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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Jun 07. 2024

서울에 꼭 살아야 할까?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

내 고향 울산이 망해간다는 글을 과거에 쓴 적이 있다. 산업동력을 잃은 제조업 붕괴가 주된 원인이다. 좀 더 들어가면 이는 생산에만 치우친 제조현장, 남녀성비의불균형,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귀족노조의 횡포 등 여러 이유로 청년은 울산을 떠나는데, 울산뿐 아니라 거제, 포항등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방이 인구유출 때문에 요즘 고생이다. 마치 미국의 디트로이트를 연상케 한다.

지금 울산은 인구유출을 막기 위해 타 지역에서 울산으로 주소이전을 한 대학생에게 20만 원을 준다. 오죽하면 이젠 현금살포 포퓰리즘까지 왔다. 이렇게 지방은 어떻게든 청년 유출을 방지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제 내 십년지기 친구가 서울을 떠났다. 더 이상 서울에 살고 싶지 않아서다. 직장도 과감히 지방발령근무 신청을 하고, 방을 뺐다. 오랜 고민도 없이 한 과감한 선택이었다. 울산에서의 삶이 훨씬 더 여유롭고, 사람도 많이 없고, 더 넓은 집에서 삶의 질을 올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월세 60만 원이 굳어 그걸로 어떻게 재테크를 할지 행복한 고민 중이었다. 남자친구가 있을 때에는 서울에 있을 이유가 하나라도 있었지만 이젠 그마저도 없어 더 손쉬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반대로 당진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내 친구는 어떻게든 서울로 오려고 한다. 회사가 3년 찬데 연봉을 9천만 원이나 주는 대기업인데도, 언제나 서울에 오려고 서울에 본사를 둔 곳에 이력서를 넣는다. 신입으로 다시 재입사하는 것이기에 물론 연봉은 더 낮다. 그래도 서울에만 온다면 연봉을 반이나 낮춰도 상관없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오고 싶어 하는 이유를 물으니 바로 기회 때문이다. 그 기회는 연애, 양질의 일자리, 일자리에서 오는 인맥, 문화여가생활 등 다방면에서 설명가능하다. 그렇다고 내 친구만 이런 고민을 할까? 직장인 앱이나 커뮤니티에 가면 심심찮게 보이는 것이 이런 벨런스 게임이다. 예를 들어보자.

메이저 공기업 연봉 6천 전남 나주 근무 vs 중견기업 연봉 4천5백 서울 근무

이런 조건이 있을 때 어떤 선택을 할지 조언을 묻는 글이다. 나는 울산에 오랫동안 자라 지방에 대한 편견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90%가 넘는 사람들이 1번을 선택할 줄 알았다. 나주에 근무하면서 평화롭게 연봉도 많이 받고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결과는 놀랍게도 2번이 압도적이다. 전라도에 본가가 있거나, 지방근무를 오래 한 경험이 있는 몇몇 답변을 제외하고는 전부 2번이다. 그만큼 서울이 가장 살기 좋고피할 수 없는 선택이며 서울을 벗어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마치 탈서울은 좌천을 당하는 것처럼 여긴다. 마치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인양.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은 아예 한국 자체가 답이 없다며 하루빨리 이민을 추천하는 사람도 있다. 외삼촌 쪽 형제들이 전부 호주에 몇 년 전부터 살고 계신데, 그 이유를 들어보니 한국은 도저히 답이 안나와서 하신다. 청년들의 취업부터 시작해서 중장년층의 노후를 생각했을 때 여러모로 이민이 압도적으로 좋고, 후회해 본 적도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말 그대로 격한 경쟁 속에 살아남기가 너무나 힘든 이 헬조선에서 나 보고도 매일영어도 되니 하루빨리 취업비자를 받아 탈출하라고 말한다. 적게 일하고, 돈도 많이 벌고, 훨씬 양질의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우리 2030은 그럼 어디에 살아야 할까? 사람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의식주, 그중에서도 어디서 사는지 ‘주’다. 집에 잘 나만의 공간, 최소한의 보호막이 주는 안정감이 매우 크기에 사람들은 집을 사는 것이고, 매일아침 부동산 관련 뉴스가 1면을 채우는 것이다. 그럼 남들 다 가는 서울로 가야 하나, 지방으로 가서 행복을 찾아야 하나? 아니면 해외로 가야 하나? 주변의 너무나 다른 선택 속에 청년들은 혼란스러워한다. 서울과 수도권에만 이천육백만, 대한민국 인구의 50%가 넘는 현 상황을 사실 앞서 말한 삶의 기회 때문만이라고 하기엔 한없이 부족하다. 과도기도 아니다. 그냥 애초에 아주 오래전부터 서울수도권에 이미 많이 밀집해있었다. 도대체 왜 뭐 때문에 이렇게 애초에 서울로 몰리게 됐을까.

