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돈씨에 대하여
현대판 '그돈씨'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돈씨는 '그 돈으로 씨X' 이라는 말로, 누군가 무언가를 소비했을 때 상대를 비아냥대고 조롱하는 말이다. 주로 타인이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했을 때 철저히 본인의 입장에서 그것이 불만족스럽거나, 본인 가치관과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사용된다. 특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강할 때. 주로 대면상보다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익명성에 기대는 온라인에서 더 흔하다. 아무래도 욕도 들어가 있고 상대가 듣기에 좋아할 말은 아닐 테니.
이 단어의 의미엔 본인의 가치관을 상대에게 관철시키려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본인이 그 선택을 하지 않았으니 현재의 더 상황이 나아졌다 생각하고, 실제로 그게 정답인 양 철저하게 믿으며 인생을 살아간다. 이 뜻은 뭐냐. 그돈씨는 말 그대로 본인 인생의 서사를 풍부하게 만드는 데 매우 적합한 단어다. 단순히 남에게 '조언'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포장하기엔 본인의 결정과 삶 전체를 정당화시켜 버린다. 다 너를 생각하는 조언이라고? 겉으로 왠지 의뭉스럽고 속으로는 음침한 우월감이 자리한다.
가장 안타까운 건 그 말을 함으로써 그 상대가 기분이 언짢아지는 건 둘째 치고, 그 결과마저 바꿀 수 없다는 거다. 믿기지 않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헤어진 연인을 붙잡는 사람처럼 움켜쥐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만 한다. 왜냐. 이미 샀거든. 이미 돈을 썼거든. 응 환불 안돼.
그리고 시간이 지나, 기분이 언짢아진 그 빈자리엔 찜찜한 후회가 자리한다. 그렇게 그 상대(피해자)가
'아, 이번에도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구나'라는 후회를 자리하게 만든다는 게 미치도록 슬프다. 이는 현실에서 매우 흔하게 일어나는 일로, 사실 둘 혹은 셋이 모이면 한 번쯤은 듣게 되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A가 서울 외곽에 신축아파트를 샀다고 치자. 그럼 B는 말한다.
"야, 그 돈이면, 마포에 아파트를 살 수 있는데, 왜 거기를 사"
다음날, B가 뚜벅이 생활을 벗어나, 중고차를 사려고 알아보는 도중 어느 정도 예산에 맞는 SUV차량을 골랐다 치자. C가 말한다.
"야, 그 돈이면 BMW를 중고로 살 수 있는데, 왜 그걸 사냐? 돈 날렸네"
또 다음날, C가 결혼을 앞두고 결혼 예물을 보러 다닌다. 1,000만 원의 예산이 있는데, 오메가 시계를 고려하고 있다. 참고로 본인은 오메가마니아에 오메가를 좋아하는 시계광이다.
"야, 그 돈이면~ 롤렉스 마이너 모델을 살 수 있는데, 왜 그걸 사?"
전문가한테도, 마니아한테도 본인의 지식이 전부인 양이렇게 비아냥댄다. 그래야 본인이 더 아는 것 많아 보이고 위에 있어 보이거든. 다 이렇게 서로 주고받는 식이다.
이 모두의 의견을 반영해 A처럼 서울 외곽에 아파트를사지 않고 서울 중심부에 아파트를 사고, B처럼 정해진 예산에 맞는 BMW를 사고, 1000만 원으로 롤렉스예물을 산 누군가 있다고 치자. 그 어떤 누구에게도 불평불만 없이 최고의 구매를 했다고 칭찬받을까? 정작 그렇게 산 본인은 삶에 100% 만족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분명 이 들중에서도 누구는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조롱하고 비웃는다. 그리고 심지어 그 선택을 한 본인도 나중에 후회할지 모른다. 더 나은 선택지가 나중에 생각난다면. 그 어떤 무엇을 선택하든 누군가에겐 어차피 욕먹는다.
그 이유는 뭘까. 다 사람마다 각자 생각하는 가치관이 다르고, 소비습관이 다르고, 인생의 가치를 두는 비중이 다르기에 그렇겠지. 그래서 뭘 사든, 뭘 하든, 뭘입든간에 누구에게 훈수 두는 건 본인에게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다. 그 말을 다 수긍하고 받아들인다면, 모닝을 살 계획이었는데 그랜저풀옵을 보고 있는 과정, 카시오 시계를 살려했는데 오메가 롤렉스를 보는 과정, 셀린느가방을 사려했는데 샤넬백을 사는 과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래 사진이 이해를 돕는다.
이는 과거에 설명했던,
"나는 괜찮은데, 혹시~"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와 흡사하다. 그럼 이렇게 답하면 된다. 네가 괜찮으면됐으니 말을 하지 말고, 날 생각 안 해줘도 되니 말을 하지 마라. 듣기 싫으니까.
이게 현대인의 대부분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입 밖에 내지 못하는 한 문장일 테다. 본인은 호의랍시고 말을 얹고, 한마디라도 더 해주려 하지만 그것이 상대가 받아들이기에는 꽤나 불편한 상황일 수 있다.
20대 때 돈을 많이 쓰면서 여행을 많이 다녀본 누군가에게는 20대 한 푼이라도 악착같이 모아서 백원, 천원이라도 아껴 모으려는 궁상맞은 삶이 아니꼽게 보일 것이고, 반대로 그 짠돌이는 젊어서 돈을 모으지 않고 여행 다니며 펑펑 써대는 상대가 못마땅할 것이다.
빠르게 바뀌는 현대사회 속 재화, 돈, 일자리, 연애, 결혼 등 삶의 퀘스트 중에서 무엇이 마치 진리이고 정답인 양 말하는 콘텐츠를 최근에 많이 접하는데 가끔은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피곤이 쌓인다.
그돈씨처럼 단순히 재화의 구매로 이어지는 상황이 아니고서도 이런 모든 삶의 중요한 선택지 앞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며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본인보다 나이가많을 확률이 높고 그가 그게 꼰대다. 중요한 건 본인만 꼰대인지 모르고, 최소한 꼰대로 변해가고 있는지도 눈치채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은 본인을 조금씩 피한다는 것. 그러다 본인과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누군가가 돈을 많이 벌었다거나, 누가 봐도 본인보다 성공했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했을 때 현타가 오면서 현실을 부정한다. 급기야 이마저도 부족하니 어떻게든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 뒷담화를 한다. 얼마나 불쌍한 삶이냐.
그냥 우리 다 각자 생긴 대로 살고, 원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각자의 기준을 세워 그 기준에 살아갈 뿐이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 선에서.
누군가 "야, 그 돈이면 씨X" 라고 그돈씨를 오늘 외쳐대면 이렇게 답하라.
응 그거 할 테니까 돈 좀 보태줘. 그럼 살게^^
아마 아무 말도 않고 자리를 떠날 것이다. 인생을 잘 살고, 남들보다 좀 더 빠르게 자산을 형성해서 짧지 않은 내 미래가 펼쳐지길 기대한다면 나 자체가 멋있으면 된다. 뽐내지 않아도 그 사람 자체가 빛나는 것. 그 시작이 내 지금 수준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