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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마감 D-1의 새벽이란

2023 모두의 새로운 시작 앞에서

by 홍그리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84가 원고마감에 지쳐 네이버 사옥에서 잠을 자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사옥 벤치에 누워 잠을 자고, 양치질을 하고, 머리를 감고,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원고마감에 쫓겨 있기 때문이다. 옆에서는 편집자가 철저히 감시를 한다. 딴짓을 하거나 담배를 잠깐 피우러 가도 눈치를 준다. 기안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그림만 그린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때부터 글쓰기에 대한 한 신념이 생겼다. 화면에 비친 기안84의 모습은 너무 괴로워 보이지만 알게 모르게 얼굴에는 웃음기가 보였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감에 쫓겨 매일 그림 그리고,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뛰어다니는 모습조차 행복해 보였다. 참 부러웠다. 내가 잘하는 무언가로 누군가에게 영감과 재미를 준다는 것이.

나도 언젠가 기안 84의 만화를 보는 구독자가 아닌 진짜 내 것을 창작하는 '생산자'의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생산자? 왜? 왜 굳이? 회사 잘 다니고 있으면서? 내 힘으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기안도 안주하지 않기 위해 그림을 더 즐기고 열심히 하기에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었다. 기안 84가 방송에서 이런 말을 했다. 놀 수 있을 때 노시면, 벌 수 있을 때 벌지 못한다고.

맞는 말이다. 내가 창작을 한다 해도 그곳은 더 정글이다. 회사의 울타리를 벗어남과 동시에 예전처럼 따박따박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다. 누구보다 열심히 그 분야에 미쳐야만 살아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내가 생산자의 삶을 살고 싶은 중요한 가치가 있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읽고 그 사람의 삶에 영감을 불어넣고 싶다. 그게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세상에 이보다 큰 행복은 없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돈을 버는 것이 다가 아닌 세상이다. 누군가를 돕고 그 삶을 바꿀 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

최근 미국의 한 엔지니어가 <조용한 사직>이라는 제목으로 틱톡으로 장난 삼아 올렸던 영상이 전 세계로 퍼

져 큰 화제가 됐었다.

조용한 사직이란 실제로 회사를 퇴사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내게 주어진 최소한의 업무만 하고 칼퇴한다는 것이다. 회사는 나의 인생을 평생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이 조용한 사직 열풍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주된 생각이다.

하지만 나만의 창작물 즉 영상을 만든다거나, 책을 쓴다거나 산자의 결과물은 본인의 것이기에 더 값지고 시간을 내어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 수 있다.



현재 원고마감을 딱 하루 남기고 책을 최종적으로 퇴고하고 있다. 온전한 책 한 권을 만든다는 것은 굉장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사람들은 책을 쓸 때 주제를 정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다. 책의 주제, 목차를 정하고 그 목차에 맞게 글을 써 내려가는 것보다 사실 더 어려운 것이 있다. 바로 '분량을 늘리는 것'이다. 대개 출판사가 기획출판을 제안할 때는 모든 원고 100%를 보고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 원고 중 일부가 상업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계약을 한다. 따라서 계약 뒤 기존의 원고에 더 많은 살을 붙여야 한다. 특히 소설을 제외하고 에세이나 자기개발은 한 권의 단행본을 만들기 위해서 평균적으로 한글 250페이지 이상이 되어야 한다. 원한 주제의 글을 가지고 정확히 두 배의 분량을 만들어내는 것은 굉장히 수고스럽다.

어떤 작가는 출간제안을 받고 나서도 책의 분량을 늘리는 데 있어 출판사가 원하는 책의 방향과 본인의 책의 방향이 달라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책을 만들며 배우고 얻는 것들이 참 많다. 먼저 내가 바르다고 옳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순간들이 타인의 공감을 실제로 샀다는 것이다. 내가 믿고 행했던 일들의 탄탄한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앞으로의 내 삶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믿음이 생긴다. 얼마 안 되는 금액일지언정 선인세를 먼저 받으며 느꼈던 것은 나의 창작물이 실제로 돈벌이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 나는 현재 막연함과 구체화 사이에서 결실을 맺고 있다.


