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계속할 수 있나요
쉬운 건 누구나 쟁취할 수 있지만 쉽게 휘발된다. 하루 종일 술 마시며 재밌게 논 즐거움이나, 단기알바나, 챗지피티에서 이미 가져온 틀에서 살짝 바꿔 낸 자소서를 비롯한 수많은 자료들이나. 쉽게 가져온 건 어쨌든 내가 노력해서 일군 내 지식과 재산이 아니기에 그게 값어치가 있든 없든 휘발성이 강할 수밖에 없다. 내 영혼이 담기지 않은 것이기에.
이 와중에 이번 유로파리그 토트넘 우승은 하나의 깨달음을 준다. 수많은 축구 레전드들이 토트넘을 지난 15년간 지나쳐왔지만, 손흥민은 그 자리에서 15년간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구단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 우승이 있기까지 팀 전체가 아닌 손흥민 개인으로 볼 때 우승의 가장 큰 결정적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딱 하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바로 버틴 것. 그냥 버틴 것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2부 강등하니 마니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주전에서 밀리고 교체명단으로 이름을 올릴 때에도 그냥 계속 버틴 것이다. 오래 남아있다는 이유만으로 결국엔 이토록 값진 결과를 만들어낸다.
우리 주변에서의 오래 남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가치는 현대인에게 더 빛을 발할 것이다. 빠르게 바뀌는 정보화사회 속 누군가에게 오래 기억에 남고, 오래 쓸모가 있고, 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것에 모두가 주목할 것이다. 이곳에 사람이 몰린다는 궁극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희소성이다.
다이아몬드, 순도 100% 금, 비트코인, 명품가방, 이 모든 게 왜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무나 가질 수 없고, 개수는 제한되어 있으니. 결국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주목하고, 또 이런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만 한다.
하지만 현대인은 빠른 결괏값을 얻는 데에만 혈안 되어있다. 투자를 하면 단기간에 수익이 나 매도해 차익실현을 해야 하고, 시험을 치면 결과가 빨리 나와야 하며, 웹툰하나를 봐도 1편이 나오면 2편이 빨리 나와야 한다. 아니면 현기증이 난다. 몇 년 전 친 영어 말하기 시험에서는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는데, 몇 년 만에 다시 쳐보니 이틀 만에 결과가 나왔다. 그렇게 시스템 자체도 변화하고 있다. 서론이 긴 걸 견디지 못해 하고 쇼츠로 대통령토론도 엑기스만 간추려본다.
자, 그럼 어떤 문제가 발생하냐. 오래 생각하고 천천히 습득하는 것에 자연스레 반발을 일으키며 극도로 꺼리게 된다.
'남는 것'의 핵심에서 결국 서서히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내 자산, 내 지식, 내 인간관계, 나를 둘러싼모든 쉬운 것들은 그렇게 다 떠나가버린다.
먼저 지식을 보자. 읽고 쓰는 것. 읽는 것 자체가 오래 걸려서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그냥 책 읽는 사람 자체가 사라졌다 보면 된다. 오디오북 같은 동영상으로 쉽게 넘겨버린다. 읽는 것 자체가 능동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매우 귀찮은 영역이거든. 만약 첫 번째 관문부터 이겨내고 무언가를 읽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책을 읽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내 경험이 되는 게 아니다.책은 타인의 경험과 지식을 엮은 것. 그게 바로 내 경험으로 100% 체화되기 위해서는 한번 읽는다고 바로 실천가능한 게 아니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거든.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 여기에 대해 써야 한다. 어떤 느낀 점이 있었고, 어떻게 내 삶에 적용해야 하는지 기록해야만 그게 내 삶에 남는다. 근데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각자의 방식대로 계속 뇌를 피곤하게 하는 이런 작업이 선행되어야만이 시간이 지나 내 재산으로 남는데 아무도 이를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겠다. 2년 반 전에 이 브런치스토리라는 앱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2년 반이 지난 지금, 그때 남아있는 사람들은 온데간데없다. 내가 생각나는 사람 중 현재에도 꾸준히 글을 발행하고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그 외에는 전부 다 새로 유입된 사람들.
