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그리 Mar 20. 2024

주말마다 결혼식 가는 우리

결혼식은 곧 사라질 것이다

대한민국 결혼식 문화는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허례허식이라는 사람들의 인식도 한몫하겠지만 가장 큰 궁극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결혼을 애초에 하지 않는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그들은 더 이상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제적, 개인적, 사회적 환경에 맞물린 비혼문제는 우리 삶 가까이에 깊게 스며들었다.

만약 이 힘든 여건 속에서도 결혼을 할 사람이 있다고 하자. 결혼을 계획 중인 이들은 99% 이상 호텔웨딩이나 예식장을 알아볼 것이다. 주택구입, 혼수, 예단, 결혼식, 웨딩패키지, 드는 돈만 최소 못해도 3천이다. 호텔에서 하면 1억 가까이 드는 경우도 봤다. 나 또한 남들 하는 대로만 하자 했는데 4천만 원 이상 들었으니.


경제적인 면을 둘째 치고라도 관계 측면에서도 살펴보자. 축의금 주고받기, 경조사로 오랜만에 얼굴 비추고, 안부를 묻고 어색하게 나누는 인사 문화는 이제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무의식에 갇혀 행하는 허례허식은 깨어있는 자들에게서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다. 저출산, 불행지수 자살지수 1위인 국가에 어쩌면 이는 마지막 희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평생을 다원주의를 외치면서도 현실에서 억압받고, 예측되는 획일화 속에 우리 삶을 가두어왔다.

이 사회는 당연히 해야만 하고, 예외는 없다는 인식아래 오랜 시스템 안에서 곪아가며 우리를 정당화했다. 마치 결혼도 하지 않으면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나는 주변에 친구가 많은 편에 속했다. 그래서 주말마다 결혼식을 갔다. 내가 그 친구의 결혼식에 가지 않으면 실례를 범하는 것 같고, 우정에 금이 갈 것 같고,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내 결혼식에 오지 않을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들이 와줬으니 당연히 가야 하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고.

어쩌면 이 마음도 모두 타인을 의식해 나를 가두는 일이다. 나를 헤치는 건 내가 생각하고 바라보는 나의 눈이 아니라 타인의 눈이라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다. 우리는 타인을 의식하면 평생 동안 평가에 잠식되어 온전한 가치 있는 삶을 꾸려나가기 힘들다.

이제 서서히 이 허례허식은 줄어들 것이다. 지금은 최소 일 년 전 아니면 결혼식을 예약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 시작은 저출산, 개인주의와 함께 서서히 드러나 우리는 급변한 세계를 맞이할 것이다.

하루에 길거리를 10분만 지나쳐도, 강남 한복판 신호등을 한 번만 건너도 우리는 50명 이상을 마주한다.

집안에만 틀어박힌 이가 아니라면 하루평균 100명 정도는 눈에 스칠 것이다. 이 사람들은 둘째치고 내가 알고 있는 지인만 하더라도 그들의 마음속을 속속히 파헤치기 힘들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사람들은 집단이라는 범주화로 그 집단과 그 사람의 속성을 동일시한다. 어떤 회사나 조직에 속해있으면 어떤 성격이고 얼마나능력이 있는지 가늠하는 식이다. 가령 삼성전자에 다니면 공부를 잘하고 연봉이 높다, 은행원이라면 똑 부러지고 계산적인 면이 있을 거라는 잘못된 고정관념과선입견에 빠져 산다. 하지만 지금은 집단주의에서 다원화로 바뀌고 있다. 2030들은 본인의 삶에 조금 더 큰 가치를 두며  더 이상 대기업에 목매지 않는다. 대기업에 다니는 부모세대들의 헌신과 노력을 옆에서 경험하며 느낀 것이 많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행복해 보이지 않는 삶이기 때문이다. 본인만의 가슴 뛰는 일, 가슴뛰는 행동, 나만의 가치관으로 조금씩 사람들은 개인화되어 간다. 결혼식은 변화하는 현대사회의 단적인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더 이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아도 당당하고, 그 누구의 결혼식에 가지 않아도 사이가 틀어지지 않는 진짜 건강한 사회를 우리는 찾아간다.


꼭 결혼뿐만일까. 가족과 관계 모두 마찬가지다.

결혼을 하고 첫 명절이라 치자. 부모님은 말하겠지.

“이번에는 처가를 먼저 가는지, 몇 박을 묵을 건지 언제 집에 올건지 상의해서 알려달라~”

근데 우리는 당당하게 이제 말할 것이다.

“신혼여행을 좀 길게 가서 이번 추석은 함께하지 못할 것 같아, 다음에 갈게“ 혹은 설날에 “요즘 일이 바빠서 이번 명절은 서울에 있을게” 이게 점점 당연시될 것이다.

오랜 친구들은 알고 지낸 시간을 햇수로 세며 서로의 우정을 증명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차이, 삶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가 이 우정을 의미 없게 만들어버린다. 이에 동창회나 결혼식은 결국 사라진다. 대신, ‘이 사람이 뭘 할 수 있지?’ 에 사람이 몰리고 더 많은 기회가 자리할 것이다. 무엇을 할 수 있느냐의 전제조건은 개성, 능력, 외모, 경제적 부, 관계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이렇게 철저히 개인주의로 물들어간다.


보여주기 좋아하는 한국문화는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다. 사람들의 의식 수준과 진짜 행복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 내가 행복한 것에 돈과 시간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이렇게 남을 의식하지 않는 사회가 자기만족의 시대, 곧 자유로운 삶의 질서이지 않을까.






이전 04화 잃어버린 낭만에 대하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