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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영역 5등급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

작가로 산다는 것의 행복

by 홍그리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전교생 1,400명, 한 학년 500명 남짓한 울산의 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정독실이라는 곳에 들어갔다. 정독실의 개념은 당시 전교 50등 안에만 들어야 갈 수 있었던 곳이었다. 행복했고 부모님도 이를 자랑스러워하셨다. 나는 정독실 옆자리 친구와 공부에 매진했다. 그 옆자리 친구는 나의 지금 베스트프렌드가 되었다.

그 친구와 학교 앞에 있는 작은 국어학원을 다녔다. 입시 스트레스 속에서도 언어를 배울 때에는 숨통이 트였다. 특히, 읽어 내려가며 그 글에서 해답을 찾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언어 하나만큼은 그 누구보다 자신 있었고 수능시험도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아뿔싸. 시험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언어영역에 5등급을 맞은 것이다. 충격적인 결과였다.

그렇다면 언어 5등급은 그럼 어떻게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걸까?


어찌해서 대학에 다니고, 회사에서 일도 하고 지금까지 잘 헤쳐왔다. 역시 수능등급은 인생 등급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수험생들은 절대 절망하질 않길 바란다. 나만 해도 그 당시 수능이 인생의 전부 인 줄만 알았다. 수능은 단지 인생에서 아주 미세한 작은 부분일 뿐이다. 단 한순간의 시험으로 그 영역의 등급을 맞았다고 해서 내 실력이 평생 그렇게 각인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본인이 모르는 재능과 관심이 있으니 그것을 빨리 찾아야 한다. 첫 책을 낼 때 출판사 사장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기본기가 있어서 다듬으면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처럼 언어 5등급이 작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 아닌 '꾸준한 글쓰기'였다.

어릴 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 글짓기 모임에 가 일주일간의 있었던 주제를 선정해 3시간 동안 글을 적었다. 어떤 날은 집중을 하지 못해 선생님께 혼나고 일기를 쓰고 돌아온 날도 있었다. 그 글쓰기는 지금의 내가 브런치작가에 도전하고, 조회수가 50만 뷰가 넘고,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다. 그곳에서 기본기를 쌓았고 수려하고 긴 단어와 문장보다 핵심을 파악해서 간단명료하고 덤덤하게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스페인어와 영어를 놓지 않은 것도 한몫한다. 멕시코에 있을 때도, 국에 있을 때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이 한국어를 어떻게 영어, 스페인어로 바꿀지 연습만 했다. 단연 언어적 감각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다.


두 번째는 책이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막 좋아한 것은 아니나 이상하게도 책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집안에 책이 많이 쌓여있는 것을 보면 왠지 모를 안정감과 희열을 느꼈다. 모으다 보니 하나 둘 펼쳐보면서 '이런 종류의 책도 있구나, 이건 재미있겠다. 읽어봐야지' 하면서 조금씩 가까이하게 되었다. 환경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책이 주변에 있는 환경에 놓이게 되니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하게 되었다. 대치동 사교육열이 아직도 끊이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공부에 흥미가 없는 자녀도 주변 친구들이 당연한 듯이 학원에 가고, 어려운 문제를 풀면 '어? 나도 해볼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 책을 쓴 저자처럼 어떻게 문장을 만들어가고, 어떤 단어를 썼는지 모두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언어적 감각이 늘 수밖에 없다.

생각을 많이 하기 위해서는 뇌를 확장시켜야 하고, 그 뇌를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인풋이 많아야 한다. 책을 통해 인풋을 늘리고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 내 생각을 표출하면 글에서도 더 나은 결과물이 반드시 나온다.


세 번째는 기록이다. 어릴 때부터 습관이 늘 기록하는 거였다. 대학생 때는 아래와 같은 작은 수첩을 늘 들고 다니며 해야 할 것을 빽빽이 적었다. 취업준비를 할 때에도 내가 현재까지 이룬 스펙, 자격증들을 늘여놓았고 무엇이 부족한지, 지금 내 앞에 당장 놓인 것은 무엇인지 늘 기록했다. 브런치도 처음에 내 생각을 기록하는 용으로 시작했는데 그것이 쌓여 한 권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쿠바에서 산 체게바라 수첩

출근길에 쓰고 싶은 글이 있거나 괜찮은 영감이 떠오르면 메모장부터 켜고 단어를 적어둔다. 단어를 적으면 내가 그 순간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가 떠오르기 때문에 나중에 글을 쓸 때에도 매우 편리하다. 이렇게 기록을 해두면 모두 내 자산이 된다.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볼 때에도 감회가 새롭다.

이렇게 기록을 하게 된 계기라고 하면, 과거에는 내 머리를 믿었다. 오늘은 무얼 해야 하고, 챙겨야 할 것은 무엇인지 늘 머릿속으로만 생각을 하다 느낀 것은 절대 100%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이다. 50%만 생각나도 다행이다. 늘 기록을 하면 또 무엇이든 쓰고 싶은 욕망이 생기고, 글감도 구체화할 수 있다.

작가라는 직업은 참 매력적이다. 내가 내 이야기를 편안하고 진솔하게 쓰면서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로 하여금 인사이트와 마음의 울림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내 인생의 모토이며, 그것을 단지 글로만 통해서 이뤄가고 있다는 것이 스스로도 신기하다.

내 브런치스토리의 구독자가 100명 있다고 하자. 지극히 사견이지만 이는 유튜브 구독자 수 10,000명과 동일하다고 믿는다. 한국인은 독서율이 전 세계 꼴찌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직장인 3명 중 1명 이상이 일 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 브런치를 보는 전체 인구가 많아야 200만 명이고, 유튜브는 최소 1,000만 명 이상이 본다. 숫자로 따지면 유튜브가 훨씬 보는 사람이 많아 실질적으로 브런치 구독자수 100명은 글을 읽고 쓰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파급력을 지닌다. 유튜브와 같은 영상매체는 뇌에서 힘을 쓰지 않고 수동적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전달력이 글보다 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글은 내 의지로 능동적으로 한줄한줄 읽어 내려가는 것이기에 독자로 하여금 더 큰 여운과 의미전달을 할 수 있다. 이것이 작가가 정말 멋있는 이유다.

스스로 스트레스를 푸는 데에도 글쓰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진정성 있는 마음을 전할 때 대부분 편지를 쓰듯, 직접 써 내려간 글들은 내 마음에 있던 응어리를 푸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내가 글로써 전달하고자 했던 의도가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될 때의 그 희열은 마치 연인에게 깜짝 프러포즈를 했을 때 흔쾌히 수락해 주는 것과 같은 행복이다.

단,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을 쓸 때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실제와 다르게 왜곡해서는 안되며, 실제 사실을 과장해서도 안된다. 독자들은 한 현상을 바라보는 오직 나만의 솔직한 의견, 생각들에 관심을 가진다. '나와 똑같은 상황인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이 방법도 해봐야겠다'등 타인에게 공감을 줄 수 있도록 사실에 기반한 한 현상에 내 견해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포인트다.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글쓰기를 꾸준히 하는 것' 이것이 언어영역 5등급인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유일한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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