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그리 Jun 12. 2024

당근과 맞바꾼 인류애

당근과 포용의 상관성

한국 사회는 여유라는 게 없어 개인을 짓눌러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피로하게 한다. 앞서 설명한 청년백수얘기처럼 이 현상은 단순히 개인의 진로나 경제적인 면을 넘어 일상생활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특히 무례한 행동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힐 때 나는 이들이 여유가 없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어제 나는 에어팟 프로를 잃어버렸다. 정확히는 본체만. 두 유닛을 모두 귀에 낀 상태로 버스에서 자다 본체를 놓고 내린 것이다.

자, 이런 경우엔 우리에게 편리한 해결책이 하나 있다. 바로 당근. 당근에는 오른쪽 유닛을 잃어버려 왼쪽만 사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왼쪽을 잃어버려 오른쪽 유닛만 사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본체만 사려는 사람도 있고 가지가지다. 새 상품을 제외하고 어떤 물건을 사고자 할 때 필요한 건 진짜 웬만해서는 당근에 다 있기에 나는 사기 전 늘 당근을 검색해 보는 편이다.심지어 요즘은 새 제품도 미개봉으로 당근에 1~2만 원저렴하게 올라오기 때문에 새 상품도 사용하기 용이하다. 검색만 하면 다 나온다.

그래서 오늘 아침, 에어팟프로를 잃어버린 걸 알고는 바로 당근을 검색했다. 운 좋게도 내가 사는 지역 근처에 4만 5천 원에 본체만 파는 사람을 발견했다. 당장 약속장소를 잡았다. 어디로 가면 편하겠냐고 나는 물었고, 그 남자분은 내가 사는 지역까지 오겠다고 했다. 처음 난 중간에서 만날 심산이었으나 그분이 온다고 먼저 말을 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멀리서 누군가 걸어오시는 게 보였다. 40대의 중년 남성분이셨다. 당근을 할 때 가장 먼저 묻는 공식 질문,

“혹시, 당근이세요?”

라고 물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나한테 하는 말이,

“제가 이까지 택시 타고 왔으니까 만원 더 추가해서 5만 5천 원 주시면 됩니다”

라고 아주 친절하고 당당하게 말씀하신다. 택시를 타고 온다고도 안 했고, 금액을 올리겠다고 사전에 아예 말조차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면전에서 이런 통보를 하니 당황스러웠다. 이랬으면 4만 7천 원에 올린 다른 사람에게 샀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서로 얼굴을 붉히기 싫어 결국은 5만 원으로 합의를 봤지만, 하루종일 나쁜 기분은 돌릴 방법이 없었다. 고작 4만 5천 원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을 줄이야.

이처럼 당근에는 일명 당근거지라고 불리는 사람이 많다. 이 당근거지는 유형도 다양한데, 먼저 내가 당한 수법처럼 만나서 500원이나 1000원, 만원 금액을 갑작스럽게 올리거나 내리는 경우이다. 파는 쪽이면 올리고, 사는 쪽이면 내린다.

더 이상 내릴 가격이 없이 올렸는데도 어떻게든 일단 던지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가 동남아 야시장으로 착각하시는 건가. 아니면 인도여행을 갔다 오셨나. 인도에서는 예를 들어, 원래의 가격이 10루피의 제품이 있다면 당당하게 50루피라고 부르고, 나에게만 선심 쓰는 척,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30루피로 깎아준다.멕시코에서는 동양인이 처음 택시를 타면 원래의 가격의 정확히 2배를 부른다. 깎아주지도 않는다. 근데 한국에서 당근 앱을 이용하면 외국에 가지 않고도 그때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약속 바꾸는 걸 당연시 여기는 유형이다. 내일 만나기로 했다면 내일 만나야 하는데, 사전에 말도 없이 10분 전 약속을 바꿔야 한다고 급작스럽게 말하거나, 아니면 아예 해당 날짜에 잠수를 타버린다. 서로 초면인 관계가 100% 가까운 앱에서 이럴 때일수록 더 예의를 지켜야 하는데 몰상식하고 무례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

마지막 유형은 의심하는 유형이다. 100만 원짜리 시계를 올린 적이 있다. 언제, 어디서 샀고 얼마에 처음 구입했는데 이렇게나 싸게 팝니다라는 식의 글을 올렸는데 의심에 의심으로 한 시간을 넘게 대화했다. 심지어 본인이 인터넷을 찾아 나보다 더 싸게 내놓은 곳을 몸소 직접 찾으셔서 깎아달라고 한다. 그럼 거기서 사시면 되는데 굳이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이 분은만났을 때도 시계를 5분 정도 계속 만지작거리시더니 결국 그렇게 가져가셨다.


삶이 퍽퍽하다. 물론 당근이라는 아주 삶에서 작은 집단에서 느끼는 일반화일 수 있다. 친절하시고 좋은 분도 많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겪은 몇몇 분들을 돌이켜보면 다른 사람들도 최소 한 번 이상의 경험은 이미 가지고 계신 듯하다. 말 그대로 각자도생의 시대다. 근데 내가 이렇게 생각하면 타인도 똑같이 생각한다. 더 상처받지 않으려고, 손해보지 않으려고 본인이 살아남기위해 상대에게 더 날카로운 면만 들이민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가 더 배려하는 문화를 길러야 한다. 원래 당근마켓은 커피 한잔 값정도 서로 나누면서 필요한 물건을 주고받으며 정을 쌓아가는 취지에서 나온 거다. 인터넷 중고거래는 멀기도 하고, 사기가 많아 근거리의 사용자들이 편리함을 느낀 것이다. 서로 상부상조하려고, 좋은 물건 합리적인 가격에 나눠가지려고 당근에 들어온 건데 인류애를 잃어가는 건 당근을 알기 전보다 훨씬 더 손해인 장사 아닌가.

당근이라는 커뮤니티는 내가 가진 물건도 팔면서 오픈되어 사용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는 공간이라지만, 진입장벽이 낮기에 각자의 다양성과 취향이 모두 존중받기에 쉽지 않은 곳이다. 근데 현실은 더 극단적으로 존중받는 사례 자체가 드물도록 변질됐다. 무례함이 당연시되는 사회. 무례함의 뜻도 모른 채 서로가 서로를 무례하다 단정 짓는 사회. 우리는 돈을 아끼는 것보다, 부자가 되는 것보다, 서로를 먼저 포용하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 돈을 남기고 재산을 남기는 게 아닌 이 태도를 남겨야 한다. 그리고 물건과 돈뿐 아니라 그 태도를 다른 사용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3,000원, 5,000원, 10,000원 물건과 값은 그냥 수단일 뿐이다. 그게 진짜 당근이라는 앱이 더 빛날 수 있는길이다. 이제는 당근을 하고 돌아서는 길, 그 사람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 How are you? 의 진짜 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