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모든 것들과 소비를 돌아보며
지오디의 '반대가 끌리는 이유'라는 노래가 있다. 대충 가사만 봐도 알 수 있듯, 남녀 서로가 다르고 삐딱하게 외줄 타기를 타는 와중에도 유독 상대에게 본인도 모르게 끌리는 매력이 있다는 내용의 가사다. 이는 연애에서만 국한된 하나의 예시지만, 어쩌면 반대가 끌리는 건 현대사회에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지금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게 누군가. MZ세대다. 사회에서 비교적 소득이 높고, 앞으로 이 세대는 근 5년 이내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가장 강한 축으로 자리 잡는다. 40,50대가 지는 해라면 이제 MZ가 대한민국을 움직인다. 이들은 결혼을 하고 이제 하나 둘 부모가 된다. 이미 Z세대인 10대와 20대는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이 기성세대와는 따로 공부를 해야 할 정도로 다르고, MZ세대에서의 자녀는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한다는 원론적인 말은 뒤로하고 이해하기 전 서로가 적어도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 학습이 선행되어야만이 관계에서의 트러블을 막는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취향을 존중받길 원하며 이를 자신 있게 드러내며 주변인과 공유하기를 즐기는 세대. 그리고 적자생존에 가장 적응력이 빠른 세대. '공부만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라는 기성세대의 목표와 강요된정답아래 이들은 '공부만 해도 잘 먹고 잘 살 수 없으니알아서 살아남아라'가 답이라는 걸 이미 깨우쳤다. 똑똑하다. 뭘 해도 정답이 없고, 본인이 그걸 깨우치고 경험하면서 나아가는 세대라 미래는 불안정하나 늘 당차고 도전적이다.
이와 관련해 내가 그들에게 염려되는 것은 바로 사고력이다. 이들은 스마트폰이 단 10분이라도 곁을 떠나면 불안해하며 안절부절못한다. 스마트폰 안에서 모든정보를 습득하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으며, 짧고 빠른 것에 자극적으로 반응한다. 5분이 넘어가는 건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기에 도저히 참을성이 허락하지 않는다. 짧은 시간이라도 늘 폰을 손에 쥐고 오른 검지 손가락으로 SNS 피드나 내리고 있다. 이 피드 내용 중 백개 중 구십 개는 본인 인생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본인의 경험에 비친 정보성 글이라도 본인자랑일 확률이 높고, 주식 수익인증이나 요즘 유행하는 옷, 유행하는 짤, 인생한탄 글, 뉴스짜깁기로 구독자를 늘리려는 영양가 없는 글뿐이다.
자, 그러면 무슨 문제가 발생하는가. 인생에 여백이 없어진다. 여백은 사고력, 관계, 비즈니스, 의식주, 목표의식 등 생활하는 모든 것에 있어 필수적이다. 무엇이든 빈 공간이 있어야 본인에게 이로운 게 들어갈 수 있다. 미니멀리즘이 최근 붐을 일으킨 것도 단순히 물건을 버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걸 발견해 삶의 질을 높여가는 하나의 맥락인 것이다. 여백이 없는데 이 와중에 사고력은 절대 길러질 수 없다. 조금이라도 여백이 보이면 이들은 그 여백을 물건이나, 쓸데없는 영상으로 채워버린다.
무슨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전에 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따라서 뭐든 인풋을 안 넣어야 안 사고 안 한다. 어린아이를 집에 둔 부모가 왜 집에 TV를 없애는지 생각해 보면 된다.
현재의 10대와 20대가 꿈꾸는 목표와 환한 미래에 있어서는 그 여백 중 사고력은 무조건 포함되어야 한다고 본다. 어떤 목표를 세운다 하더라도 일단 다른 생각을 해야 본인만의 독창적인 시야가 생긴다. 그걸 훈련하는 과정이 20대다. 근데 획일화된 것들에 본인이 아무런 감정 없이 이끌려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영혼 없는 로봇보다도 못한 인생이다. 그래서 도파민에 절여진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모든 걸 절제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서 그 반대가 필요하다.
내게 꿈이 하나 있다면 거실 전체를 서재로 만드는 것이다. 자녀가 생기거나 누군가를 집에 초대했을 때 TV와 스마트폰에서는 잠시 떨어져 색다른 편안함을 선사해주고 싶은 것이다. 자녀는 절대 본인이 이를 억지로 책을 읽어야 하고, 스마트폰을 뺏어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모인 내가 그걸 자처해서 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를 보고 사고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 이게 여백을 건강하게 채우는 일이라 여긴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게 '도파민 디톡스'라고 해서 파주,강릉 자연이 있는 곳에 북카페라던가, 혼자 머물 수 있는 숙소가 청년들에게 인기가 많다. 두 달 전에도 벌써 매진이다. 스마트폰과는 하루 내내 단절돼 책과 자연을 벗 삼으며 마음의 안정과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이처럼 청년들은 빠르게 바뀌는 현대사회의 물살에 휩쓸리지 않고 조금 더 긴 호흡을 가지고 갔으면 한다. 어쩌면 삶이 점점 피폐해지고 팍팍해져 (어쩔 수 없이) 본인에게 유리하고, 도움이 되는 정보만 악착같이 찾으려는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지만 정작 하고 있는 건 쓸데없는 가십거리에 매몰돼 있는 현실이 나는 안타깝다.
하루 24시간 중, 혹은 본인이 쉴 때 진정 어린 편안한 감정을 가진 적이 언제인가? 예상되는 답변은 고향에 갔을 때라던가,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한적한 곳으로 갔을 때라던가, 산책을 할 때, 자연이 우거진 곳에 놀러 갔을 때, 등산, 해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등등 여러 가지가 있겠다. 이 중에서 스마트폰이나 미디어에 노출됐을 때를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내가 볼 때 없을 것이다. 있어도 극소수겠지. 왜냐면 이는 결국 끝에 피로밖에 남는 게 없거든.
