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멕시코에서 배워온 값진 선물
어른들이 늘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대학생 때 꼭 교환학생이나 인턴이든 뭐든 해외생활을 경험해 보라는 것이다. 어떤 국가든 상관없다. 보통 여유가 어느 정도 있는 집안의 경우 여자들은 대학교 1학년이나 2학년을 마치고 1년간 해외 연수를 보내주는 경우를 주변에서 더럿 보았다. 나는 국비를 통해 미국에 다녀왔고 멕시코는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해외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그 어느 것도 좋으니 해외는 20대 때 꼭 다녀오라고 추천하는 이유를 말해보고자 한다.
대한민국은 10대 경제대국이다. 현재는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G7과 대등하다는 전문가들의 인터뷰나 통계자료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G7 중 이탈리아와는 이미 GDP나 국가경쟁력, 발전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훨씬 우위에 있다. 유럽의 선진국인 스페인은 이미 넘어선 지 한참 됐다. 일본은 삼성 같은 세계적인 기업도 없다. 대한민국의 현 위치는 가히 비상한 발전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아주 작은 소국에 불과하다. 그 소국마저 반으로 쪼개져 있다. 미국처럼 광활한 대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우디처럼 석유가 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인적자원 하나만으로 이 작은 나라가 현재위치까지 온 것이다. 해외에 나가보면 한국인들의 사고와 생활방식이 아직도 타국가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처지고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느낀다. 급격한 성장에 따른 부작용이다.
해외에 나가서 생활해 보아야만이 알 수 있는 것은 내 자아 안에 삶에 대한 비교대상이 생긴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이 전체인 줄 안다. 자의식에 파묻혀 더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게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 비교의 이면에 경제적인 면보다 현실적으로 말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행복한 삶‘이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1960년대부터 급격한 성장을 이뤄온 대한민국은 행복보다는 내 자녀 뒷바라지, 먹고사는 문제에 급급해 조금이라도 더 잘 살아보려 부모의 희생아래 지금까지 커 왔다. 자연스레 우리는 그것을 배우며 자라왔고 획일화된 한국 정서가 자리 잡았다.
삶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 나 또한 글을 쓰고 내가 행하는 모든 일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항상 누군가와의 경쟁에서 이겨야만이 그것이 올바른 삶이라 여겼고, 내가 세운 목표(학벌, 취업, 부, 명예)를 이뤘을 때 모두의 부러움과 축하를 받는다. 영원한 건 없다. 우리는 언젠가 다 죽는다. 이 유한한 삶 속에서 어떤 게 진짜 행복인지를 생각해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한국인은 자유가 주어졌을 때 어떻게 노는지를 몰라 허무하게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진짜 행복하게 여가시간을 보내는 외국인들은 왜 그런 것일까? 그건 관계에서의 눈치 없는 사고와 사람 간의 건강한 대화가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인들은 남의 눈치를 거의 보지 않는다. 내 삶의 중심에서 모든 의사결정을 하고 불의가 있으면 당당히 얘기한다. 인스타그램 각종 SNS는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훨씬 많다. 한국인은 여행에 가서도 어떻게든 더 멋지고 나은 모습을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수천 개의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허비한다. 모든 삶의 중심이 내가 아닌 타인에 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해변에서 여자들이 비키니를 입고 있다. 이를 신경 쓰는 사람은 전 세계에 세 국가 사람밖에 없다.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이다. 일본인, 한국인은 선글라스 사이로 어떻게든 눈을 피하는 척을 하고, 중국인들은 그냥 대놓고 쳐다본다. 이래서 한국여자들이 외국에 여행 가서만 과감한 옷을 입고 한국에서는 입지 못하는 것이 이런 폐쇄적인 문화나 개성이 묵살된 사회에 물들어 그런 것이다.
요즘 2030에게서 정형화되고 획일화된 한국문화가 조금씩 정상적으로 개성 있게 변화하고 있는 것은 불행 중 그나마 다행이다. 내 가장 친한 친구는 획일화된 한국 취업을 용기 있게 포기하고 영국 유학 중, 영국에서 인기 있는 도넛에 아이디어를 얻어 창원에 도넛집을 오픈해 대박을 쳤다. 또 다른 멕시코 교환학생을 함께 한 친구는 카리브해 여행을 하다 유람선을 보고 반해 현재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해외경험은 인생의 이런 터닝포인트를 제공하기도 한다.
미국 국민 시트콤 프렌즈나 모던패밀리를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리액션이 다소 한국보다 크다. 말 그대로 아메리칸 리액션이다. 웃기면 호탕하게 웃고 슬프면 목이 찢어져라 울고, 감정표현 자체가 크다. 아까 내 옆에서 햄버거를 먹던 흑인 아주머니는 쓰러지실 정도로 숨을 컥컥 대며 웃으셨다. 남 눈치를 보지 않고 내 감정표현에 솔직하고, 감정을 모두 분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 사회생활이라는 명목아래 건조하게 포장된 언행들 예를 들어, 웃기지도 않은데 직장상사의 농담에 따라 웃는 모습들, 뒤에서 욕하면서 앞에서는 가식적인 웃음들 참 신기루처럼 덧없고 의미 없다. 다 타인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생기는 것들이다.
또 다른 점은 외국에 가면 진짜 어떤 게 삶의 행복인지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람들 간의 대화다. 핸드폰이나 각종 영상매체가 아니라 가족 간, 친구 간 얼굴을 보며 끊임없이 대화하고 웃고 떠들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유대감을 쌓는다. 초고속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은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중요한 건 기술발전이 아니라 친구를 만나도 서로 대화 없이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지금 청소년, 20대의 사회문제를 돌봐야 한다. 은둔형 외톨이가 왜 생겨난다고 생각하는가? 근본적인 사람 간 소통의 부재가 자의식강화 및 과잉분노로 변질된 것이다.
외국 생활을 하다 보면 이처럼 나의 여태껏 삶이 잘못됐다기보다 “아 이런 식으로도 살아갈 수 있구나, 많은 것을 놓치며 살았구나”라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더 넓게 봐야 한다. 특히 지금이 20대, 30대라면 더더욱 그렇다. 아무리 내가 지금 한국 교육문화 아래 반에서 1등을 하고, 집도 유복하고, 걱정 없는 삶을 산다 해도 외국에 어떤 이는 당신의 삶을 하나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불행하다고 느낄 수 있다. 모든 행복의 근원은 ‘자유’에서 온다. 이제는 먹고살 궁리가 끝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내 유한한 시간과 돈을 의미 있는 행복을 위해 진정으로 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