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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의 소개팅을 응원합니다.

by injury time Jul 13. 2021

내가 K에 대해 이곳에  그의 이야기를 쓸 줄은 몰랐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 근데 할 말이 참 많다. 부디 관계자분들이 보지 않기를 바란다.






K는 퇴직이 얼마 안 남은 월급쟁이다. K는 55미혼남성이다.  미혼이라 그런지 55세처럼 보이지 않고 자기 관리 잘한 돈 많은 중년 같다.  '돈 쓸 때도 없는데 옷이라도 비싼 거 사 입어야지'  하면서 골프티셔츠 한 장에 십만 원 넘는걸 덜컥 잘도 산다. (우리 고딩 아들 세뱃돈은 아직도 이만 원이다.)


사실 K는 자기 자신과 직장동료들에게만 사람 좋은 모습이.  가족들에게는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고 쫌생이다. 너무 예민해서 밤마다 이웃에서 침대흔들리는 소리가 난다며  번번이 이사를 다니고, 간단하게 밥 먹을 때도 락앤락 이런 용기 절대 안 쓰고 팔순 노모에게 반드시 접시에 덜어 달라고 한다. 또 매일 외출하고 들어오면(아무리 만땅으로 취했어도) 양말과 메리야스를, 아니 대부분 옷들을  손빨래로 하고,  조미료 없는 식단을 고수하고, 비린내가 나네 풋내가 나네 은내가 나네 쉰내가 나네, 하면서 매사에 코가 개코다. 또 언젠가 내가 물김치를 담궈 갖다 줬는데 양파가 안 들어갔네, 하면서 꼭 한마디 덧붙이고 먹는다. 또 차를 얻어타고 아이들이랑 3~4시간 같이 가는데도 냄새나고 지저분해진다며 아무것도 못먹게 하고 휴게소도 안들린다. 우주 밉상이다. 헥헥,,, 너무 흉을 봤다. 그치만 진짜 까다롭고 어려운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결혼할 때 절값으로 현금이 없다며 빈봉투를 줬다는ㅠ


뭐 내가 데리고 살 거 아니니까 난 그냥 무시한다.

40대에는 그래도 선자리가 간간히 들어왔지만 몇 년 전부터는 아예 만남 자체가 없는 거 같다. 이혼한 부동산 여사장이랑 몇 달 사귀었다는 소리를 듣긴 했다. 솔직히 부동산 여자가 불쌍했고, 깨졌다고 했을 땐 쌤통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전, 소개팅 자리가  들어왔다.

빠밤,


상대 여성은 54세  사업가란다. 그것도 건설 쪽 사업을 한단다. 포스 장난 아닐듯하다.

여자 쪽에서 K의 사진을 요구했고, 얼굴은 합격이었는지 언제 한번 보자고 연락이 왔다.  K는 장남이고 시골에 부모님 모두 살아계시지만 모실 필요는 없다.  또한 K 모아둔 돈은 없지만 여자 쪽에서 돈 걱정은 없다고 쿨하게 정리했다 한다. 주선자의 얘기를 듣자니 그 여자분 인물은 없다고 하고,  그 주선자의 부인 말로는 예쁘진 않다고 한다. 참, 말이 어렵다. 참고로  K는 한때 이지애 아나운서를 마음에 들어했었다ㅠ 어떤 취향인지 알만 하다. 귀엽고 상냥하고 긍정적이고 말 잘듣는..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중년여성.


여자가 참 외로웠나 보다. 54세에 동거도 아니고 결혼을 결심하다니,

그들의 만남이 기대가 된다.  사실 호기심 많은 나로서는  K보다는 여자 쪽이 기대가 된다. 외로움에 치를 떨었나 보다. 이른 봄부터 이 만남 얘기가 오간 거 보면 좀 짠하기도 하고, 뭐 이제 와서 면사포 쓰고 결혼까지 할 생각인지 참 궁금하다. 아직 K는 엄두가 안 나는지 시간 날 때 한번 보겠다고만 한다. 주위의 관심이 부담스럽나 보다.

어찌 됐건 대부분의 미혼들이 40대까지는 일에 치여, 자유롭게 연애도 간간이 하며 비혼주의를 고수하다가도 50살이 넘으면 생각만큼 씩씩하게 살아지지가 않나 보다. 나로서는 쌤통이다. 평소에 비혼주의랍시고 자유연애만 하는 사람을 몇 봤기에 괜한 악마의 미소가 지어진다.

어쨌든 결혼상대로 믿을만한 남자를 찾는 거 보면 그 여성분, 돈은 많고 얼굴은 못생겼으리라 나 혼자 상상해본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벌써 졌다.  확실히 로맨트스트인가 보다. 그들이 부럽다. 뭔가 다시 시작해서 목하 열애를 한다고 생각하니 내가 다 설렌다. 그들이 중년에 만나 평화롭고 안정적이고 찐하게 사랑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지금껏 냉혈안이었던 K의 인간적인 면이 궁금하다. 매일 밤, 그 집 문 앞에서 그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엿볼지도 모르겠다. 나 음란마귀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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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결과가 좋아서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 여성분을 만나 꾸욱 안아주어야지

 "어서 오셔요, 그동안 우쭈쭈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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