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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은 예뻤다. 1

장대비가 언제 오려나

by injury time Jul 01. 2021

- 안녕하세요?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내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핸드폰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나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 수업 같이 듣고 있어요.


그가 두꺼운 컴퓨터 자격증 교재와 내 무릎 위에 올려진 교재를 번갈아보며 내게 말했다. 같이 수업 듣는 청년이다.


- 아, 네. 여기서 버스 타세요?


- 네 250번 버스 타요.


- , 나도 그 버스 기다리는 거예요. 25분 기다려야 된대요


나는 버스시간을 알려주는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그 청년과 나는 컴퓨터 활용능력 2급 자격증 수업을 같이 듣고 있다. 한 반에 12명, 그중 그는 제일 젊고 예쁜 청년이다.


 - 너무 기 같은데 몇 살이에요?


- 스물넷이에요


청년은 눈웃음을 치며 수줍게 나이를 밝혔다. 내가 보기에는 스무 살도 안된 학생 같아 뵈서 물어본 말이었다. 어린 남자애를 보면 자꾸 아들 같아서 한 번씩 더 쳐다보게 된다. 엄마 마음인지, 아니면 내가 로맨티시스트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젊은 남자애를 보면 옷 입는 스타일부터 헤어스타일, 지금 하는 일,  여자 친구와의 관계, 장래희망, 그의 사상, 이런 것들이 모조리 관심거리다. 우리 아들도 앞으로 몇 년 후면 걸어야 할 길이라 더 관심이 생긴다.


청년은 180은 되어 보이는 키에 약간 웨이브 진 까만 흑빛 머리카락,  티끌 없이 하얀 피부에 옷도 하얀 면티에 카키색 린넨바지, 그리고 쪼리를 신고 다녔다.  요즘 학생들이 사이에 유행하는  커다랗고 동그란 안경을 코밑에 걸치고 다녀 약간 맹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깨도 넓고 깔끔한 스타일이라 눈에 들어오는 청년이었다. 거기다 순해 보이는 검은 눈동장에,  작은 14k 링 귀걸이를 하고 다녀 나름 Mz세대의 느낌이 난다.  같이 수업 듣는 사람들이 간식 같은 걸 돌리면 매번 책상 앞으로 다가가  아버지뻘 되는 어르신들에게 다정하게 '잘 먹을게요, 고맙습니다.'라고 쪼그리고 앉아 소곤소곤  인사하고 가곤 했다. 그 나이에 껄렁거릴법도 한데 예의 바르고 순진하게 보였다. 난 왜 또 얠 이리 관찰했을까,  


수업이 끝나고 모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그 청년은 매번 쿨하게 계단으로  내려가는 모습도 참 근사했다. 한 번은 나도 그 청년을 따라 얼른 비상계단으로 갔는데 그 청년이 나를 위해 비상계단 문을 열아주고 내가 들어오길 기다려준 적이 있었다.


- 고맙습니다


나는 목례를 하고 계단을 내려갔더랬다. 그날따라 계단 내려갈 때마다  구두에서 또각또각  소리가 나서 참 민망했었다. 청년은 나를 앞질러 두세 칸씩 뛰어넘어 쏜살같이 내려가 사라졌다. 5층까지 1층 내려가는 계단이 참 빙빙 어지러웠었다.





청년과 나는 버스정류장 벤치에 나란히 앉아 20분 넘게 같이 250번 버스를 기다렸다. 어디서 내리냐고 했더니 '이 편한 세상'에서  내린다고 한다.


- 엇,  나는  한남에서 내리는데


청년은  나보다 두정거장 앞에서 내리는 거다. 같은 동네 산다니까 괜히 친근하게 느껴졌다.

집에서 학원까지는 버스 기다리고 타는 시간을 합치면 1시간은 족히 걸린다. 처음에는 운동삼아 버스 타고 다녀야지 했다가 며칠 만에 포기하고 차로 다니고 있다. 하지만 청년을 만났던 그날은 차에 이상이 있어 정비소에 맡기고 버스로 이동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날은 마침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었고 두꺼운 교재에 우산까지 참 번거로운 날이었다.

청년과 몇 마디 하고 나니 할 말이 떨어져서 슬며시 블루투스 이어폰의 전원을 켰다. 청년도 잠시 후 핸드폰 안의 게임을 열었다.


버스가 도착했다. 난 극성스런 아줌마처럼 아직 정거장에 도착하지도 않은 버스를 탈 준비를 하고 일어서서 손을 흔들어댔다. 그리고 맨 먼저 올라 타 몇 좌석 안 남은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청년은 다른 승객 다 타고 맨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랐다. 내 옆자리가 마침 비어있었고,  잠시 쭈뼜거리더니 내 옆에 앉았다.

우린 서로의 취향에 맞는 소일거리를 하며 말없이 30분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참, 우리란다, 미쳤다;;)청년의 몸에서는 비누냄새가 비 냄새에 섞여 헤이즐럿 향이 났다. 버스에서 내릴 때서야 청년은 내게 학생처럼 공손하게 '안녕히 가세요' 하고 총총총 떠나갔다.


그 후 나는 다시 내차로 학원을 다녔고, 청년과는 더 이상 친해지지 않은 채 다시 예전처럼 각자 수업하기에 바빴고, 눈도 한번 맞출 일 없이 수업이 끝나간다.


나는 요즘 부쩍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비가 언제나 오려나.....

언제 장대비가 한번 왕창 쏟아졌으면 좋겠다.



비 오는데 내차로 같이 가요.
내가  데려다 줄게.



입장 바꿔 내가 나이 50을 바라보는 중년의 유부남이었다면 젊은 여자애한테 껄떡거리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을 텐데,  참,,,이게 남성들이 말하는 부당한 선입견인가, 남자들은 여자를 려자로 본다는,,
난 그저 꽃다운 그 청년이 예뻐 보였을 뿐,,,숲에 핀 꽃을 예쁘다고 눈길이 갈 뿐, 꺾어서 집에 가져가기에는 번거롭고 쓸모없는 들꽃이지 싶은, 그런 생각이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장대비는 결국 오지 않았고,  그렇게 수업은 아쉬웁게 종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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