찌개를 생각해냈지만 청년이 매운걸 못 먹는다고 해서 이영자 추천 돈가스 나라를 픽 했다. 이 부분에서 청년에게 약간, 병아리 눈물만큼 실망했다. 매운걸 못 먹는 남자는 매력이 없다.

제일 문제는 차 블랙박스였다ㅠ 뭐 할 건 아니지만 남편이 청년과의 대화를 확인하면 안 될듯했다. 당연히 남편에게는 청년과의 만남은 비밀이어야만 한다. 블랙박스 지우는 법을 찾아보고, 처음부터 블랙박스를 꺼놓으면 어떨까 하여, 이리저리 만져보고 꺼보고 했다. 하지만 작동법도 몰랐다. 바람피우는 남녀의 삶이 참 고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는 모든 걸 내려놨다. 뭐 나쁜 짓할 것도 아니고 행여나 남편이 재수 없게 블랙박스를 확인한다고 해도 할 수 없다. 그냥 소설 때문에 만났다고 말하리라, 자신감을 가슴속에 심어 넣었다.


청년을 만나는 날, 날은 한낮 체감온도 40도를 육박하는 더위로 지글지글 끓었다. 그리고 아파트 입구에 그가 피어오는 아지랑이와 함께 다소곳이 서있었다.

오랜만에 본 청년의 얼굴이 약간 야윈 것 같았다. 집에서 논다고 청년의 부모님이 눈치를 주나, 약간 짠한 생각이 들었다.

"여자 친구랑 헤어졌어요"

청년이 대뜸 내게 말했다. 아, 카톡에 담겨있던 앳된 여자 친구 사진이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아 이상하다 했는데 헤어졌다니 더욱 안쓰러웠다. 2년이나 사귀었다고 했고, 말다툼을 심하게 해서 영영 끝냈다고 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왜 그 여자 친구가 미웠을까, 얼마나 심한 얘기를 우리 청년에게 했길래 헤어졌을까 안타까웠다. 청년의 얼굴이 반쪽인 이유가 그 여자애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그 젊은 여자애가 괘씸했다.

그리고 너무나 쿨하게

"같이 살 때 키우던 고양이가 보고 싶어요"

라고 했다. 띠로리 ㅠㅠㅠㅠㅠㅠ

동거를 했다는 얘길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하는 청년이 놀라웠다. 여자 친구 집에서 6개월 넘게 같이 살다가 싸우고 나왔다고 했다. 맨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반복하는데 이번에는 진짜 헤어진 것 같다고 했다. 남녀의 연애는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어렵고 복잡하고 지리멸렬하다.


밥을 먹고 커피집에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알바를 하는 아이의 친구 엄마를 맞닥뜨렸다.

"언니, 여기 웬일이에요? 저 여기서 알바해요. 아, 큰아들인가?"

내 앞에 앉은 청년을 보며 인사를 한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아들 아니라고 하고 더 이상 설명은 하지 않았다.

청년과의 대화는 10분이면 충분했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청년은 웃을 때 눈밑 애교 살이 통통하게 예뻤지만, 그것도 우리 아들이 더 나았다.

또 재난지원금을 국민들 전체에 다 주는 게 나은지, 상위 몇 프로는 안 주는 게 나은지, 이런 걸 묻는데 우리 아들보다 더 말주변이 없었다. 자기소개서 쓰는 걸 도와주겠다고 했더니 자기 글씨 진짜 못쓴다고 어른들이 연습 좀 하라고 한다고 투덜거렸다. 악필은 유전일 수 있다고 위로했더니

"공부 많이 안 해서 그래요"

했다.

할얘기가 없어서 영화 얘길 꺼냈다.

"영화는 좋아해요?"

"호러물 빼고 두루두루 잘 봐요"

청년은 예쁘게 눈웃음까지 보이며 대답했지만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영화보는 남자를 좋아했지만 청년은 그냥 개인취향 없는 우리 남편같은 OCN 매니아일 뿐이었다. 아, 이 청년은 나를 오늘 몇 번을 실망시킬는지,, 하지만 무엇보다 꼰대 같은 내게 더욱더 실망했다.


"이제 찾아보지도 말고 검색하지도 말아요? 알았죠?"

"자꾸 찾게 돼요. 여자 친구가 지금 뭐할지 궁금해서"

나는 새로 쓸 내 글을 찾지 말라는 뜻으로 얘기했는데 청년은 헤어진 여자 친구로 머리가 가득 차 있는 듯했다. ㅠㅠㅠㅠ


서빙 보는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모습은 참 예의 바르고 예뻐 보였지만 내실은 차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24살 남자애에게 꽉 찬 내공까지 기대한 내가 잘못이다. 청년은 중2 때부터 지금까지 사춘기 같다고 했다. 24살까지 사춘기로 지낼 우리 아들들을 생각하니 까마득했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도 내내 청년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내가 참 비참했다.


청년과의 재회는 기다리는 동안 달콤했고, 보고 있는 동안 눈이 부셨고, 차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청년의 뒷모습은 애처로웠다. 꼭 다시 헤어진 여자 친구와 다시 잘 되길 바라며 내 한심한 도발은 여기서 끝났다. 늙은 남편 등이나 긁어주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오늘은 웬일인지 한껏 발기됐다가 쭈그러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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