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공식
대치동의 구석진 빌라에서 산 적이 있다. 이곳은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처럼, 마치 남한과 북한처럼, 하나의 횡단보도를 두고 명백히 구분되어 있다. 한 곳에는 수많은 외제차가 학원과 네온사인을 배경으로 길게 줄을 늘어서있고 고급 아파트빌딩이 줄지어있다. 학원가의 네온사인은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외제차의 후광을 더 빛나게 한다. 그리고 빌딩에서 학생들이 밤 10시, 11시에 나오면 차에 타고 집으로 휭- 가버린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빌라촌이 가득하다. 대개 원룸이다. 이곳에는 다양한 직업군이 거주한다. 근데 꽤나 놀라운 건, 이 허름한 빌라의 주차장엔 아까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봤던 외제차가 가득하다는 것. 심지어 더 좋은 차도 있다. 이들은 이 애물단지를 내버려 두고 주차싸움을 벌인다. 빌라는 주차할 공간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입주할 때 차가 있는지, 혹시나 차가 있다면 월세를 더 받는 식으로 한다. 진정으로 돈이 많아서, 경제적으로 풍족해서 외제차를 끌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현저히 낮은 것이, 그렇게 경제적으로 여유롭다면 좋은 '집'에 살지, 차를 사진 않는다. 사람은 집 안에서 먹고, 자고, 기본적인 의식주생활을 영위하는데 차를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한들, 차는 이동수단 그 이상 거주의 공간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풍족한 이는 이곳에 드물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측을 한다. 아니 실제로 그렇다. 정말 그랬다면 횡단보도 건너편 '진짜' 대치동에서 살았을 것이다. 이들은 고급진 외제차를 몰다가 혹여나 스크레치라도 날까 봐 골목길로 조심스럽게 들어가 힘겨운 주차를 하고 빌라로 들어간다. 자기 합리화의 벽돌로 지어진 본인의 원룸 비밀번호를 누른다. 이들의 미래는 어떨까. 본인의 삶을 어떻게든 살 지언정, 누군가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다행이다.
돈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벌게 되면 될수록 돈을 필요한 곳에서만 쓴다. 앞서 예시를 든 차만 봐도, 내가 차를 단지 이동수단으로만 생각했다면 대기업을 다니고, 전문직이고, 맞벌이로 몇억을 벌든 천만 원, 이천만원짜리 중고차를 사서 타면 그만이다. 차고 있는 시계도 기추(기계추가의 줄임말) 같은 건 있을 수가 없다. 그냥 한번 산 시계는 뽕뽑을 때까지, 고장 날 때까지 차고 다니는 거다. 아니, 고장도 잘 안 난다.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영역은 오로지 미래에 가치가 높아질 수 있는 것만 재산이라 여긴다. 그래서 그 재산을 소유하는 것에 대한 대가를 취득세나, 부가가치세나, 양도소득세처럼 세금의 형태로 지불하는 것이다. 그게 부동산이라던가, 해외주식이라던가, 금이라던가 이런 것들. 자동차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는 지인은 직원할인이라는 유혹을 뿌리치고 6천만 원이 넘는 돈을 차값으로 썼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회사를 다닌 지 4-5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이자에 허덕이며 돈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차는 그냥 사자마자 시동을 켜는 순간부터 감가가 시작되는 거다.
과거에 유행했던 마시멜로우 이야기를 생각하면 편하다. 두 명에게 마시멜로우를 준다. 오늘 주고 오늘 먹는걸 참으면 내일 두 개 준다. A는 내일 2개 준다는 말에 오늘을 아껴 내일을 기다리며 들떠 있다. B는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내일 두 개 안 먹어도 되니 먹어버린다.만족을 지연시키는데 능숙한 A와 같은 표본집단은 실제로 연구에서 더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산다. 이 삶 자체가 복리의 줄인 말이다.
내가 지금 사고 싶은 신발, 내가 사고 싶은 옷, 내가 먹고 싶은 오마카세, 내가 가고 싶은 호텔. 젊음은 지금만누릴 수 있으니, 시간을 빼앗기면 안 되니 지금 즐겨야 한다는 허언에 녹아들면 이 복리는 금세 무너진다. 여름에 겨울옷을 싸게 샀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올해 ‘그냥 입다가 내년에 사지 뭐, 나중에 여자친구 생기면 맛있는 거 먹고 호텔 놀러 가지 뭐’라는 아주 당연하고 일상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에 배어있어야 미래에 안정된 삶을 보장받는다고 본다. 어차피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옷, 새로운 브랜드, 새로운 차, 시계, 지갑, 온갖나를 치장할 수 있는 것은 만들어지고 있고 나중에 새로운 게 또 나오면 사지라고 지연시키면 지금 당장 돈이 안 들어서 좋고, 새로운 걸 살 수 있어 좋고, 일석이조다.
어차피 소비로 느끼는 행복은 가짜행복이다. 쉽게 사라지는 휘발성 강한 도파민일 뿐. 그 잠깐의 5초의 판단시간 동안 내가 소비를 선택하냐, 참느냐의 문젠데 딱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3일만 참아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이 물건이 진짜 실제로 필요한 물건이었는지 아닌지. 그리고 우리는 신기하게도 그 소비를 지연시키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돈이 들지 않는 행복이라고 하면 가볍게 산책하면서 느끼는 생각, 집에서 소소하게 퇴근 후 차려먹는 저녁, 마음 편하게 어떤 지식을 뽑아올지 고민하는 기대 속도서관을 가는 발걸음일 수도 있다. 얼마나 큰 행복인가. 이 절제된 삶 후에 내가 여유가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지인들을 만나 밥을 사주면 그 베푸는 행복이 더 크지 않을까.
자, 그렇다고 돈을 아예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현재를 희생하면서 오로지 내 보장된 미래만 바라보면서 거기에 집중하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에는 써야 한다. 워런버핏이 왜 아침마다 맥도널드에 가서 맥모닝을 먹고 출근하겠나. 전 세계 최고부자를 다투는 그가 그 푼돈 아끼려고? 아니다. 진짜 본인이 햄버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소고기를 좋아한다고 하면 돼지고기 먹을 돈을 아껴 가끔씩 소고기도 사 먹으면서 매일의 행복을 꾸준히 가져가야 한다. 내가 마음에 맞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쓸데없는 모임을 지양하고 어떻게든 피해 다니면서 그 돈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가끔 만나 그 시간에 집중하는 거다. 그래야 그 절제가 오래간다. 절제란 건, 단순히 아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로 하는 곳에 그 재화를 몰빵 할 수 있는지의 능력을 말한다. 그래서 절제가 지속기간이 짧으며, 어렵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가장 첫 번째 길은 주식도 아니고, 부동산도 아니고, 어떤 비범함도 아니고, 어떻게든 절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