또 다른 점은 단순히 일기장이나 앱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책으로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번 인쇄가 되면 수정할 수가 없기에 같은 말이라도 몇 번이나 더 나은 단어, 더 올바른 문장들을 생각하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아야 한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정보도 혹시 모를 오류를 제거하기 위해 다시 한번 재차 검토하는 과정을 거친다. 스스로의 성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마지막으로 아직 종이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평일이나 주말에 교보문고에 가면 책 읽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PDF 전자책 시장이 무섭게 성장하고 유튜브와 같은 콘텐츠의 바닷속에서 종이책은 외면받고 있다고 생각한 나의 큰 오산이었다.

나 또한 한 달에 꼭 2권 이상 책을 읽으려 노력한다. 얼마 전 요시다 포터가방을 샀다.


이 작은 가방에 어디를 갈 때나 꼭 책을 휴대한다. 일반적인 책 크기에 딱 알맞게 들어가서 구매하게 되었다.

23년은 더 책과 가까운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읽기 쉽고 조금이라도 더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delete키를 누른다. 어떤 날은 아무리 읽어도 부자연스러운데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 있다. 이 때는 직접 소리 내서 읽어본다. 실제 독자의 시선에서 소리 내서 읽어 보면 무엇이 잘못 됐고 어떻게 고쳐야 할지 보인다.

오늘 최종적으로 모든 원고를 프린트해서 형광펜으로 밑줄 치며 퇴고를 했다. 회사에서도 보고서나 기획안을 작성할 때 늘 이 방식을 따른다. 내 컴퓨터 화면에서 내가 볼 땐 분명 오류가 없는데 직접 프린트를 해서 보면 오류를 금세 발견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나도 아직 미스터리이다. 내 컴퓨터화면의 작은 나무보다 프린트를 하면 전체적인 숲을 볼 수 있기에 그런 것일까?

실제로 모든 원고를 프린트해서 보니 역시나 오류가 보였다. 인생을 살며 언가를 만드는 데 있어 이렇게나 신중하고 꼼꼼히 접근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다. 나 스스로도 나의 색다른 면을 보고 있어 요즘 스스로가 낯설다.

경험은 이래서 중요하다. 100번 읽고 보는 것보다 직접 한 권 책을 출간해 보는 것이 스스로에게 얻고 배우는 것이 많다. 내가 직접 겪었기에 그 정보는 당연히 질적으로도 우수하고 더 오래간다.

모든 일은 시작이 어렵다. 첫 시작을 위해서는 모든 일에 운도 작용해야 하고, 본인의 열정, 하고자 하는 의지가 100%에 가깝게 차 있어야 한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다짐마저 있어야 한다. 중간에 포기한다면 시작을 한 것 자체가 시간낭비이기 때문이다.

모두의 첫 시작은 서툴다. 실수도 많고 하나의 결과물을 내는 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시간이 지나면 숙련도가 높아지고 속도도 빨라진다. 그렇게 그 분야에 있어 본인만의 노하우가 쌓이고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이 경험을 올해 시작부터 운 좋게 경험하며 얻은 핵심적인 메시지는 우리 모두가 시작을 두려워하지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나에게 적어도 손해는 없다. 긍정적인 그 어떤 작은 일이라도 따라온다. 첫 시작이 배부르진 않을지언정 그 작은 성취가 모여 큰 일을 이루게 하는 발판이 되고 원동력을 만든다는 것을 꼭 명심하자.

3월 2일. 모두의 시작이다. 새로운 계절의 봄이 온다. 대학교는 개강을 하고, 중고등학교는 새로운 학년의 학기를 시작한다. 회사는 인사발령이 나고, 새로운 채용공고를 내고, 신입사원이 첫 출근한다.

추운 겨울이 지나 지금처럼 따뜻한 봄이 오듯, 2023년 모두의 시작이 활기차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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