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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May 29. 2024

SNS를 끊어야 하는 이유

어떻게 SNS는 우리를 망가뜨리나

SNS의 세계를 딱 한 단어로 정의해 보겠다. 유토피아.

그냥 행복하다. SNS의 세계는 모두가 행복하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마치 공리주의를 연상케 한다. 포스팅을 하는 사람이나 댓글을 다는 사람이나 모두가 행복하다. 딱 한 명만 빼고. 그걸 보고 있는 나 자신이다.

SNS에 등장하는 모두는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매 순간보내고 있다. 그 하이라이트는 일주일에 5번 포스팅을한다면 5번 있는 것이고, 3번 한다면 3번 있는 것이고,1번 한다면 한 번밖에 없는 것이다. 하이라이트의 정도는 각자 다르다. 누군가는 고급 레스토랑에 가 스테이크를 써는 것이 빛나는 순간이고, 누군가는 외제차로 드라이브하는 것이 자랑거리다. 누군가는 좀 더 소소하게 친구와 축구경기를 보러 가는 것이 행복이다.  

각자의 다른 주기의 하이라이트를 우리는 눈을 뜨면서자기 전까지 틈틈이 시간을 짜내서까지 염탐 중이다.

심지어 화장실에 볼일을 보는 그 순간까지도. 조금이라도 나와 비슷한 하이라이트를 가진 경험이 있거나, 나도 경험하고 싶은 하이라이트가 있을 때에는 가끔씩좋아요와 댓글을 남기기도 한다.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그 좋아요나 댓글은 심오한 의미를 가진 것도 아니고, 강한 애정이나 갈망을 나타낸 것도 아니다. 그냥 클릭 한 번이면 되는 영혼 없는 습관 같은 거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얄팍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자 행하는 최소한의 노력이랄까. 나는 과거에 SNS를 한창 할 때 내가팔로우 한 사람의 이름도 기억이 안 난 적도 몇 번 있었다. 이름은 기억 나도, 성이 기억 안나는 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때부터 처음 SNS에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지금 같은 여름이면 도파민에 중독된 프로 SNS러들은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OOTD를 올리고, 5성급에서의 8만 원짜리 망고빙수, 비키니, 식스팩, 와인, 명품백, 해외여행, 시원한 곳에서 한없이 평화롭고 멋진 나날들을 보낸다. 좋아요는 몇 백개가 넘고, 어떻게 이렇게 행복할 수 있지? 하는 사진의 연속이다. 요즘은 이 행복한 순간을 조금 더 역동적이게 자랑하기 위해 릴스를 찍어 짧은 10초짜리 영상으로 팔로워들을 현혹시킨다. 릴스는 영상이기 때문에 사진보다 얼굴을 포토샵으로 고친다거나, 몸매를 속이기 힘들기 때문에 모자를 쓴다거나 펑퍼짐한 옷을 입거나 각자 그들만의 트릭을 쓰기도 한다.


맨유의 전설적인 감독 퍼거슨 감독이 한 말을 보자.

SNS는 시간낭비다. 그 시간에 차라리 독서를 하는 게 삶에 더 유익하다

자, 이젠 꿈에서 깰 시간이다. 인스타그램을 위로 스크롤 해서 꺼보자. 현실로 돌아왔다. 핸드폰을 놓고 당장 내 눈앞에 놓인 현실을 보자.

아직 주위에도 많고, 내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험했던 취업준비생을 예로 들어보겠다. 취업준비생이라면 지금 당장 써야 할 이력서가 수십 개다. 남들은 다 일해서 돈 벌고 제 앞가림을 하고 있는데 나는 아침에 눈뜨고 갈 데가 없다. 호텔? 얼어 죽을 호텔. 그냥 집 안 골방에서 남들 다 휴가 가고 놀 때 자기소개서만 써야 하는 신세다. 자 그렇게 취업준비생이 바라고 바랬던 직장인의 삶을 볼까? 한 달 월급으로는 해외여행 일 년에한두 번이면 많이 가는 거다. 월요일 아침만 되면 회사 가는 출근길,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는 온갖 불안한 생각들로 가득하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데드라인은 왜 맨날 오늘까지야? 이렇게 일에 치이고, 스트레스를 받고, 술담배를 가까이하고, 배만 나오고, 입사할 때 느낀 열정은 온데간데없고 인류애까지 잃어간다. 단 한 명도 웃음 짓는 사람이 없이 개성을 잃어버린 회색 얼굴들이다.

