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 어른들이 맨날 하는 소리가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이런 말을 듣고 살았지만 나도 똑같이 이 말을 하고 다닌다.
'아, 어릴 때 해외여행 좀 더 많이 다닐걸', '해외여행 못 간 게 너무 후회된다'
다들 한 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나는 첫 해외여행을 운이 좋게도 스무 살 때 갔다. 외삼촌과 엄마가 사촌동생을 가이드해 주는 조건으로 보내줬다. 농촌봉사활동을 하는 도중 연락을 받고, 하루아침에 극과 극의 삶을 누렸다.
첫 해외여행지는 유럽이었다. 지나가는 풀, 땅바닥에 널브러진 돌마저 신기했다. 대한민국 안에서만 20년을 살아온 내게 유럽은 나를 한없이 작은 존재로 만들었다. 유럽 이후로 그저 후진국으로만 느껴지던 한국이 이후 멕시코에도 살아보고, 동남아시아 여행도 다녀보니 여기면 충분히 살만하다 싶었다. 새벽 네시에 걱정 없이 술을 마시고 돌아다닐 수 있는 나라, 모든 인프라를 누리며 월 45만 원 원룸에 살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미국 뉴욕에 있을 때 단칸방 내 월세는 200만 원이었다.
내게 여행이 주는 의미는 가진 것의 소중함이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했고 안도했다.
반대로 술자리를 생각해 보자. 민증나이로 20살이 되자마자 술집에 들어가 술을 진탕 마시고, 친구들과 밤새 놀았던 때가 있었다. 한순간이었다.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해도 하나둘 결혼을 하고 가정이 생기면서 사라져 간다. 지금은 남은 사람도 많이 없다.
하지만 여행은 다르다. 2015년에 친구들과 베트남에 갔던 카카오톡 멤버는 아직 그대로 있고, 사촌동생과 명절에 만나면 아직도 함께 했던 태국여행을 함께 추억한다. 5년 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의 얘깃거리는 함께 했던 홍콩여행이다. 멕시코 출장 때 내가 살았던 멕시코 집에도 혼자 가보았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런 향수가 너무 좋다.
여행은 이토록 오래 기억에 남는다. 지금을 더 풍족하고 가치 있게 해 주며, 이 추억 덕분에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갈 또 다른 힘을 준다.
그렇다면 단지 이런 추억때문에 어른들은 학생 때,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여행을 가라고 하는 걸까? 그때가 아니면 시간이 없어서? 우물 안 개구리라서?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이 주는 무한한 가치'이다.
나는 미국에 있을 때 아주 영세한 현지 물류업체에서 일했다. 모든 환경이 영어로 이루어진다는 장점 말고는 모든 게 부분이 불만투성이였다. 영업을 하고 있지만 괜히 하찮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고, 인스타그램을 보면 어떤 애들은 결혼을 하고, 멋진 차를 뽑고, 대기업 사원증을 걸고 하루하루 발전하는 모습들을 볼 때면 내가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타지 이방인이 어디 마음 둘 데도 없고, 늘 무언가 놓치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당시 27살의 나는 내가 가장 현명하고, 값진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을 왜 그땐 몰랐을까? 미국에서 영어로 영업해본 경험은 앞으로도 못할 경험이고, 영업을 발로 뛰며 다양한 고객들의 삶의 태도를 엿봤다. 많은 것을 배우며 지냈다.
