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의 획일화에 대한 소고
이 세상은 늘 대단한 것을 보여준다. 유명한 운동선수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TV속 연예인들은 늘 멋진의상과 메이크업, 최고의 환경에서 본인들을 가꾸고 전 국민이 그걸 본다. 현대사회는 특히 유행이 워낙 빨라, 이에 네티즌과 소비자들 리액션도 빠르다. 냄비근성이라고 한다. 한번 끓기 시작하면 달려드는데 금세 사그라들고 기억 속에서 잊힌다. 늘 자극적이고 새로운 사람과 콘텐츠가 우리 곁에 있다. 소위 한번 떡상하면 그 사람과 콘텐츠의 배경에 모두가 시선이 쏠리며, 이 자리에 오기까지 이들의 고난과 역경은 무조건적으로 칭송받는다.
자,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느끼는 것이 있다. 전 세계 공통이나 유독 우리나라만 심한 것. 바로 다양성이 결여된 집단주의 속 획일화다. 우리는 늘 사회가 정한 정답을 쫓으며 살아왔다. 어떤 한 사회의 롤모델 삶의 방향이 정답인 것 같은 사회분위기가 개개인 가치판단에깊은 영향을 끼치는 사회다.
이 사회는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먼저 내 길을가려고 하는 사람에게 의구심을 안긴다는 것이다.
‘이 길이 맞나? 지금 난 하면 안 되는 길을 가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설령 ‘아니야, 나는 나만의길을 갈 거야’라고 큰 확신을 가진 상태에서 행하는 행동일지라도 무거운 사회적 분위기가 스스로를 자기검열하게 만든다.
만약 여기서 내 길이 아닌 사회가 원하는 ‘정답’이라는 길을 따라가면 욕망의 노예가 되어 만족을 모르게 된다. 성취감으로 어느 정도의 자기 계발은 삶의 활력을 주지만 정답이라고 정해놓은 계단을 한 단계 한 단계 클리어할 때마다 더 높은 곳을 쟁취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긴다. 대개 이 욕망은 돈이나 지위, 명예와 직결되는 경우가 많고, 보통 이 욕망을 이룰 시 경제적 풍요가뒤따라온다.
사회에서 말한 정답이라는 것은 결국 안정된 경제적 여유일 뿐이다. 이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된 집단 속에서 자리 잡은 기준으로 우리는 성공과 실패를 매긴다.
우리는 이렇게 낭만을 점점 잃어간다. 어릴 적 썼던 일기장을 우연히 펼쳐봤다. 이때에는 낭만이 있었다. 1층에 살던 우리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엄마가 저녁밥이 다됐다고 하면 집에 가서 밥을 먹고, 2G 핸드폰조차 없었는데 늘 무언가 열심히 하며 놀았다. 킬링타임과 같은 시간 죽이는 일은 없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값진 일상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근데 지금은?
부모는 일터에 나가 야근을 하고 집에 와서 기진맥진되어 소파에 누워 리모컨 돌리기 바쁘고, 아이들은 학원 갔다 공부에 치여 본인 방으로 문 닫고 들어간다.
일절 대화가 단절되어 가족 간 연대나, 사랑은 찾아볼 수 없는 사회다. 결국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조사한 연구기관의 통계자료를 보았다. 타 국가들은 가족이나 친구, 건강을 꼽는데 우리나라만 돈이다. 돈이 곧 진리이며 행복의 필수조건이라 모든 사람이 여긴다. 근데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사람들이 돈을 좇는데 정작 돈이 많은 사람은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이 기준에 의하면 그럼 나머지 95%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전부 불행한 사람으로 정의된다. 나를 갉아먹고 평생을 희생하면서 결국 이 무한경쟁사회에서 이겼다 자위하며 모두 똑같이 생긴 아파트에서 사는 것. 그걸 최종목표로 사는 삶은 너무 불행하지 않을까?
잘못된 선입관과 비교는 결국 파멸을 낳는다. 현대사회에서 어릴 적 나만의 낭만을 되찾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 이끌리지 않아야 한다. 내가 가장 후회되는 것 하나는, ‘그냥 남들이 많이 하고 보편적이니까 취업 잘 되겠지’라고 선택했던 관심도 없던 경영학과였다. 한 곳에 매몰되지 않고, 결국은 용기를 내보는 것. 현실에 매이지 않고 나만의 감상을 찾는 것이 낭만을 찾는 가장 첫 출발점이라 생각한다. 나만의 사유와 취향이 굳건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