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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좁아지는 이유

건강한 관계에 대하여

by 홍그리

서로 굳이 먼저 찾지 않는 만남이나, 의례적으로 어쩔 수 없이 때가 되어 만나는 관계. 서로의 체면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본인이 밥을 사거나, 커피를 산다. 계산대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나서 생각한다. 그 상대에게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라고 계속 그렇게 남기를. 실제로는 그가 본인을 싫어하든 말든 손절하든 본인 인생에는 큰 타격이 없는데도 말이다.

또, 어떤 모임에 가 술을 마시거나 커피를 마시다 순간 정적이 흐른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대개 송년회라던가, 경조사라던가 모임이나 이벤트에서 만나 그런대화를 나눴을 가능성이 크다. 이때는 양쪽에서 최소 한 사람 이상은 스몰톡을 해주거나 그 대화가 끝나갈 때쯤 상대방이 또 다른 주제로 넘어가줘야만 대화가 이어진다. 서로 보이지 않는 엄청난 노력이 수반되는 것이다. 근데 그 만남이 두세시간 지속된다면? 아마 양쪽 다 가시방석일 것이다. 그는 세 시간 동안 시간과 돈을 써가며 결국 고생만 하고 온다. 심지어 그 관계가 경제적 효익을 주는 관계도 아니라면? 그냥 잠깐 ‘시절인연’ 즉, 학교나, 직장, 관심사 등을 이유로 함께 머물었던 사이라면? 그 관계의 지속가능성은 0이라 보면 된다. 약속이 끝나면 허탈과 공허가 그를 감쌀 것이다.

물론 절친한 관계에서의 대화에도 정적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정적은 서로를 불편해하지 않는 것이 전자와 다르다. 오히려 자연스럽고 편안한 침묵이 또 다른 건전하고 건강한 대화로 이끄는 매개체가 된다. 그 공백은 잠깐 쉬어가는 편안한 존재인 것이다.


생각해 보라. 20대엔 새해 1월 1일이 되거나, 연말이 되거나, 생일이 있으면 전부 다 챙긴다. 다다익선.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안부를 알리면서 그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 특히 생일에는 누가 먼저 연락이 오는지, 누가 까먹었는지 전부 다 기억하고 새해인사 때에는 카톡에 있는 목록을 전부 훑기도 한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내가 뿌린 씨앗이 많을수록 말 그대로 내 인생이 풍요롭고, 잘 사는 인생이라 여겼다.

그런데 30대, 40대가 되면 이런 정성은 온데간데 사라진다. 가족, 직장, 재테크, 취미생활 등 본인을 둘러싼 중요한 것들이 더 많아지고, 그것을 온전히 본인이 가장 중심에서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내 관계에 신경 쓸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만약 있다한들 내가 좀 더 가깝고, 내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관계에만 치중하게 된다. 본인이 바빠 어쩔 수 없이 그 관계에 쏟는 시간이 줄어들면, 답장 오는 사람도 줄 것이고,그 관계는 자연스레 소멸한다. 진정 어린 관계라기보다 내가 그곳에 노력을 퍼부었기 때문에 자동반사적으로 형성된 관계였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건강한 관계 즉, 평생 내 곁에 남을 수 있는 관계란 이런 것이다.

먼저, 내가 편안한 사람. 그 어떤 모임이 있어도 조금이라도 불편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굳이 가지 않는다. 서로 억지웃음을 지으며 굳이 그 시간에 자리를 채울 이유가 없다. 여가시간은 말 그대로 내가 편안한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다. 스트레스를 푸는 목적으로 사우나를 할 수도 있고, 책을 읽을 수도, 집에서 티비를볼 수도, 산책을 할 수도 있겠지. 조금 더 돈을 투자한다면 마사지를 받거나, 여행을 가서 리프레쉬를 할 수 있다. 근데 내 시간을 즐기려고 만난 모임에 불편한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애초에 목적자체가 틀린 것이다. 진정으로 서로가 편하다고 생각하는 관계는 본인이 그 느낌을 잘 안다. 한 명이라도 좋으니, 그 수많은 모임에 갈 시간에 자기 계발, 영어, 운동이나 하면서 그 한 명에게 온 신경을 쏟는 것이 남는 것이다.


다음은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사람. 이는 경제적으로 나를 도울 수 있는 관계를 뜻한다. 물론, 직장동료나 사업파트너도 해당한다. 직장동료가 내게 직접 월급을 주는 것이 아니라도, 사회생활을 하며 서로 일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고, 함께 협업하며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 직장이나 사업을 하는 데 있어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건 업무과중이 아니라 결국 인간관계다. 퇴사하고 다른 일로 전향하는 1위의 이유가 관계라고 하니, 안 좋게 지내 나쁠 것 없다. 왜 1위인지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관계는 나 혼자만 노력한다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그들도 나를 좋아해야 하는데 그건 본인의 통제 밖의 영역이거든.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는 뜻은 내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언젠가 내게 기회를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는 나를 진정성있게 여기는 사람이다. 내가먼저 연락하지 않아도,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나를 찾아주는 사람. 나는 1을 주는데 2,3을 내게 주려는 사람.분명 있다. 그만큼 나도 그를 대하면서 내게서 가장 건강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준다는 것은 굉장한 노력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의 세상을 나눠주는 격이다. 그래서 본인은 그 용기를 두배, 세배로 갚아주면 된다.


이 세 가지 부류의 사람만 가져가도 아마 하루 24시간,1년 365일이 바쁠 것이다. 그 외 내 본업, 취미생활, 가족, 내가 가치를 두는 것, 운동이라던가 재테크라던가, 취미라던가 다 해야 하거든. 젊을 때야 안 해도 괜찮지,나이가 들면 이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면 삶이 망가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의무적으로 하는 것들이다.

단, 20대부터 이를 알고 실천한다면 복리효과가 적용돼 조금 더 일찍 허튼 곳에 돈과 감정, 시간을 쓰지 않을 수 있는데, 어차피 누구나 이런 실수는 겪게 돼있다.왜냐고? 사람은 본인이 겪지 않으면 절대 안 바뀌거든.

죽을 정도로 아파봐야 운동을 하고 식단이 바뀌고, 사람에게 데여봐야 관계에서 좀 더 신중해지고, 돈을 크게 잃어봐야 사기를 안 당한다. 어차피 겪어야 바뀌니, 이 글은 겪기 전에 미리 정답을 알려주는 오답노트 같은 것이다. 오는 관계 소극적으로 내치지 말고, 가는 관계 너무 쉽게 보내지 마라. 미래에 어떻게 올지 모른다.학창시절, 수리영역 문제를 생각해보자. 문제와 이 오답노트를 같이 보고 풀면 본인의 실력이 늘지 않듯, 문제가 주어질 때에는 혼자 본인이 겪고 결정하면 될 일이다. 나중에 어차피 알아서 고쳐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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