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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May 27. 2024

나도 유튜브나 해볼까?

이걸 왜 계속하느냐에 대한 답

주변에 다양한 직업군이 많다. 의사, 변호사와 같은 선망의 대상인 전문직을 포함해서 대기업, 프리랜서, 중견기업, 공무원, 작은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까지. 오랜만에 술자리를 가지거나 동창회에 가면 늘 서로의 아슬한 자존심의 선을 지켜가며 부러움의 언어들로만 침묵을 채운채 자리를 떠난다. 각자가 가진 스트레스나 삶의 불평은 뒤로 한채.

우리 모두는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당연히 어제 보다 나은 본인을 꿈꾼다. 어제보다 돈도 더 많이 벌고 싶고,어제보다 더 많은 걸 성취하고 싶다. 인정의 욕구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현실 속에서 어떤 걸 더 할수 있을지, 내가 현재 가진 능력 속에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늘 고심하며 청년들은 도전과 성취에 목말라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를 유교문화의 단점만 남은 한국의 비교문화를 탓하지 않고, 한 개인으로만 보자면 개인의 발전이 있어야 조직, 국가의 발전이 오는 것이기에 꽤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본인의 위치에서 최선을 찾아 무언가를 새롭게 도전하는 것 자체는 좋다. 예를 들어 내가 회계에 관심이 있다고 하자. 그래서 대학생 때 재경관리사라는 자격증을 땄다. 그러면 이제 내가 가진 능력과 위치에서 한 단계 더 높은 자격증인 세무사나, 회계사 같은 직업군을 도전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방송작가라면 메인작가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그 분야에서 노력을 해본다던가, 콘텐츠 크리에이터라면 내가 가지고 있는 SNS나 채널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본다던가. 시간이 흐르며 진입장벽을 더 높게 가져가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청년들은 어떤 진로든 본인이 진로선택을 한것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데 매몰되어 있다.

본인은 그 길을 고등학생 때부터 오랜 고민을 통해 이 자리까지 왔기 때문에 무언가 대단한 사명을 가지고 이루어 내야 한다는 생각. 가령 해외에 오래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청년이 있다고 하면 남들이 안 가진 경험과 외국어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차별점이 있기 때문에 이 길에서 두각을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 거기에 거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 이유는 사람은 불안하기 시작하면 최소한의 안정을 추구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입시, 대학교 학점, 취업준비의 또 다른관문에서 본인만의 진로를 구체화하기 시작할 때는 이미 그 경쟁 속에서 본인만의 경쟁력, 즉 남들에 비해 월등히 잘할 수 있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이는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근데 사실 이 모든 것은 그냥 우연히 결정된 것이다. 취업이 잘 된다고 해서 남들 따라 경영학과를 갔는데 그중에 회계가 본인과 좀 더 잘 맞아서 회계 쪽 직무를 선택하는 것이고, 대학생 때 교환학생과 같은 경험이 이때 아니면 못한다고 해서 갔는데 그 국가 언어가 재밌어서 배우다 자격증을 딴 것이고, 아버지 주재원을 따라 우연히 어릴 적 그 국가에 살아서 남들은 5점이라도더 올리려고 발버둥 치는 토익이 그냥 쳐도 만점인 것이다. 설령 한 분야에 국가대표처럼 천부적인 재능을 가져 어릴 적부터 타고났다 해도 그 타고난 능력을 어릴 적부터 발견해 준 부모님을 우연히 만났고, 그런 환경이 운 좋게 제공되었기 때문에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다 우연히 각자에게 제공된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진로를 어떻게 선택하게 됐느냐가 아니라 이걸 왜 계속하는지에 대해 의미부여를 해야한다고 본다. 직장인의 2대 허언이 퇴사한다 혹은 유튜브나 해볼까라고 한다. 근데 실제로 유튜브를 시도한 직장인은 이 중에서 반도 안되고, 직접 실행에 옮긴 직장인도 90% 이상이 업로드한 영상이 10개 미만이다. 계속 한 사람이 90%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이 10%가 떡상을 해서 나중에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이다.

아직 감이 안온다면 지금 각자의 방을 대청소해보면 이를 더 체감할 수 있다. 1년 전 여행 갈 때 영상 촬영을위해서 샀던 최신 고프로가 서랍에 박혀 있고, 힘들게 알바해서 모은 돈으로 야심차게 샀던 아이패드는 유튜브용으로 전락했다. 당근마켓에는 5분 단위로 골프채가 정가의 반값에 올라오고, 몇 개월 전 새해맞이 할인으로 결제했던 요가 1년 수강권은 어느 순간부터 가지도 않는다. 사람은 너무 간사해서 강제성이 주어진 일에만 꾸역꾸역 몸을 일으킨다. 가령, 월요일 아침 9시까지 출근은 해야 하는 강제성 (돈은 벌어야 하기에),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공부하는 강제성(학점을 잘 받아야 하기에), 당장 앞에 놓인 명목적 결과에만 집착하게 된다.

진로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청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게 그렇다. 연애를 볼까? 연애도 내가 이 사람을 정말 오랫동안 어떤 명확한 이유를 가지고 좋아해서 고백했고, 지금 사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가령 버스정류장에서 봤는데 매력이 있어서 번호를 물어 사귀었을 수도 있고, 같은 동아리나 독서모임을 하다가 관심사가 비슷해서 사귀었을 수도 있다. 왜 계속 이 여자(남자를) 내가 지속적으로 만나고 있나가 더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에 대해 어떤 사람은 이런 말도 하지 않나.

"할 때 돼서 옆을 보니 이 남자(여자)가 있더라"

지금 나를 포함한 청년들이 가진 이 환경은 끊임없이 변한다. 대통령이 누가 되냐에 따라 입시정책, 부동산 정책은 계속 업데이트된다. 망한 줄 알았던 기업이 상한가를 친다. 전쟁, 질병 이슈로 환율, 금리가 변하고, 경제도 변하고 각 국가가 처한 상황, 사회이슈, 환경이슈도 나날이 변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가 무언가 일관성을 가지고 계속하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우리가 무언가를 계속하는 게 하나라도 있다면 왜 그걸 계속하는지에 의문을 가지고 집중해야 한다. 거기에 집중하면 지금 흐르는 이 삶에서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조금씩 맞춰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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