서울 공화국이 된 주된 원인은 내 생각에 Self fulfilingprophecy 때문이라 생각한다. 직역하자면 자기 충족적(실현적) 예언이라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자신에 관한 혹은 타인으로부터 받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예언들이 현실화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친구가 "너 울산에 있으면 답이 없어, 서울로 와야 해"라고 말하면 진짜 서울로 가면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고 스스로 믿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다수일수록 이 Self fulfiling prophecy는 더 강해진다. 실제 서울에 가서도 취업이 안될 수 있고, 더 힘든 삶을 살 수 있는데 남들 다 잘 되는 것처럼 보이니, 진짜 그렇게받아들이는 것이다. 울산을 예로 들면 부산도 있고, 창원도 있고, 김해도 있을 텐데 다른 대안책 없이 오로지 '서울'로 그냥 뇌에 박아버리는 거다. 서울과 울산을 예로 들면 인구가 서울수도권에 이천육백만 명이고 울산은 고작 백만인데 상식적으로 전자에 인생 잘 풀리는 사람이 많은 게 당연한 논리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이 자기 충족적 예언을 맹신해 버린다.

솔직히 서울은 미세먼지에 숨도 못 쉬고, 월세도 너무 비싸고, 돈도 못 모으고, 사람에 치이고, 교통체증에, 문화 여가생활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은 큰 차이도 느끼지 못한다. 공부의 기회도 서울이 많다고 하지만 그렇게 치면 사실 원칙적으로는 지방에 수능만점자는 나오지 않아야 하고, 성적이 낮은 학생들만 있어야 한다.

왜 서울에 청년들은 많이 몰리는가를 보면 스스로나 타인이나 Self fulfiling prophecy가 서울로 맞춰진 게 모든 시초가 서울이라서 그렇다. 대한민국은 모든 산업과 트렌드가 서울에서 시작해 지방으로 퍼져나가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당연히 많은 일자리를 만든다. 그래서 앞서 설명한 기회라는 것이 바로 돈을 버는 이 일자리가 중점이 되는 것이다.

이런 수도권집중화를 줄이기 위해서는 공공기관뿐 아니라 유수의 대기업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했을 때 세금을 감면해 준다거나, 상속세 면제 같은 혜택을 줘서 인구분산 및 균형발전을 이루어야겠지. 이 외에도 정말 수많은 방안을 정부는 고려하고 있다. 근데 과연 진짜 지방으로 인구분산이 될까? 몇몇 기업이 설령 지방으로 간다고 수도권 집중화가 완화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이다.