자, 그럼 실제 삶과 SNS 내 삶의 괴리감은 어떻게 해서 생기는 걸까? 왜 이렇게 끝과 끝일까? 그 이유는 SNS에서는 그 누구도 본인의 불행만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바라던 전문직 시험에 합격했다. 누구는 불합격했다. 합격한 사람은 당당하게 인증하면서 SNS에 본인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올릴 것이다. 불합격한 사람은 그걸 SNS에 올릴까? 동정을 구하려고? 굳이? 절대 안 올린다. 자존심도 상하고, 모두가 행복한 이 세계에서 내 모습이 모난 돌 마냥못나 보이기 때문이다. 꼴등의 삶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못나 보이는 소위 좌절한 모습을 SNS에 올렸다 치자. 나에게 돌아오는 대답들은 기껏해야 동정, 위로. 다음에 잘 될 거야, 힘내, 뿐이다. 싫어요 버튼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 좋아요를 누를 수도 없다. SNS라는 곳의 시스템은 행복만 모습만 보이도록 짜일수밖에 없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 시스템에 우리가 매몰되면서 반대로 시스템이 우리에게 되돌려준 것은 ‘상향평준화 된 삶’뿐이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라인드, 네이버카페 등 모든 넷상의 커뮤니티를 SNS라 가정했을 때, 우리 삶은 지나치게 상향 평준화 되어있다. 그 상향된 기준에 모두가 이를 맞춰가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월급 300만 원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실제로 몇이나 될까. 근데 SNS상에서는 월급 300은 욕만 먹는다.얼굴을 들이밀 수도 없다. 실제 대한민국 대부분의 회사가 신입사원기준 월 250만 받아도 양호한데 말이다.'월 천만 원'이 어쩌면 하나의 고유명사로 자리한 지금,우리는 SNS가 아니라 우리 당장 옆에 있는 사람을 봐야 한다. 누구나 강남 살면 다른 곳은 사람이 안 사나?

누구나 외제차 몰면 도로에 국산차, 경차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월 천만 원을 벌든, 월 오백만 원을 벌든 인터넷상에서 인정받기 위해 인증을 조작하는 사례도 많이 나오는 걸 보아 SNS는 그야말로 목적 없이 인정만 갈구하는 사람들의 집합소일 뿐이다.

인정과 관련한 이런 사례 때문에 본인을 상황을 확인하려는 사람까지 생기고 있다.

실제 내가 어제 우연히 커뮤니티에 들어가 본 대화창이다. 이 외에도,

"29살인데 연봉이 5천만 원, 자가를 보유하고 있고, 차는 무엇이고, 제 삶 잘 살고 있는 것 맞나요?"

부터 시작해서 본인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방식은 가지각색이다. 위에 예시는 단지 ‘어제’ 본 예시일 뿐 실제론 몇 천개 몇 만개다. 그들은 본인의 질문에 맞다고 한명이라도 인정해 줄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아니라고 하면 거기에 대고 반박한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본인은 어떠시길래? 저를 욕할 자격이나 있으신가요?"

로 갑론을박을 펼치며 싸움이 시작된다. 본인의 무지가 타인의 의한 공격으로 변질되는 원초적인 원인이 바로 SNS인 것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나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거나 잘돼면 진심으로 축하해 주면서도 본인을 돌아보게 된다. 사람은 어쩔 수 없다. 관계보다 당장 내가 먼저고, 내가 잘 살아야 하기때문에. 마치, 나는 아직 취업준비생인데 친한 친구가 대기업에 합격했다고 할 때 축하하는 기분처럼. 그리고 인생이 잘 풀렸다고 생각하는 그 친구는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그 어떤 누군가에게 최소 한 명 이상에게 질투나 시기를 받게 된다.


우리는 SNS가 아니라 현실에서 질투나 시기를 더 많이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게 좋은 일이 생겼다고 그걸 SNS에 포스팅해서 받는 좋아요, 댓글 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현실에서 타인의 부러움을 더 받아야 한다. 질투나 시기를 두려워하거나, 회피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좋은 것이다. 그 순간을 즐겨야 한다.

질투나 시기를 하는 사람은 그 상대방이 본인보다 우월한 걸 받아들이지 못해 우월하지 않은 갖가지 이유를 만들어내며 본인을 정당화하기 바쁘다. 그 이유는 본인에 대한 이유일 수 있고 질투를 받는 상대방에 대한 이유일 수 있다.

가령, "이번엔 내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 거야", "쟤는 그럴만한 인맥이 있었을 거야, 믿는 구석이 있었을 거야" 등등. 그렇기 때문에 이 근거 없는 이유들이 질투나시기로 변질되어 타인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런 질투나 시기를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SNS를 끊어야 한다. 거짓된 가상세계를 포기해야만 한다. 가짜 자랑이 아니라 진짜 내가 잘나고 싶은 모습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서 상향평준화돼버린 비교군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에 심적으로 훨씬 편안하고, 오히려 더 자유로워진다. 이때 비로소 청년들은 진짜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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