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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May 28. 2024

주식과 부동산에 왜 열광하는가

자산에 우리가 범하는 오류들

누구에게나 습관이 있다. 자기 전 담배를 피운다거나, 아침에는 특정 노래를 듣는다거나, 운동을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한다거나. 내 와이프는 외출준비를 위해 화장을 할 때만 듣는 유튜브 채널이 있을 정도다. 나도 강남이나 광화문에 갈 때 습관이 있는데 그건 바로 서점에 들르는 것이다. 원래 무언가 하려 했던 몇 시간 전부터 서점에 들러 요즘 어떤 책들이 있나 전체적으로 둘러보고 꽂히면 한두 권씩 사 온다. 트렌드나 흐름을 읽는데 매우 용이하다. 근데 요즘 서점에는 8할이 주식이나 부동산 얘기뿐인듯하다. 또 서성이는 사람들도 대부분 거기에만 발길을 멈춘다. 우리는 왜 주식이나 부동산에 그렇게 열광하는 걸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예상치 못한일을 당했을 때 조금이라도 덜 아프기 위함이다. 죽어서 부동산이나 돈을 가져갈 것은 아니지만 지금 살아있는 동안에 작게나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움을 준다. 예상치 못한 일을 겪었을 때 주식과 부동산 등 내자산이 있다면 그로 하여금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이 된다. 가령, 집이라도 있는 사람은 직장을 잃어도, 내가 설 곳이 없어도 집이라는 안전자산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새 시작을 할 수 있는 안전한 울타리가 마련된다. 집도 없고, 주식도 없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삶을 지탱하는 수단이 사라졌을 때 그야말로 멘탈이 무너져버린다. 서울역에 그냥 나앉을 수도 있다.


근데 이것보다 내가 오늘 아침에 눈을 뜨고, 자기 전까지 마음속에 새겨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꿈이 되어야 한다. 가지고 있는 자산이 아니라 아니라 앞으로 내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어 행복할 미래의 나의 모습을 그려야 한다. 어려서부터 꿈이 내가 가지고 있는 엔비디아 주식이 천 달러를 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듯 말이다. 이 꿈이  인생 자체가 되어야 하는데,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 자체에만 매몰되서는 정작 가장 중요한 알맹이가빠진 거랑 같다.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 이들이 가진 특징을 보자.

첫째, 한순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내가 친구들이랑 실수로 도박의 재미에 빠져 그냥 하루아침에 모두 날려버렸다 치자. 어떡할 건가? 불가능할 것 같나? 실제로 세상에 이런 사람은 내 주변에도 있다. 내가 50%나 이익을 봤던 주가는 하루아침에 200% 폭락할 수 있고 미국주식의 경우는 재미로 한주 사봤던 주식이 다음날 갑자기 700% 오를 수도 있다. 게임스탑 주식이 이를 증명해 준다.


예를 들어보자. 키와 관련된 재밌는 그림이 있다. 1번 그림과 2번 그림은 키가 큰 친구가 키가 작은 친구를 조롱하는 그림으로 비친다. 근데 난 다르게 생각한다. 이 거친 사회에서 단지 키가 작다고 무시받지 않도록 더 성장할 수 있도록 팩트를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키가 작은 친한 친구가 있다. 165cm다. 남자치고는 사실상 작은 게 맞다. 그는 키가 작아서 자신감이 없었다. 늘 키 때문에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를 물었다. 그럼 난 이렇게 말했다. (물론 지금은 여자 친구가 있다)

“유머 감각은 있어? 여잔 재밌는 남자를 좋아하잖아”

“아니”

“그럼 옷은 잘 입어? 단정하고 깔끔한 남자가 인기가 있잖아”

“아니”

“그럼 자상한 성격이야? 잘 챙겨주고 배려하는 것에서 여잔 매력을 느끼잖아 “

“아니”

“그럼 넌 키가 180이라도 여자친구 사귀기 힘들 것 같은데?“


팩트를 날리는 거다. 이 말은 즉, 본인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에 집중해 봤자 삶은 바뀌지 않고,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첫 번째 그림처럼 저 기계로 키 작은 남자를 올린들, 키가 자라나? 아니다. 주식과 자산도 똑같다. 하루아침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값어치가 자꾸 바뀌는데, 거기에 일희일비해봤자 삶은 바뀌지 않는다. 바뀌는 건 내가 바라는 꿈의 가치와 그게 얼마나 더 가까이 도달했는 지다.


둘째, 풍족함 속에 공허함이 자리한다. 부는 나를 편리하게 해주는 용도지, 절대 그것이 목적이 돼서는 안된다. 아니, 될 수 없다.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나는 OO을 하는 사람이야”라고 하지, “자산 OO원이

있는 사람이야 “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돈 많은 사람이 삶에 여유는 있겠지만 절대 그곳에만 국한된 삶은 오래가지 못한다.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통해서 돈을 당기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누군가가 벼락부자가 됐거나 복권에 당첨됐다 하더라도 결국 이 사람도 이 돈으로 생활을 하면서 결국 본인만의 무언가를 찾아갈 것이다. 어릴 적부터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는 사람은 없다. 각자가 처한 환경이나 상황이 다르다 할지라도 극단적으로 북한이나 소말리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내가 어떻게 그 삶을 만들어가냐에 달렸지 않나.

그럼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인볼브 되어야 하냐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나중에 하기 위해서 주식과 부동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걸 하면서 이는 서브로 가져가야 한다. 마치 보험느낌으로. 열광하되, 맹신하면 안 되고 내가 한 선택에 대해 확신을 가지는 느낌으로만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정 무언가가 하나라도 잘 못됐을 때 바로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가령, 내가 미래에 의사가 되고 싶은데 의사 시험에 떨어졌다고 하자. 인생에 하나뿐인 동아줄을 잃은 그 아픔은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근데 내가 재테크를 잘해서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면 거기서 다시 무언가 해볼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게 주식이나, 코인이나, 부동산이나, 내가 두 번째로 꿈꿨던 것이나, 취미나, 관심사나 모든 것이 될 수 있겠지. 하나의 보험일 뿐이다. 소소한 관심이 다양해야 하고, 거기서 자존감이 나온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단어하나만  다르듯, 진짜 한 끗 차이다. 하나에만 올인하는 사람은 그 하나가 잘못되면 모든 게 무너지기에 악착같이 그걸 잡으려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여러 가지의 가지를 쳐놓은 사람은 하나에 자존심을 굽혀도 남들에게 없는 자기만의 것이 있기에 자존감이 풍부할 수밖에. 모든 가지가 그의 인생이 된다.

쿠바의 혁명가 체게바라가 이런 말을 했다. 현실적으로 한국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다.

“Seamos realaistas y sonẽmos imposible"

직역하면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꾸자 “라는 뜻이다. 내 앞에 주어진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우리 모두 매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직장에 가고,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면서 까지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것이다. 현실 속 답을 찾되, 주식과 부동산 이런 자산은 현실을 돕는 수단이고, 늘 불가능해 보이는 꿈이 코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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