나는 지금 1층에 살고 있는데 곧 이사할 아파트도 1층이다. 어릴 적 살던 아파트도 1층이다. 우연적으로 거의 1층에만 살았다. 1층에서만 살았던 내 아파트는 한없이 높아 보였다. 나는 늘 1층의 시야에서만 생활했다. 그래서 늘 호텔에 놀러 가면 고층을 달라고 한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이 세상이 흔치 않기에 얼른 눈으로 담아야 한다. 호텔에서 높은 곳에서 바라본 서울은 고층아파트도 매우 작아 보인다. 우리 아파트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내 주변 환경, 내 생각,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위에서 보면 그저 작은 먼지와 같다.더 넓게 생각하고 넓은 시야를 가져야 내 옆의 것이 보이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인간만 그런 것이 아니다. 꼽등이도 컵에 가두면 처음에는 점프를 하다 계속 부딪히니 나중에는 부딪히기 직전까지만 아슬하게 점프를 한다. 컵을 치워도 더 높게 점프하지 않고 컵이 있을 때만큼만 점프를 한다. 이렇듯, 경험의 관성은 나를 둘러싼 배경이 모두 결정한다. 경험으로 배경지식을 늘려가야 하는 이유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한정자원은 시간과 돈이다. 돈은 회복성과 탄력성이 있다. 지금 돈이 없더라도 나중에 다시 벌면 되고, 혹은 지금 돈이 많은 백만장자라도 하루아침에 쫄딱 망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은 그렇지 않다. 한번 지나면 끝이며, 되돌릴 수도 없다. 되돌리지 못하는 과거에 집착 않고 현재를 살기 위해서는 늘 긴 안목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갭이어'라는 것이 있다. 학업을 잠시 접고, 무언갈 새롭게 배우거나, 진로를 탐색하거나 1년 정도 자아성찰을 하면서 내 인생을 그려나가는 시간이다. 이처럼 한치 멀리서 인생을 바라보고, 조금 늦더라도 바른 길로 갈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꿈을 꿔본 적이 있을 것이다. 평소에 한 번도 생각하지도 않았던 모르는 사람이나, 연예인, 사물들이 등장 할리가 없다. 꿈도 내가 생각하고 원하고 늘 내 곁에 있는 무언가가 나온다. 즉 내가 경험한 것에서만 나온다는 것이다. 꿈도 이런데 우리 인생은 안 다르겠는가.
대기업, 전문직 이런 직업들은 겉으로 보면 번지르르하다. 검사 판사는 특히 일반인 기준 초엘리트집단이다. 그런데 부장판사로 진급이 누락되면 퇴직을 하는 판사가 정말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대기업도 40대가 넘어가면 진급누락이 되고 내 후배가 진급을 하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퇴사를 한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본다. 정작 진급을 했다고 치자. 무엇이 달라지는가? 정작 받는 월급 몇 푼 차이밖에 안 날 것이다. 1~2년 늦게 입사하든, 1~2년 늦게 진급해도 우리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 빨라서 좋을 것도 없다. 책임감만 늘어날 뿐이다. 우리는 주변사람들의 인정과, 기대, 본인의 자존감을 빌미로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있다.
소속감이 주는 안정은 달콤하다. 마치 마약과 같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과잠바를 생각해 보면 이토록 고등학교 때 노력해서 서울대에 왔으니 하루종일 서울대 입학생들은 과잠바만 입고 다닌다. 조직은 곧 주변사람들의 평가의 잣대다.
조직이라는 타성에 젖어 개인 경험을 등한시하는 것은 도태되는 지름길이다. 우리는 불편함에 익숙해져야 한다. 내가 안 해본 것, 새로운 것에 늘 도전하고 겪어야 한다. 내가 익숙함에 젖고, 조직에 억눌린다면 나는 그냥 회사 입장에서는 조직에 문제 안 일으키는 착한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내 희망과 미래는 뺏긴 채.
조금만 넓은 세상을 보고 많은 경험을 했으면 한다. 그 경험은 캐나다 사람들이 남 의식 하지 않고 찢어진 옷을 그냥 입고 다니는 것과 같다. 공경을 넘어 대접받길 원하는 꼰대사회, 남 의식 속에 나를 잃어가는 대한민국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그럼 남의 식 없이 나부터 달라지려면 어떤 경험을 해야 하는 걸까?
첫째, 경험의 양보다는 질이다. 경험을 무조건 많이 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정말 제대로 된 내가 무언가 느낄 수 있는 값진 경험을 해야 한다. 버킷리스트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람마다 인생에 가치를 두는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버킷리스트의 경험을 하면서 희열을 느끼고, 남들보다 잘하고, 새롭게 느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경험의 질을 올리는 것이다. 특히 내가 바랬던 경험을 할 때는 그와 연관된 다른 영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실제로 원하던 경험을 하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창작을 하거나, 음악을 만드는 예술가들이 정말 많다. 마인드맵이라 할 수 있다. 질적인 경험을 늘려나가면 새로운 내 머릿속 마인드맵이 그려지고, 그 희열로 인해 생각을 더 확장하고 인생을 직접 스스로 설계할 수 있다.
