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정말 많고 많은 직업이 있다. 우리가 흔히 칭하는 유투버도 실제로 직업을 검색하면 콘텐츠 크리에이터라고 나온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 콘텐츠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을 안 사람이 있긴 했을까?
반면에 AI의 등장, 정보기술의 발달로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기도 한다. 최근에 AI 로봇을 보았는데 사람과 대화를 하는 데 이 사람이 어떤 것에 관심이 있고, 어떤 말을 해야 상대방의 공감을 사고, 말투, 표정, 눈 깜박임까지도 모두 사람과 똑같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생각하는 시간도 사람과의 대화처럼 싱크로율 100%였다. 단언컨대 심리상담가와 같은 직업은 20년 아니 10년 이내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다. 이토록 빨리 발전하는 이 정보기술에 신기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많은 것을 빼앗아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은 사람이 하기 위험한 일을 하도록 처음 만들어졌지만 이처럼 득이 있으면 실도 있는 법이다.
지금은 전문직이라고 칭하는 회계사, 세무사들도 먼 훗날에는 AI로 대체될 수도 있다고 한다.
작가는 그럼 어떨까? 작가는 어떤 부류에 속하는 걸까? 작가는 예술가에 포함된다.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을 예술가 혹은 아티스트라고 부르는데, 작가도 단연 이 예술가에 포함된다. 최근 CHAT GPT의 등장에 사람들의 반응이 뜨겁다. 작가도 그렇다면 추후 없어지는 직업일까? 글을 쓰는 것도 나중에 CHAT GPT에 모두 대체될까? 요즘은 논문이나 대학과제로도 이것을 활용한다는 것을 보고 ’ 작가의 종말도 이제는 머지않았다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앞으로 기술이 발전한다 해도 절대 사람의 지능을 따라올 수 없다. 그 이유는 인공지능은 의식과 자유의지, 독립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글을 쓴 것을 교정교열하며 의식의 흐름에 맞게 글을 추가하고 삭제는 할 수 있겠지만, 온전한 한 사람의 생각과 견해가 담긴 글을 로봇 혼자 완성할 수는 없다. 다소 원론적인 글이나 정답이 정해져 있는 교육서, 정보전달의 목적이 있는 글과 책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소설 같은 경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작가 고유만이 가진 상상으로 스토리를 계속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로봇으로 대체되기 힘들다. 로봇이 침범하지 못하는 인간의 영역이 분명 존재하기에 작가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출판업계가 사양산업이고 불황이라고 한다. 근데 이 말은 '중국과 멕시코가 투자의 적기이며, 이 국가들을 주목해야 한다'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다. 이게 무슨 말일까? 밀레니엄세대가 도래한 20년 전부터 유행한 말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이 아무리 책을 읽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해도 출판업계, 서점들은 적자에 허덕이면서도 절대 망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지식을 향유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더 배우고 싶은 내적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이 내적동기는 절대 줄어들지 않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늘어난다. 인생을 살아보니 하루 중 오로지 책 읽는 이 시간만이 의미 있고 나를 더 성장시킨다고 믿는다. 우리가 하루 중 단 10분이라도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내 몸은 하루하루 늙어가는데 책을 읽어야만이 지식과 생각이 확장되고 늙어가는 내 몸을 대체할 수 있다.
이처럼 하루 중 꼭 필요한 책이라는 것을 만드는 사람이 바로 작가다. 작가는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일을 상상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직업이다. 소설과는 반대로 에세이를 쓴다고 하면 자신이 겪은 일을 본인만의 생각과 견해를 더해 사람들에게 신선한 깨달음을 준다. 한 사람의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특히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예술활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를 보면 각 영화마다 대본이 있다. 연극도 모두 시나리오가 있다. 드라마, 음악, 예능, TV프로그램, 축제, 이 모든 것도 마찬가지다. 글을 써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은 영화가 나오고, 우리가 더 재밌는 TV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는 더 나은 글이 가장 먼저 짜여야만 한다. 우리는 그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데 가장 앞에 있는, 근간이 되는 시발점을 만드는 것이다. 얼마나 가치 있고 멋진 직업인가?
작가는 어떤 사람이 해야 하는 걸까? 작가가 우리와 사회에 정확히 어떤 영향을 끼칠까?
우선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 재미있어야 한다. 나 스스로를 표현해도 좋고 내가 가진 사물, 경험 모든 것이 해당된다. 글감을 찾는 과정에서도 내가 표현의 욕구가 충만할 때만이 글감을 찾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보여주는 게 싫은데 글을 쓰고 싶겠는가?
창의성만이 인간의 삶을 가장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다. 미국 인턴 때의 친구들과 오랜만에 모임을 가지며 이런 말이 나왔다. 미국 회사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한 걸 여기서는 매일 놀라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인들은 상사의 말에 복종한다'는 것이다. 너무 맞는 말이다. 한국인은 개인의 신상에 혹여나 피해가 갈까, 아니면 보복이 두려운 나머지 모든 말에 복종한다. 시키는 것만 하기 때문에 스스로 사고를 확장시키고, 다른 생각을 할 기회가 없다. 하지만 미국은 상사가 1을 지시해도 왜 1을 해야 하는지 서로 토론을 하고, 좀 더 효율적이고 최선의 방향을 찾고, 2를 제안하기도 한다. 우리는 기성세대 때부터 시키는 건 무조건 적으로 다 해 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런 문화가 이어져 왔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대한민국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회사든 사업이든 인간관계든 윗사람이 시키거나 부탁하는 것은 당연해야겠지만 결론적으로 회사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다.
내가 외국에 살면서 느낀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인들은 숙제를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온다. 하지만 새로운 의견을 내는 발표 수업이나, 토론 수업 등은 유독 조용하고 창의적인 생각이 결핍되어 있다. 한 번도 그렇게 훈련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 속 창의성을 키우는 것은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행위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그것에 사람들은 희열을 느끼고, 열광하도록 해주는 것. 그것이 작가다.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한다. 우리가 낸 결과물은 사람들에게 운동과 사우나와 같은 긍정적인 도파민과 자극을 준다. 추후 글을 더 많이 쓰면서 분명히 더 느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사고에 개입하는 일은 너무나도 감명 깊고 감동적인 일이다.
첫 책을 출간한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나는 나 스스로를 작가라고 칭하지 않는다. 아직 작가라는 호칭을 받을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고 느낀다. 항상 부족하다고 여긴다. 출판사 관계자분이나 누군가가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면 그때서야 실감을 한다. 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어색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그저 오늘 하루도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고 묵묵히 내 글 쓰는 시간을 쌓아가는 것이 내가 작가가 되어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