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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Jun 04. 2024

월 300만 원도 도망간다

글쓰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에 대한 소고

너도나도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세상에서 역설적으로 글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확히는 글이 아닌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해서다. 왜? 월 300만 원도 도망가는데 글쓰기는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쓰는 사람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읽는 사람이 없거든. 사실 글을 쓰는 작가는 지금이 아니라도 아주 오래전부터 멸시받아왔다. 오죽했으면 국문과를 ‘굶을까’라는 동음이의어까지 써가며 바꿔 조롱하곤 했다. 굶을 정도로 돈을 못 버는 직업이라는 거다. 이 모든 건 이 말을 지어낸 사람의 의견만이 아니라 취업률이나 실제 졸업생통계를 기반해 나타낸 거다. 모든 예체능 직업군이 그렇겠지만 상위 5% 정도만 작가라는 직업을 부업 없이 현업으로 유지할 수 있다. 모 유명 작가는 절대 본인의 직업을 그만두고 전업작가를 하지 말라고까지 했다. 작가가 직접 이런 말을 하는 직업이다. 불안해서 글도 더 잘 안 써지거니와, 이도저도 안 되는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나 뭐라나.

다 차치하고 1년 6개월가량 이 브런치라는 앱에서 매일 글을 쓰면서 느낀 소고도 이와 다르지 않다. 경험상응원하기라는 후원이 생겼어도 이 글이라는 것이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만드는 데에는 확실히 한계가 존재하는듯 보인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당장 글쓰기가 돈이 안된다는 이유가 족히 다섯 개는 넘게 떠오른다. 심지어 요즘은 글이 아닌 영상을 보는 시대다. 콘텐츠 소비자가 영상도 다 안 보고 숏폼으로 짧고 더 강력한 것을 바라는 시대에 무슨 장황한 글을 쓰겠다고. 너무 맞는 말이라 반박할 여지도 없다.

자, 그럼 트렌드에도 안 맞는 글을 왜 쓰는지 물어보겠지. 이건 사실 내게 엄청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연한 발견일 뿐이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내게맞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를 우연히 발견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냥 이걸 계속하는 거다.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그냥 그렇게 계속 쓰는 사람’이 맞겠다.

누구는 내가 책을 두권이나 냈으니 거창하게 작가라고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사람도 내가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서 계속 쓰기 때문에 작가라 부르는 것이라 여긴다.


이럴 때마다 요즘 유독 드는 생각이 있다. 바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길거리에는 나무부터 시작해서부모님이나 결혼을 했다면 와이프, 형제, 내가 믿고 있는 오래된 친구들이 있겠지.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존재들이다.

내가 변하지 않는 것들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명확하다. 통장에 30만 원 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다. 취업이 되지 않고 오랫동안 자존감이 하락해 친구와의 연락도알아서 내가 끊었던 시기다. 그러자 친구들은 내가 불편해서 그렇다는 정당화된 핑계로 더 이상 날 찾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한 명 지금의 와이프 그 당시의 내 여자친구는 끝내 내 곁을 지켜줬다. 당장 내일 노가다라도 해도 널 버리지 않겠다고 했던 게 그때의 힘듦을 이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인생이 밑바닥을 찍을 때 내 곁을 아무도 지켜봐 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공허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더 변하지 않는 것에 끌리는 것을 의미할지 모른다. 나는 20대에 이성에 매력을 느낄 때 반전매력에 큰 호감이 갔는데, 이제는 하나도 반전 없는 사람이 호감이 간다. 다른 말로 하면 그냥 예측가능한 사람이다. 다음 날 갑자기 말없이 사라진다거나, 잠수를 탄다거나, 예측불가능한 돌발행동을 한다면 어떻게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겠나.

 

글쓰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당연 돈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주목을 받아야 돈도 많이 벌것이고, 트렌드에 탑승할 수 있는데 왜 시대를 역행하는지에 의문을 갖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사람들은 계속 쓰기만 한다. 글이 주는 본연의 가치를 믿기 때문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낭비하는 시간보다 책 한 페이지를 더 읽는 것이, 쇼츠에 도파민이 중독되는 것보다 글 한자 더 쓰는 것이 인생에 더 도움이 된다는 걸 그들은 안다. 읽을 줄 알아야 더 쓸 수 있고, 더 쓸 줄 알아야 사유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모든 게 사슬처럼 연결돼 있다. 인풋이 없는데 어떻게 글로 아웃풋을 낼 수 있을까. 더 많이 읽을수록 쓰고 싶은 문장들이 많아진다.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트렌드는 어차피 계속 바뀐다. 언젠가는 책을 읽는 것이 곧 교양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거고 게임 중독처럼 전자기기에 익숙한 이들을 멸시했다면, 지금은 전자기기를 잘 만지는 것이 영상편집처럼 하나의 유니크한 기술이 됐다. 중2 때 신은반스신발은 다시금 유행해 2030에게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중3 때 신었던 나이키에어포스는 국민운동화가 됐다. 복고풍 문화, 응답하라 1988 같은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끈 것도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는 현대사회에서 어쩌면 더 세련된 것보다 그리운 것을 찾는 시청자의 가려움을 긁은 것이다.