모두가 관심 갖는 재테크라고 다를까. 오랜 시간 노력해서 좋은 회사에, 아니면 전문직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에 목표 세우지 않고, 그냥 돈이 많길 바란다.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많이 소유하고 있길 바란다. 이게 아니라 할지라도 모두 단기간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영역에만 현대인은 몰두한다. 자고 일어났는데 주식이 올라있으면 좋아하고 바로 매도할 수 있는 그런 종목들. 예적금을 하는 사람들을 비아냥대고 얼른 오르는 버스에 타라며 너도나도 손짓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그러다 적당한 선에서 수익실현을 하지 못하고 물려서 결국 마이너스로 전환해 몇 년을 그렇게 물린다. 원금을 회복하면 오히려 더 미래는 어둡다. 왜? 그 원금으로 또 이 상황을 반복하거든. 시간이 지나 몇 배, 몇십 배 이상의 자산을 축적해 내는 복리의 마법을 시도할 엄두도 못 낸다. 왜냐면 급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혹은 아주 빠른 시일 내 본인은 자산증식을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국장이든 미장이든 주식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사람자체도 결국은 그 종목을 오랫동안 보유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간과한다. 1억 모으는 게 월 300만 원을 버는 사람이 최소 5년 이상은 돈을 아끼고 모아야만 가질 수 있는 금액인데, 강남 아파트가 30억, 70억 하니 그 1억이라는 숫자가 우습게 보이는가 보다.
전문가들은 부동산이 주식보다 대체적으로 안전하다 말한다. 부동산이 왜 주식보다 안정적일까? 특히 서울부동산은 왜 주식보다 안정성 측면에서 훨씬 우위에 있다고 생각할까? 하방경직성이다. 실거주를 하는 집주인은 부동산이 하락해도 당장 내가 살아야 하기 때문에 팔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계속 가지고 있어야만한다. 불경기에도 탄탄히 받치는 이 하방경직성은 결국은 시간이 지나 전고점을 회복한다. 결국 이 하방경직성도 하락장에서 실거주를 하면서 버텨낸 시간에서 나온 것인데 이를 아무도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 임장을 하면서 돌아다니면, 그 아파트에 살고 있는 부부들이 아이들과 운동을 놀이터에서 놀아주는 모습을 종종보는데 보통은 그냥 지나치더라도 사실 그 모습 자체도 그냥 이뤄낸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한 번씩 발길이 멈추곤 한다.
최근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고 있다. 3, 4일 식단 조절하고 운동한다 해서 몸무게는 달라지지 않는다. 2주, 3주 해도 똑같다. 일주일에 하루 치팅데이를 하면서 오랜 시간을 버텨내야만, 적은 칼로리와 건강한 식단이 몸에 적응될 때가 되야만이 그때 결국 몸무게가 바뀐다.
매사가 이렇다. 오랜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데에는 물론 나 혼자만의 다짐보다 많은 이들의 위로와,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당근이 될 수 있는 달콤한 보상도 미리 알아야 하며 또 끝내 주어져야겠지. 그래야 그 목표를 보면서, 내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든 이뤄내고 말겠다는 신념이 자리할 수 있다. 근데 그런 감성적인 말과 글은 결국 그 한순간의 위로뿐이다. 결국 선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건 이성이다. 좀 더 가치중립적인 태도로 내가 생각하는 주관적인 영역을 배제하고 지속가능성에 대해 우린 심사숙고해야 한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전제에서 어떻게든 나는 해당사항이 없어야 한다.
<죄와 벌>을 읽은 사람은 알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바꿀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그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결연한 의지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걸. 그러려면 뭔가 가치 있는 걸 계속해야만 한다.
나는 뭘 계속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