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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노 Jan 02. 2022

전략 컨설턴트와 니체가 말하는 so what

신입 컨설턴트의 회고록 2편: the so what of 2022


방 정리를 하면서 컨설팅을 준비하던 흔적들을 발견했다. 책상 구석에 쌓아둔 지우개똥이나 그때 휘갈긴 노트들이나 이젠 별반 다를 게 없는 쓰레기인데 한참 동안 그 노트들을 두고 바라봤다. 지난 7주 동안 힘들다고 하소연하던 스스로와 7달 전만 해도 내가 뭐라도 될 수 있을까 걱정하던 때가 비교되더라.


그때 상황보다 지금이 나아졌다고 하긴 어렵다. 여전히 고민 더미에 묻혀있고, 똑같이 외롭다. 다만 한 가지, 결이 달라졌다. 취준에 대한 당장의 단편적 니즈가 해결되니 조금 더 근본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




오늘 점심엔 혼밥으로 카레와 우동세트를 먹으며 팟캐스트를 들었다.


Being and Becoming: 니체가 주장하는 존재와 본질, 유머에 관한 썰. 팟캐스트나 라디오를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나는 눈이 즐거워야 재밌다고 착각하는 그런 부류다), 이 편은 참 집중해서 들었다. 과장 좀 보태서 신의 가르침...처럼 들렸달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느라 열량 소모가 큰 나에게 신속한 해답을 찾아준 것 같다. 이래서 공부를 해야 하나보다. 니체... 나 나름 1/3 철학과인데 졸업을 하고 난 후에야 흥미가 생긴 건 무슨 아이러니일까.


어찌 됐든, Being and Becoming 의 쟁점은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인데 - 근본적으로는 시간을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에 기인하는 듯하다.


Being 을 주장하는 자들은 시간이 단편적이고 고유한 것이라고 전제한다. 예를 들어, 2021년 06월 08일 01:16:34에 존재하는 나와 01:16:35에 존재하는 나는 흘러가거나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의 성질을 갖춘 동일한 존재라고 말할 것이다. 늙어 주름살이 낀 나와 젊고 생생한 나는 외형적으로 다를 순 있어도 본질적으로 상이한 존재는 아니란 말이다.


반면 Becoming 은 시간을 연속적으로 보며, 지금의 나와 향후의 나는 절대 동일할 수 없다 주장한다. 얼핏 보면 Being 으로 보이는, 영원한 것만 같은 금괴도 결국엔 썩어 없어질 것이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와 함께 자전 또 공전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이니, 아무리 고유의 성질이 같다고 우겨도 적어도 1초 전 그 금괴의 우주 상 위치와 1초 후의 위치는 다르다는 얘기다. 즉 Being 이라고 불리는 개념, 카테고리, 정의, 그룹 등은 부재하다고 주장한다. (무의미한 것도 아닌 그냥 부재하다 - 즉, Being 이란 있을 수 없는 개념이다.).


Being 의 시각으로 판단하다 보면, 지금의 나와 내일의 내가 크게 달라질 수 없다. 혹은 완전히 다른, 고질적인 무언가가 되고자 해야 한다.


Becoming 은 지금의 나 자체에서도 약간의 다름과 새로움을 찾아갈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Becoming 은 무엇일까 정의하려들지 않는 것이다. 그거야 말로 모순이다. 대신 내가 겪는 일상을 나의 Becoming 으로 인지하고 오감을 살려 경험하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다..


아, 또 하나 중요한 것은 Becoming 에서 대단함을 찾지 않는 것이다. 결국 어떠한 존재이건 Becoming 의 끝이란 재가 되는 것이다. 사후세계... 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현대 지식이 닿는 곳에 한해서는 그렇다. 결국엔 다 재가 되기에, 나의 becoming 으로서 대단한 위인이 되어야지, 가 아니라 과정 자체를 End Goal 로 인지하는 방식이다. 재가 되겠지, 가 아니라 재가 되기 위해 되어가겠지.... 뭐 그런 말장난 같은 태도를 뜻한다.




나의 목표는 항상 episodic 했다. 내년에는 뭘 하고 내후년에는 뭘 하고 십 년 후에는 무엇을 할지 정해두는 걸 목표라고 생각했다. 물론 모든 목표는 실현 가능한 수준으로 구체화되어야 하는 게 맞다만, 내가 한 것은 단순 planning 이지 goal setting 이 아니었다.


2022년을 맞이하는 나의 목표는 행복해져 가는 것이다 (becoming happy)! (지금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눈덩이처럼 더 크게 굴려가겠다는 말이다.)


진부한 목표라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난 여태껏 행복이 목표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2020년 내 새해맞이 글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올해는 성장을 목표로 살자: 버티고 유지하는 것 말고, 자라나는 사람이 되자. 행복하진 않아도 되니까 더 이루고 더 사랑하는 그런 한 해를 보내자."


아마 취준생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약간의 여유를 갖고 조금만 고민해보면, 내가 과거 목표 삼았던 성장도 결국엔 행복하고자 하는 갈망으로 귀결된다. 성장해서 뭐하게, 라는 컨설팅에서 좋아하는 so what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 보다 보면 결국 답은, 행복하져가는 삶을 살고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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