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회사 안 가도 인생 안 망하네?

11화: 전환

by 홍그리

"형규야, 일어나야지, 밥 먹어라"


역시 나를 챙겨주는 건 엄마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제 노가다판에 가서 하루 일하고 돌아오니, 뭔가 그래도 의욕이 샘솟는다. 일당으로 14만 원을 받았는데,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더라도 내 몸하나 건강하다는 이유로 이렇게 의미 있는 돈을 벌지 않았나. 이력서도 고쳐야 하고, 돈을 벌어먹고살려면 미래 설계를 해야 하니 매일같이 현장을 나가지는 못하겠지만 아직 '젊으니' 뭐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파도와 같다. 어느 날은 높이 오르기도 하고, 어떨 때에는 그 파고가 낮다. 누군가는 앞서 지나간 파도가 가장 마음에 들어할수도, 또 다른 누군가는 앞으로 다가 올 파도가 가장 멋있다 할 수도 있다.

높은 파고의 한가운데서 서핑을 즐기다가도 그 행복과쾌락은 잠깐이다. 타이밍 좋게 파도를 아주 잘 탄게 아니고서야. 또다시 내려와야 되고, 우리는 그 높은 파고를 찾는데에 결국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기꺼이 도전한다. 거기에 롱보드에서 내려와 손으로 물길을 가르며 찾고 또 찾아야 한다. 누구는 그 롱보드에 올라타기까지의 과정이 조금 길 수도, 누구는 운 좋게 바로 찾을 수도 있다. 심지어 롱보드에 올라가서도 수도 없이 넘어질지도 모른다. 두 발로 정상적으로 일어나 자세를 잡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는 그 오랜 시간 안에 지금 있는 거고. 아무렴 내가 이 바다에 온 거는 놀러 온 거니 그 찾는 순간마저 즐겨보도록 한다.

어쨌거나 나는 이 백 살까지 살 인생에 놀러온거다. 노가다판을 뛴 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방 안에만 박혀있지 않고 직접 나가서 내 힘으로 돈을 벌어왔으니 그 자체로 자랑스럽다.


그래, 온 김에 쉬어가자. 잠깐 이렇게 넘어진 김에 주변경치도 즐기고 육체건강, 정신건강도 챙기면서 그렇게지내보는 거야. 어떻게든 되겠지. 이력서는 꾸준히 넣되, 면접 불러주면 가고 나 스스로를 위한 시간도 이렇게 가져보는 거야.


30년 평생을 사회가 정한 의무와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려 살았다. 국가의 부름에 군대를 갔고,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배웠고, 논술에, 예체능에, 초중고는 어떻게든 모든 시험에 열정적으로 준비해야만 했다. 등수가 매겨지고 평가받고 그 평가에 자책하기도, 남들보다 높이 있으면 행복하기도 했다. 늘 무한반복이었다. 공부뿐 아니라 하다못해 스포츠나 입는 옷 브랜드나 태권도 승급심사나 내 삶을 둘러싼 모든 것에. 늘 무언가에 속해있고 뭘 해야만 했다. 그리고 매 순간 주어진 그것을 잘해야만 했다. 이렇게 퇴사를 하고, 재취업을 미치도록 집착하며 알아보는 이유도 어쩌면 내가 이젠 그 누구도 뭔가 시키지 않고 어디에 속해있지 않은 이 환경자체가 불안해서 그럴지 모른다. 나는 난데. 넘어진 김에 나한테 집중하는 시간을 좀 가져보려 한다.


이력서와, 알바, 그리고 운전연수. 한 곳에 매몰되지 않고 삶의 무게를 조금씩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거다.


나는 면허는 있지만 운전을 못한다. 나이를 30이나 먹고 운전도 못한다. 차도 없었거니와, 늘 시간에 쫓겨 연습할 시간도 없었다. 이참에 운전연수를 받아보려고 한다. 요즘은 운전연수를 당근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래도 학원에 등록하는 것이 좀 더 신뢰가 가서 10회 30만 원을 내고 운전연수를 받아보려 한다. 차가 없어도 운전은 어떤 환경에서도 쓰일 일이 많기 때문에 지금이 최적기라 본다. 아 맞다, 요즘은 30대에 차가 없거나 운전을 못하면 아예 연애도 못한다더라. 일은 어찌어찌 구하면 되는 거지만 평생 혼자 살다 죽을 수는 없기 때문에 운전은 필수다. 다방면에서 삶은 결국 '균형'을 이뤄야 하는 것이니라.


편의점 땜빵이라는 것이 있다. 대학생 때 편돌이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편의점 알바에는 도가 텄다. 근데 어찌 됐던 나는 또 30대 취준생이고 막연하게나마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이력서에 뜨는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가는 파트타임 말고, 노가다처럼 내가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도록 땜빵을 하는 거다. 효율이 이런 효율이 없다.


이력서는 강박을 지운다. 친구들 카톡이나 SNS에 대기업이다, 공기업이다 사원증 매고 사진 찍는 것도 한때다. 대감집 노예를 하느냐, 작은 데서 노예를 하느냐의 문젠데 결국 이 대감집 노예의 뽕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빠져버린다. 끝은 어떻게든 정해져 있고, 나는 내게 맞는 직장을 구해 그것이 작든 크든 조금씩 내 위치에서 노력하면 되는 것. '20대 취준생'과 '30대 취준생'의 결정적인 마인드셋의 차이랄까. 단순히 연봉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고, 내 성향에 맞는 곳에 배팅하는 거다. 어차피 60살까지 일해야 하는 거 아닌가? 목표치를 줄이자.


왜 목표치를 줄여야 하는가. 부동산을 예로 들어보자. 생각해 보면 누구나 서울 32평 자가에 살고 싶다. 오죽하면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 해서 '국민평수'라고 하겠나. 근데 삶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이 모두 그 아파트를 쫓을 순 없다. 쫓아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다. 32평이 문제가 아니라 서울자체에 집을 살 수 없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 <서울자가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이야기> 같은 드라마도 나오는 거다. 서울에 자가가 있다는 상징성. 하나의 고유명사. 집은 집으로서의 기능만 사실 충족하면 되는 게 답이다. 근데 서울에 자가를 비싸도 꼭 갖겠다는 건 그것 자체가 남의 시선과 남의 기준에 매몰된 목표인 거다. 내가 만약 5억 아니 3억만 있어도 삶이 만족스럽다면 그걸 목표로 하면 된다. 그리고 소소히 그 작은 목표치에 다가갈수록 행복해하고, 거기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면 그뿐.


나 스스로의 목표치를 낮추고 살아가는 데 하지만 중요한 것이 있다. 이 와중에서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내 인생에 집중하는 데 있어 술이나 여자, 도박 이 세 가지에 조금이라도 빠져 살게 되면 그 남들이 우러러보는 기준이 아닌 내 작은 목표치에 가는 것도 힘들어진다. 타인이 바라보는 행복이 아닌 내 스스로의 내면의 만족도 이룰 수 없는 거다. 어떻게든 흘러가는 게 인생. 내 꿈이 가난해지는 건 이 세 개뿐이다.


출근 안 해도 인생 안 망하네?

keyword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