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욕구를 묻고 사는 직장인 분들에게.
"기분이 어때?"
"뭐, 특별한 것도 없어. 이미 몇 번 해봤잖아."
"그래도 축하해! 이제 정말 자유인이구나."
"그렇지. 진짜 자유인이지. 동시에 백수이기도 하고."
"그동안 고생했어. 일 하느라, 오랜 시간 출퇴근하느라, 맘고생하느라."
"홀가분하다! 막막한 앞날보다 오늘 하루에 더 충실해 볼게! 잘 될 거야. 잘할 거야!"
완전한 자유인이 되었다.
5년 하고 6일. 길게 느껴지기도 찰나의 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시간의 마침표를 찍었다.
'퇴사.' 직장생활의 시작부터 가슴에 품고 다녔던 그 한 단어. 그 한 단어가 행동이 되기까지 자그마치 5년의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견디고 버티며 살아온 인생의 시간이 쌓여갈 때 직장인으로서의 시간은 반대로 D-0이 되었다. 더 이상 새벽 5시부터 알람이 울릴 일도 없다. 분주하게 준비하던 아침도, 편도 1시간 이상 소요되는 출퇴근 길도 당분간 없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짜증과 분노마저 사라짐을 느낀다.
수없이 고민하고 번뇌하는 시간을 보내며 충동을 느끼고는 했지만 이내 눌러버렸다.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점점 지쳐갈 무렵 직장에서 마주하는 눈앞의 상황들에 대한 관심도 점점 사그라들어 가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나의 몸은 사무실에 있었지만 나의 마음은 그곳에 없었다.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답답한 생각들을 텍스트로 풀기 시작했다. 뒤엉킨 실타래 같던 내 마음의 실마리가 보였다. 엉켜있는 실을 한 올 한 올 풀어나가다 보니 숨어있던 나 자신이 점차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계속 기록하게 되었고 어느새 그 기록들은 지난 시간의 회고록처럼 남아 한 권의 이야기 묶음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악착같이 움켜쥐었던 자존심도, 손해 보지 않으려 이리저리 재빠르게 굴리던 눈치도 결국 나 자신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나 남들과 비교하려 하다 보니 비교우위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것을 꺼내 놓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음 내가 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지키려던 것은 온전한 나 자신이 아닌 외부 세계로부터 만들어진 나의 모습이었을 뿐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나는 마흔 살이 되어있었고 아빠가 되어 있었다. 턱 없이 부족한 나의 모습에 시간을 달려 자기 계발을 시작했다. 처음 얼마간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그러나 그 미로를 지나면서 조금씩 조각모음이 되는 듯 지난 삶의 빈틈이 매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난 내 안으로부터 차 오르는 내적 동기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껏 외부로부터 이유를 찾으려 했고 나아갈 방향을 찾으려 했었다. 그럴 때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여실히 느꼈고 애써 안 되는 이유를 찾아가며 나를 지켜내기 바빴다.
이제는 달라졌다. 모든 행동의 출발점은 바로 나 자신이 되었다. 왜 퇴사를 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싶은지 이 모든 이유는 내 안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확신을 갖게 되었을 때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이 글은 지난 시간들의 기록을 돌아보며 재 구성해본 자전적 이야기다.
퇴사란 결코 가볍게 선택할 것이 아님을 확실히 하고 싶다. 나 또한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퇴사라는 지점에 이르렀듯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역시 진중한 고민의 시간과 자기 발견의 과정을 우선 가져보길 권장하고 싶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회사가 나의 삶을 영원히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고 울타리 밖으로 내몰리는 날이 올 것이다. 나의 경험이 그날을 준비하는 독자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현실에는 언제나 즐거움과 버거움이 공존한다. 순간의 어려움으로 인해 감정적인 선택은 하지 않길 바란다. 퇴사를 고민하는 그 이유가 여전히 ~때문에로 나열되고 있다면 퇴사는 잠시 보류하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내 인생이고, 내 인생의 매우 중요한 선택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그리고 독자들도, 우리 가슴에는 퇴사라는 글자가 심장과 같이 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의 매서움 또한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망설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한 발 더 내딛기 전에 적어도 나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시간을 가져보길 꼭 권한다. 그러고 나서 용기를 내어도 우리의 남은 인생은 충분히 값진 인생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