둘째,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이어야 한다. 남들이 다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를 간다고 해서 나도 무턱대고 따라가면 경험의 양만 늘리고 오는 것이나 다름없다. 100%다. 내가 뉴질랜드를 선택한 이유, 거기서 봐야 할 것, 뉴질랜드와 내 삶의 연관관계, 앞으로 무엇을 느끼고 싶은지 본인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거기서 나온 실제 경험은 앞으로의 값진 인생의 자양분이 된다.
셋째, 나부터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면접에 들어가면 면접자가 하는 얘기의 90%는 본인 경험얘기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보람찼다거나, 그 경험에서 무엇을 느꼈다거나 등 면접관들은 내 경험에서 회사와의 연관성을 찾는다. 경험이 진실되고 내가 공감할 수 있어야 회사도 내 가치에 신뢰를 갖는다. 그 수많은 경험들이 모여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내 친구는 면접에서 1년 동안 전 세계 해외여행을 간 썰만 40분째 떠들다 나왔는데 붙었다. 누구나 할 수 없는 본인의 경험에서 본인만의 인사이트를 얻었고, 면접관도 그의 얘기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면접관도 사람이다. 꾸며진 것이 아니라 진짜 본인의 경험에 마음이 움직인다.
넷째, 비교로부터 배제된 경험 이어야 한다. 지금은 누구는 돈이 많고, 누구는 돈이 없고, 누구는 롤렉스를 차고 다니며, 누구는 멋진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것. 부럽다. 속마음을 감출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잣대가 몇 년 전부터였을 것 같은가? 길어봐야 고작 100년이다. 100년 전에는 생존을 걱정하느라 이런 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세상은 이렇게나 빠르게 변한다. 나는 지금 32살이니까 길어봐야 앞으로 70년 정도 더 살까? 이것도 최대로 잡은 거다. 남과 비교 않는 내 경험만이 백만 불짜리며 내 인사이트가 더해지면 그것이 곧 자산이다.
다섯째, 작은 성취가 포함된 경험 이어야 한다. 자신감과 인생의 근거가 마련된다. 내가 그 힘든 미국에서 이방인으로써 1년을 버텼다는 것, 군대에서 맨날 맞으며 2년을 버텼다는 것, 말도 하나도 안 통하는 멕시코에서 2년간 살며 누구보다 스페인어를 잘한다는 것 등 이 작은 성취경험은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 또 다른 값진 경험을 낳을 용기를 준다.
취업에 한정해서도 똑같다. 면접준비를 할 때 공백에 관련된 질문을 거짓말을 쳐서라도 대비하고, 어김없이 면접에서도 면접관이 그 질문을 한다. 단 6개월 아니, 1개월만 쉬어도 한국인은 불안해한다. 다른 이들은 앞서가는 데 나만 뒤처진 생각이 드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지금 쉼으로써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대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다. 지금 쉬든 안 쉬든 미래는 언제나 불투명하다. 인생은 목표보다 경험에 비추어 의사결정을 해야 하고 개척해나가야 한다. 그 경험은 목표를 세우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어른들은 결국, 해외여행을 하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듣고, 그 안에서 얻는 것이 있으니 최대한 어리고 시간이 많을 때 가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도 신림동, 종각, 노량진 독서실, 스터디카페에는 수많은 고시낭인들이 있다. 2~3년은 어디 비빌수도 없다. 5~6년째 한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흔하다. 본인이 면접관이라면 5년 동안 공부한 고시낭인을 뽑겠는가, 3개월 직무 인턴경험을 해본 사람을 뽑겠는가? 당연히 후자다. 백번 글로 읽은 것보다 한번 경험해 본 것이 더 위대하다. 경험에 따른 인사이트는 그 어디에서도 빛을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