90년대 지하철역 앞 약속장소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아래를 보자.
놀랍게도 모두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리고만 있다.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러고 있는 것이다. 근데도 다 잘 만나고, 연애도, 비즈니스도 모두 잘 돌아갔다. 오히려 그땐 삶의 여백이 있었기에 낭만이란 것도 함께 따라왔다. 남들이 최신 스마트폰 사고, 최신 기기를 사서 자랑할 때 우리는 이제 반대를 선택해야 한다. 세상은 이 반대를 앞으로 주목할 것이다. 최신 전자기기를 사는 게 아니라 모두가 선점하기 전에 먼저 이 디톡스를 실행하는 게 진짜 트렌드세터다.
출판업계가 망해가는 지금 더 책을 읽고, 더 멀리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자연을 가까이해야 한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 불안하다면 초저녁에 폰을 집에 두고 가볍게 30분이라도 부담 없이 산책만 해봐라. 생각하는 폭이 평소와는 달라짐을 느낄 것이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지저귀는 새, 풀내음 자연의 소리를 들을 때면 무한한 상상력 그리고 본인에게 편안한 안식처를제공한다. 쾌락과 고통에 지배당한 뇌가 바뀜을 실감한다. 과밀시대에 이 디톡스는 욕망을 내려놓게 하고, 소비도 줄게 하며, 더 만족스러운 진짜 본인의 인생을 찾을 수 있게 만든다.
하루종일 울려대는 핸드폰 소리, 1초가 다르게 업데이트되는 뉴스와 각종 기사, SNS 거리들. 결국 많이 습득될수록 웃음은 찾아보기 힘들고 피로만 쌓이는 법. 나는 카톡 알람을 10년이 넘도록 무음으로 해놓고 있다. 그리고 내가 보고 싶을 때 본다. 업무상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늘 울려대는 타인의 속도로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피로가 쌓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대에 폰을 놔두고 절에 들어가 이틀을 머문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 급한 연락이 오면 어쩌지', '그 사이 답장을 안 하면 큰일 나는 일이 있으면 어쩌지', '누군가 내가 연락이 안 되는 걸 알고 괜한 신고라도 하면 어쩌지' 한편으로 걱정이 앞섰다. 이틀 뒤 핸드폰을 열기까지도 이건 진짜 하찮은 기우였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연락은 거의 안 와있었고, 나 없이 세상은 잘 굴러갔으며, 주변인 그리고 내겐 그 어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나 혼자 그 사이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온 것이다. 이것만큼 요즘 세상에 개이득이 어디 있나.
반대로 가야 하는 것 중엔 소비를 또 빼놓을 수 없다. 5년 전만 하더라도 '인생 한번 사는데 왜 아끼고 사나' 욜로족이 뜨더니, 경제가 어려워지자 효율적으로 필요한 것 한두 개만 사는 요노족이니, 요즘은 또 듀프족이 뜬단다. 'Duplicate' 영어단어를 줄인 말로, 값어치가 나가는 것을 그대로 복제한 것들만 효율적으로 구매하는 것이다.
샤넬 짝퉁이 불티나게 팔리고, 다이소에 3천 원짜리 하는 립스틱이 명품 립스틱과 흡사하다고 하여 몇 달째 품절이란다. 심지어 다이소에는 5천 원짜리 패딩조끼나, 이어폰도 잘 팔린다. '에이, 저런 걸 누가 사, 비싼 거 사야 오래 쓰지'라고 대부분이 생각하겠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어차피 5천 원짜리 제품엔 큰 기대치가 없기 때문에 고장 날 때까지 쓰고 다시 5천 원 주고 사서 쓰는 게 비싼 거 사는 것보다 실제로 더 이득이 맞다.
한국인이 유독 소비에 있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정가는 얼만데, 나는 얼마에 샀다!
이다. 돈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남보다 싸게 샀다는 자체가 일단 이득을 봤다고 생각해 만족스러운 거다.
자, 반대로 생각해 보자. 너는 그렇게 얼마 싸게 샀는데그걸 3개월 이상 쓸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그럼 싸게 산 그 금액 자체도 결국 버리는 건데?
편 가르기에 혈안이 돼있는 한국인은 욜로족이니, 듀프족이니, 요노족이니 무슨 '족'들을 앞으로 트렌드가 변하며 또 무수히 만들어낼 것이다. 생기고 없어짐을 반복할 거라 확신한다. 변하지 않는 것 딱 하나는 유행에 이끌리지 않고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소비, 그리고 그에 따른 저축은 영원하다는 것. 내가 저축한 돈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 인생을 즐긴다 막 쓰든, 효율적인 것만 쓰든, 한두 개만 사든, 무조건 본인 철학만 가지고 남들과 반대로 가면 된다.
사람들이 비싼 걸 입고, 메고, 쓰고 있으면 반대로 오히려 불쌍히 여겨라. 그 기회비용으로 본인은 미래에 더 많은 걸 가질 수 있다고.
스마트폰이든 소비든, 목표든, 트렌드든 이 세상 본인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남들이 탄 기차가 출발한다고 따라 타면 속된 말로 X 되는 거다.
스마트폰에 다 미쳐있을 때 책을 보고, 소비에 미쳐있을 때 아끼고, 나만의 목표를 세우고, 본인이 트렌드를 만들면 된다. 딱 5년만 지나 봐라. 그 사람은 얼마나 이미 격차가 벌어져있는지. 자, 이제 기차를 반대로 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