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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Jun 05. 2024

초대받지 않은 결혼식에 갔다

관계의 깨달음에 대하여

얼마 전 이경규가 딸 예림이의 결혼식에 지석진을 초대하지 않았는데 와서 너무 큰 감동이었다는 방송을 봤다.

누군가는 내가 미쳤다고 할 거다. 근데 지난주 토요일, 난 지석진처럼 초대받지 않은 결혼식에 갔다.

그와 관계를 말하자면, 평소 내가 참 좋아하던 형이었다. 과거에는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어 밥도 먹고 자주 만남을 가졌지만, 최근 물리적으로 멀어져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어쨌든 난 실제로 모바일청첩장도 받지 못했다. 그냥 바빴다 생각했다. 지인에게 결혼식 며칠 전 결혼한다는 소식을 접했고, 나는 당당하게 주말에 가 축하를 해주고 왔다. 그 형도 너무 고마워하며 너무 멀어 내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주지 못했다고 한다.


초대를 받아도, 심지어 청첩장 받으며 밥을 얻어먹어도 안 오는 사람도 있다. 근데 초대를 깜박하고 하지 못했는데도 나처럼 알아서 소식을 듣고는 축의금을 보내거나 참석을 하는 사람이 있다. 결국 형과 내겐 인생을 살면서 겪는 많은 경조사 에피소드 중 하나로 남게 되겠지. 결혼식에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며 가는 나 스스로를 보며 드는 생각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게 무슨 일이 있든,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내 곁에 있어준다는 확신이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일희일비하며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내가 도덕적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가정하에 무슨 짓을 하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끝까지 나를 좋게 본다.

한 사람의 행동에 있어 평가는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좋게 하고, 누군가는 안 좋게 조용히 평가를 하고, 누군가는 대놓고 솔직한 것이 좋다며 본인을 정당화하면서당사자를 상처 준다. 당연히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또 다른 누군가는,

'아, 나는 좋게 생각했는데, 너무 실망이다. 손절해야겠다' 며 차단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나?' 하며 스스로를 자기검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 바빴나 보지 뭐, 그래도 가야지' 라며 나같이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냥 매 순간 내 기준에서 올곧게 판단하며 누군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든 '아, 이 분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나는 내가 좋아하니 난 그냥 더 잘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게 일상 속에서 그리고 관계 속에서 내가 행복을 찾는 지름길이라 여긴다.


직장인이 삶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항목이 관계라고 한다. 일이 어렵거나 많은 건 어떻게든 참을 수 있는데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도저히 개선이 안된다고한다. 나 혼자만 노력해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럴 때 늘 말하는 게 있다. 상대방을 내게 맞게 바꾸려고 노력하지도 말고, 그 타인에게 나를 맞추지도 말고, 그냥 매칭이 안된 것뿐이므로 각자의 선만 지키면 된다. 서로를 이어주는 소개팅, 선, 미팅이나 결혼해듀오, 가인 같은 결정사 업체, 나는 솔로, 돌싱글즈 같은 예능은 이렇게나 큰 인기를 끌 만큼 대중적이면서 왜 굳이 우리는 사랑에만 초점을 두어 '매칭'을 한정하는가.

소개팅을 나갔는데 생각보다 내 마음에 들지 않아 커피만 마시고 헤어졌다고 치자. 집 가는 길,

'오늘 만남 즐거웠습니다. 더 좋으신 분 만나길 바랄게요'

라고 텍스트를 치는 본인의 심정을 떠올려보자. 물론 아쉽고 슬프지. 근데 직장 상사가 날 괴롭히는 그런 스트레스와 동급의 스트레스인가? 전혀 아니다. 그냥 매칭이 잘 안 됐다고만 여기고 다음 날 다시 다른 친구에게 가서 다른 사람 소개를 해달라고 조를 것이다. 관계도 그냥 매칭이 안된 거라고 생각하면 그뿐이다. 어차피 지금 본인 곁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사람들은 다 본인을 잘 매칭된 상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옆에 있어 주는 거니, 전혀 외로워하지도 스트레스받아하지도 않아도 된다. 좋아하는 정도는 물론 다를 수는 있겠다. 굳이 수치로 표현하자면 나는 8 정도 좋아하는데 그 상대는 7일 수 있고, 6일 수 있고 그런 식이다.


사람의 뇌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빨리 그리고 강하게 반응한다. 리스크를 먼저 발견해서 최대한 그걸 사전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이 모든 이유는 아주 오래전부터 동물이나, 적의 위협으로부터 자신과가족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이다. 관계에서 나오는감정도 이와 같다. 특정 한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기분은 좋은 감정보다 슬픔, 좌절, 분노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더 풍부하게 감지한다. 이런 부정편향을 우리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아, 그냥 나는 이 사람이랑 안 맞는가 보다'

끝. 더 말할 것도 없다. 그게 끝.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 분명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 분이 계실 것이다. 결혼을 계획하면서 풀리지 않는 고민 하나 중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이 사람한테 청첩장을 줘야 할까?'

다. 안 주자니 서운해할 것 같고, 주자니 부담스러워할 것 같고. 그냥 주면 된다. 어차피 그 사람이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한다. 안 줘도 결혼식 오는 나 같은 사람도 있는데 뭘.

짝사랑도 똑같다.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것이 짝사랑이라 생각한다. 자기 전에도 생각나고 꿈에도 나오고 혼자 끙끙 앓으며 이토록 좋아하는데 상대방은 본인을좋아하는지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손해 보는 장산가. 나 같으면 좋아해서 잠이 안 오는 게 아니라억울해서 안 올 것 같다. 이럴 때도 그냥 근사하게 말할필요도 없고, 고민할 필요도 없고, 부담스러워할 필요도 없다. 그냥 담담하게 좋아한다고 말하면 된다. 나랑 사귀어줄지, 안 사귀어줄지는 그 사람이 판단하는 거다. 나는 결과가 어떻든 너무 홀가분할 것 같다. 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기 때문에. 이제 고민은 그 사람이 하겠지. 밤마다 끙끙 앓으며 뭐가 본인에게 더 나은 선택인지 처절하게 고민하겠지. 얼마나 속 시원한가? 내가 느꼈던 걸 그 사람도 똑같이 느껴보니까.

늘 주사위를 던질 사람은 나여야 하고,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으면 관계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사회, 그리고 타인의 시선과 기준 속에 우물쭈물하며 나를 가두지 말자.

우리가 안 그런다 해도 나이가 들면 어차피 곁에 사람들이 조금씩 줄어든다. 부정편향을 가질 건더기도 많이 줄어든다. 왜? 만날 사람자체가 없으니까. 이에 결혼식을 가고 싶은 사람도 줄어든다. 나를 맞춰줄 수 있는 상대, 내가 맞추고 싶은 상대를 찾는 게 한 살 한 살 먹으며 더 힘들어진다. 내가 성격이 점점 거칠어지고 모나서가 아니다. 머리가 굵어질수록, 생각이 많아질수록 고독이 커져서다. 깨달음의 대가다.


이 와중에 초대받지 않았지만 가고 싶은 결혼식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기 힘든 현대사회에서 아무쪼록 꽤 괜찮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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