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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고 닫힌 마음을 보듬는 시간

by 알레

벌써 한 달 가까지 된 것 같다. 교회로부터 마음이 다치고 닫혀버린 시간. 이전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마음의 고통이 처음 며칠간은 식욕조차 사라지게 만들었다. 아무 일 없는 듯 가만히 하루를 보내다가도 순간 울컥하며 마음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기분을 느꼈다. 오죽했으면 상담까지 받기 시작했을까. 그게 벌써 한 달 전의 일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시간은 참 빠르고 무심하게 흘러간다.


그래도 그 무심한 시간 덕분에 삶은 거의 제자리를 찾았다. 물론 교회에서 불거진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세 발짝거리를 두고 있는 덕분에 마음은 안정을 되찾았다.


지난 한 달은 올 한 해 중 가장 열심히 살지 않은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하루가 끝날 무렵 돌아보면 내가 한 것이라곤 글을 쓰는 것이 전부일 때도 많았다. 최근에야 유튜브 영상도 업로드하고 있고, 독서와 커피챗 등 이전과 같은 루틴을 살고 있지만 그마저도 일편 그 어느 때보다 느슨하게 하고 있다.


과거였다면 이렇게 살아가는 내 모습을 자책했겠지만 지금은 오직 마음을 돌보는 것에 집중을 하고 있는 중이다. 마치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듯,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나, 하염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마음을 비워내듯 마음에게도 그런 시간을 허용해 주었다.


상담 시간은 대나무숲이 되어주었고, 글을 쓰는 시간은 그럼에도 삶을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게 만드는 끈이 되어주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의 위로는 상처를 아물게 하는 연고가 되었고, 깊어져 가는 가을은 제 멋대로 널뛰는 마음에 위안이 되어줬다.


갈등은 불편하고 감당하기 버거우며 여전히 피하고 싶지만, 이번 일을 통해 나에 대해 좀 더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연약한 사람이었구나' 싶은 생각부터 '나는 갈등이 불거지기 전에 중재자의 역할을 더 선호하는 사람'이라는 것까지, 평온한 날들에선 만날 수 없는 나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오히려 행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상담을 받으면서 생각했다. 만약 지난 몇 달간 갈등으로 인한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 전에 중간에서 소통의 역할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후회되었다. 물론 다시 시간을 돌린다 해도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여전히 쉽지 않은 선택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갈등에 앞서 최소한의 역할을 하지 못한 나 자신이 스스로 가장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기에 어쩌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보기도 했다.


마음이 다치고 닫힌 이 시간에 가장 고마웠던 건 가까이에 있는 동료들이었다. 사안의 위중함을 알기에, 수많은 억측과 오해, 그리고 말장난 같은 언변으로 그들이 공동체로부터 감당해야만 하는 압박이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함께 하지 못하는 게 늘 마음 한 편 짐으로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괜찮다며 나의 회복에만 집중하라는 배려 덕분에 나는 홀로 차분히 가을이 주는 위안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늘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은 결국 사람에게서 위로를 얻게 된다. 모순 같은 삶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존재의 가치를 더 크게 깨닫는다. 더불어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시간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그 무게를 달리하는 것 같다. 그 사이 누군가는 마음의 문이 닫혀버릴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상처를 입기도 한다.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부디 그 마음을 외면하거나 애써 이겨내라고 말하기보단 괜찮다고, 한숨, 두 숨 걸러도 된다고 이야기해 주자.


마음은 커다란 바위같이 단단할 때도 있지만 투명한 와인잔처럼 금방 깨져버릴 듯할 때도 있다.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순간을 지나는 사람은 정말 힘겹게 버티는 중이라는 것을.


우리는 누구나 따뜻한 말 한마디로 사람을 살리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오늘 힘겨웠을 당신에게, 그리고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퍼져있고 싶은 마음에게 그래도 괜찮다는 말 한마디를 건네주자. 그 한 마디에 결국 다시 일어서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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