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해서 행복하기
1. 찬바람이 부는 새벽 무심코 길을 가다 만원을 주웠다.
2.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저녁으로 초밥을 먹으러 갔는데 이벤트 1등에 당첨됐다.친구는 2등이다. 100개 중 1등은 딱 하나, 2등은 다섯개란다. 스페셜세트랑 일반세트 공짜로 또 먹으러 오란다.
3. 멕시코에 있을 때 가장 친했던 현지 친구가 함께 한 옛 사진을 보내며 연락이 왔다. 보고 싶다고. 아무런 목적 없이 진정으로 보고 싶은 거다. 기분 좋게 답장을 한다.
4. 그 넓디넓은 다이소에 내가 찾는 물건이 1초 만에 바로 보인다. 점원에게 또 어디 있냐고 안 물어봐도 된다.
5. 따듯하고 기분 좋게 숙면을 한다.
모두 오늘 하루 24시간 내에 벌어진 일이다. 그래, 별거 없다. SNS만 켜면 누구는 주식으로 하루에 몇천만 원을 벌고, 월급이 얼마고,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을 다사는 것 같은데, 난 하루에 저런 소소한 일들이 더 행복하다. 그렇게 많이 투자하지도 않을 거니와, 설령 하루에 몇천만 원을 벌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경제적 부나 자유를 일궜다 할지라도 크게 부럽지 않다.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운이나 능력을 원래 타고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뿐이다.
학교를 다니다 보면 언젠가 졸업을 하고, 회사를 다니다 보면 임원이든 부장이든, 팀장이든 언젠가 정년퇴직이라는 벽 앞에서 나오게 된다. 돈을 많이 벌 때도 있을 것이고, 많이 잃을 때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도 그와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평생 백년해로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내가 영끌을 해서 산 지금 이 집이 평생 내 집일 수도 없다. 내가 가진 건강은 40대, 50대가 되면 반절로 떨어질 것이고, 유한한 젊음도 내가 애초에 알고 있는 그 유한함보다 훨씬 더 잔인하게 짧을 것이다. 다만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언젠가 끝날 그 운명을 10년, 20년 늦춘 것뿐. 어쨌거나 정해진 그 운명에서,
아, 나는 진짜 행복하게 잘 살았어
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와 그 가치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내 배우자? 내 가족? 내 자녀? 가장 마음이 잘 맞는 친구? 그들도 사전상 ‘타인’이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웹툰도 있지 않나. 타인으로부터 얻는 행복은 그 존재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관계가 소원해지면 같이 힘을 잃는다. 타인으로부터 얻은 행복이 아닌, 오로지 삶에서 나 혼자밖에 없을 때 나 혼자 행복하게 삶을 대할 수 있는 방법 말이다. ‘무한긍정 바이브’를 가지는 것뿐이다. 그저 행복하게. 행복하지 않더라도, 현실에서 스트레스받는 상황에 봉착했더라도, 행복하려고 내가 억지로 ‘노력하는’ 그런 삶. 그게 내가 진짜 죽기 전에, 아니 근사하게 인생을 논하기보다 가깝게는 올 연말에 ‘내가 올 한 해는 진짜 행복하게 잘 살았다’라는 마인드가 조금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그럼 내가 또 만족으로 행복한거고.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직역해 보면 결국 남는 건 추억뿐이라는 것. 지금 각자 본인 나이만큼 지난 몇십 년간 살아온 궤적을 한번 그려보자. 그 궤적은 미화돼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좋았던 기억이 대다수를 차지할지 모른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본인에게 피해 보는 게 아닌 좀 더 좋은 쪽으로 생각하도록 뇌가 굴러가니까. 그게 뇌의 순기능이다.
얼마 전, 설악산을 오르는데 힘들었던 네 시간, 다섯 시간의 더 오래 지속된 힘듦보다 정상에서의 잠깐의 희열, 그리고 내려와서 사우나를 할 때 쾌감만 더 크게 다가온다. 결국 그것만 지금 남았다. 현대사회는 누가 봐도 무한경쟁사회다. 근데 그 경쟁이라는 것에 타인이 만약 기준이 되지 않는다면, 타인이 없다면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애초에 가늠조차 하지 않겠지. 왜? 비교대상이 없으니까 굳이? 목표에 따른 성취감이 큰 누군가에게도 인생에 큰 그림을 그려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더라도 너무 힘들지라도 오늘은 침대에서 쉬고 싶으면 그냥 쉬면서 행복을 느끼란 거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내. 그럼 잘 될 거야
목표를 코앞에 둔 누군가에게, 안 좋은 결과를 맞이한 상황에서 다시한번 도전해보자고 독려할 때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힘이 나지 않는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은 욕일 뿐. 퇴근 후 좀 누워있어도 아무 상관없다고. 아무노력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 환경 어차피 다 내가 여태껏 힘들게 만들어온 거다.그 상황이 좋든 안 좋든. 지금 있는 그 환경에서 서핑을탄다는 개념으로 삶의 파고를 즐겨보자.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그저 잘 풀릴 거라고 믿으면서. 뭔가 대단하고 거창한 걸 이루지 않아도 행복은 꽤나 가까이에 있거든. 이런 사람들이 결국 하는 일마다 실제로 더 잘 된다.
2026년 다이어리가 여기저기 벌써 찾아보니 품절이 많다. 그만큼 누군가는 벌써 내년 달력에 무수한 목표와 계획들을 벌써 그려가겠지. 미래를 염두하고 사는 건 꽤나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일이나, 그 미래는 아무리 준비한들 어차피 그렇게 똑같이 안 흘러간다. 매몰될 필요가 없다.
주식에 마이너스 몇천만 원이면서 만원 주웠다고 행복해하고, 불편한 직장상사와 몇십만 원짜리 한우 먹으며 회식해도 맛을 못 느끼고 친구와 편하게 먹는 2만 원 공짜 스페셜초밥에 행복해한다. 무엇이 중요한가 도대체 무엇이. 불행한 상태서 뭘 더 얼마나 가질래.
작게나마 내 삶에 스쳐가는 행복을 무시하지 말고, 이젠 좀 알아차리자. 그 행복한 마인드셋이 진짜 일을 더 잘 풀리게 한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근심보다 지금 행복하기.
결국 모든 사람들의 목표는 ‘아! 행복하게 잘 살았다!’ 단 하나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