미국에서 처음 구매했던 아마존 킨들이 기억난다. 당시 아마존 킨들이 미국에서도 큰 열풍이었고, 종이책은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모두가 예측했다. 근데 오히려 전자책시장이 지금은 주춤하고, 여전히 종이책은 건재하다. 아직도 서점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서성거리며 책을 사본다. 종이책의 질감이 좋단다. 이게 좋다더라, 이게 트렌드라더라, 이래야 돈을 번다더라, 다 따라 할 필요 없다. 현재에는 내가 편하고 내가 좋은 걸 꾸준히 지켜나가면 된다. 미래의 결과에 기반해 우리는 그것이 옳았는지 판단할 뿐이다.

우리는 더 성공하는 길이 아닌 그 자리를 그대로 지켜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언젠가 돌아봤을 때 본인이 그 분야에서 이미 대체불가능하고, 자리를 잡은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찍먹이라는 말이 있다. 탕수육 찍어먹는다는 뜻도 있지만 관계나 직업에서 찍먹을 들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다. 신입사원으로 첫 출근을 했는데 내 기대치에 비해 너무 실망스럽거나, 배울 게 없다고 여겨지는 곳이라면 하루빨리 나가는 게 맞다. 거기서 시간을 끌고 버텨봤자 본인이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낭비일 뿐이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랑 성향이 정 반대인 사람을 일부러 맞춰주기 위해, 좀 더 그 사람한테 잘 보이기 위해 억지로 만남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 근데 그것이 아니라면, 한 분야에서 관계든, 직업이든,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이든, 한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이유 없이 싫증 나서 혹은 돈 더 벌 수 있는 걸 찾아 자주 바꾸는 것보다 100배는 어려운 것이고 최소한의 결실이라도 맺는다고 자부한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10대, 20대 때는 관계의 확장단계다. 얘도 알고 싶고, 쟤도 알고 싶고 말 그대로 ‘나 누구랑 친해’가 곧 힘이 되는 시기다. SNS팔로워 수로 타인과 묘한 경쟁심리가 흐른다. 그 친하다고 하는 이가 힘이 세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잘생겼거나, 이쁘거나 하면 나도 그 친구와 동일시된 기분을 느낀다. 친구가 많은 것이 말 그대로 잘 사는 기준이라 여겼고, 내성적이거나 소심한 사람은 못나보였다. 근데 지금은 절대 관계를 넓히려 하지 않는다. 그들을 모두 케어할 시간도, 돈도 없다. 오히려 지금 내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들을 잘 지키는 것이 내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다.


남들이 하라는 것에 반대로 하면 더 독창적인 길이 나온다. 서울에서 부산행 KTX풍경과 부산에서 서울행 KTX풍경은 전혀 다르듯, 다수가 가는 길이 좋은 게 아니다. 그냥 원래의 자리를 지키는 게 좋은거다.

스페인어를 배우러 멕시코에 갈 때 모두가 위험하다고미쳤냐고 했다. 수능을 망쳤을 때 모두가 재수하라고 했다. 회사 직무를 양자택일 하는 순간에서 선배가 알려준 것에 반대로 했다. 지금 그 다른 순간의 선택들에 기반해 훨씬 더 재미있고 값진 삶을 살고 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다. 앞으로 인생에서 더 큰 결정들이 많을 것이다. 그때마다 나만의 자리를 떠올려보자.

남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냥 ‘조언’ 그 이상 이하도아니다. 본인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잠깐의 생각에 그치는 것. 뭐가 좋다고 하는 인터넷에 널린 기사들도 기자도 돈은 벌어야하니 본인 일을 그냥 하는 것 뿐이다.


나라를 지킨 위인들,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들, 기업의 성쇠를 좌지우지하는 CEO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모두 본인만의 올바른 결정으로 지금의 자리를 지킨 사람들이다. 근데 이 과정은 결과만 아름답지 엄청 외롭다. 졸라 외롭다. 그리고 한없이 불안하다. 근데 사람은 원래 외롭다. 그러니까 가족꾸리고, 결혼하고 연애하고 친구 만나고 하는 거다. 내 자리를 지키려면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무한정으로 나 스스로가 먼저 수용해 주면 된다. 내가 나를 먼저 돌보아야 그 자리를 지키는데 더이상 힘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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