하나 중요한 것은 청년들은 이제 더 이상 정부를 믿지 않는다. 한번 솔직하게 얘기해 보자. 모든 정부 부처의 정책을 시행하는 고위공무원들은 선출직이다. 이 사람들은 그 자리까지 올라가는 과정에서 돈을 모으고 공약을 만든다. 근데 그 돈을 끌어모으려면 누구한테 잘 보여야 할까? 경제적 여유가 있는 40-60대에게 잘 보여야 한다. 청년들의 정책은 사실상 보여주기일 뿐이고, 모든 정책은 이 중장년층에 맞춰져 있다. 이 사실을이제 청년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거다. 청년들 정책이 있다한들 쥐꼬리만 한 걸 확대하고 부풀려 언론으로 조장할 뿐이다. 저조한 출산율에 대책을 내놔도 애를 낳나? 개선됐나? 실질적으로 삶의 개선이 되기 전까진계속 안 낳을 거다.

공무원들은 무조건 표로 움직인다. 그 어떤 종류의 표든 모든 표본은 40대부터 50대, 60대가 가장 많다. 본인들 임기가 끝날 때까지 잘 보이면서 이제 본인들은 노후자금을 만들어야 하는데 청년들이 눈에 보이겠나? 요즘 유행하는 MZ용어 말 그대로 '알빠노'다. 1도 관심도 없다는 거다. 정권이 바뀌면서 맨날 따라 바뀌는 공시가격이나 종부세폐지 이런 전반적인 논의 자체도 사실 모든 기반이 40대-60대 중장년층이다. 청년들이 부동산 살 돈이 어딨나. 서울살이 혼자 살면서 월세 60만 원 내는 것도 힘들어 허덕인다. 사실상 그들에겐 청년들이 어떻게 살든, 출산율이 바닥이든 말든 당장 앞에 놓인 이익만 눈에 보일 뿐이다.


청년들은 과거에는 이를 몰랐지만 이제 똑똑해서 다 안다는 게 문제다. 기성세대가 청년에게 하는 조언들 가령 ‘너흰 노력이 부족해서 취업이 안되는 거야’ 이런 말들도 예전 같았으면 정확한 근거를 들어 반박했겠지만, 이제는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냥 침묵한다. 말을 해도 그들은 바뀌지 않을 것을 알기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거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잃을 것이 많아지기에 변화를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이에 타인을 관철시키고 그 세상이 전부인양 살아간다. 선거 때 경상도나 전라도 봐라. 누가 어떤 공약을 들고 나오든 색깔이 정해져 있다.

청년은 이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한민국이라는 저성장국가에서는 기성세대처럼 올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른들이 말하는 것 중 맞는 말이 딱 하나 있는데 공부도 좋지만,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으라는 것이다. 근데 그걸 도저히 찾을 수 없는 획일화된 환경에서 그걸 찾으라고 말만 한다.   


청년들은 이제 한쪽으로 편향되어서는 안 된다. 서울에서 살든 지방 내려가서 살든 정답은 없지만 최선은 있다. 내가 생각하는 골인지점에서 그걸 포용해 줄 수 있는 곳에 살면 된다. 이젠 철저히 내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이익에 걸맞은 선택을 해야 한다. 단적으로 그게 돈이든, 자연이든, 소소한 행복이든 뭐가 됐든. 세상이 더 그렇게 각박하게 변할 것이다. 물 한잔이 있다고 하자. 그걸 마신다 했을때 내가 지금 목말라 죽겠는데 남한테 물 양보해 줄 수 있나?

대신 최소한의 낭만은 있어야 하니, 그 골인지점 안에서 내가 생각하는 행복을 작게나마 찾을 수 있는 곳. 거기서 살아야 한다. 그런 곳이 이 세상에 없다고 하면 내가 만들어야지. 하루빨리 내 골인지점을 정하고 그

‘core’에 살을 조금씩 붙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걸 본인이 모른다면 Self fulfiling prophecy에 빠져 남 따라 서울 와서 운 좋게 직장 생활하다가 일하고 퇴근 후 맥주, 또 일하고 맥주, 허송세월 하면서 무한반복이다. 그건 기성세대가 아닌 청년 탓이다. 우리가 본인 스스로 뭘 원하는지 주체적으로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최빈국에 사는 사람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 어딜 가든 피해 안 주고 내 골인지점에서 결국 내가 행복하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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