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푸념이라고 치부했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기로 했다.
삑-
경비가 해제되었습니다.
삑-
출근이 완료되었습니다.
현관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면 언제나 지문 인식기로 출퇴근을 인증한다. 경비를 해제하고 출근을 찍으면 자동문이 열린다. 복도에 불을 켜고 계단을 올라와 2층 사무실로 향한다. 사무실 불을 켜고, 창문을 열어 잠시 환기를 시킨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가만히 생각을 한다.
하아, 오늘 하루 또 잘 보낼 수 있을까?
매일 반복되는 하루의 단상이다.
숨이 턱 막힌다. 아침부터 소란이다. 한때는 나도 열심히 대화에 참여했던 사람이라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이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회사에 대한 불만은 늘어놓으라고 하면 천일야화도 모자랄 것이다. 험담은 언제나 즐겁다. 아니 즐거웠다. 근데 이제 그것 마저도 질려버렸다.
생각해보면 뒷말을 한다는 것도 결국 아직 관심이 남아있을 때나 가능하다. 이젠 무관심의 상태로 접어들었나 보다. 더 이상 뒷말도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냥 동굴 속에서 울리는 메아리 같은 느낌이다.
날씨가 참 맑다. 오랜만에 맑은 하늘을 보니 그나마 기분이 한결 좋다. 맑은 날을 좋아하는 건 답답함이 절로 가시는 파란 하늘 때문이다.
소싯적에는 가만히 누워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어딘가 포근함이 있었고 확 끌어당겨 안아주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마음이 바닥을 칠 때마다 하늘을 보고 종종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특별한 일도 없이 지냈던 시절인데 마음만은 가끔 그렇게 요동치곤 했다.
다시 하늘을 보고 눕고 싶어 진다. 조용히 혼자.
아직도 눈물이 날까? 그건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남편이고, 한 집안의 가장이자 아빠가 되니 감사하고 기쁜 일이 넘쳐나는 건 사실이다. 매일이 분주하지만 동시에 행복한 마음으로 채워짐을 느낀다. 그렇지만 여전히 안고 살아가는 해결되지 못한 '나 만의 문제'는 가족이 아니라 내가 풀어야 할 나의 몫이다.
때로는 분주한 나날이 오히려 배출시키지 못한 독소가 되어 조금씩 내 안에 쌓여가는 것을 느낀다.
나보다 하루를 더 고되게 보낼 아내를 생각하면, 나의 답답함은 그냥 푸념 같아 보인다. 또 누군가에게 속 시원히 털어놓아보자니 결국 내 문제 가지고 남을 괴롭히는 것 같아 이내 멈춘다. 말을 꺼내봐야 누구도 답을 주지 못함을 잘 알기에 그냥 꺼내려다 다시 넣어둔다.
그래서 연일 흐린 날만 계속되었던 지난 며칠간은 정말 매일이 힘들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있고 견뎌야 할 삶이 있어서 그냥 살아냈다.
때로는 나조차 이런 내가 어색하다. 그냥 대체로 긍정적이고 밝은 면모를 가지고 살아온 나 이기에 내 안에 깊은 탄식이 올라올 때면 당황스럽기만 하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 그저 멍하게 손을 놓는다. 이럴 때면 친구들이 그립다. 욕지거리 시원하게 섞어가며 이야기해도 기분 나쁘지 않은 그런 친구 말이다.
그래서 다시 쓰기로 했다. 멈추기로 했던 퇴사 이야기. 직장생활 이야기. 그저 푸념들이라고 치부해버렸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말이다. 계속 담아두기만 하기엔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답답함이 올라올 때마다 각색 없는 드라마처럼 가슴속을 콕콕 찔러대는 그런 단어들을 풀어 던져버리려고 한다.
혹시 누가 봐주려나 하는 솔직한 마음도 있지만 그보다 나의 글이 그냥 꾹 누르고 견딜 줄만 알았던 나를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쓰는 처방전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살짝 담아본다. 그저 약효가 좋기만을 바랄 뿐이다.
퇴사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순간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침을 느낀다. 정신없이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나면 우울감과 바닥까지 떨어져 버린 자존감에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감정적으로 퇴사를 단행하기엔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 역시 긴 시간을 고민했다. 문제의 본질이 나의 문제인지 아니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중력의 문제인지를 깨닫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한숨 푹 내쉬며 하루를 한탄하는 시간 속에 나를 남겨놓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나의 모든 에너지를 다음을 준비하는데 쏟아버릴 계획이다. 그리고 나의 고민의 시간들을 다시 기록하며 30대 중반을 넘어 이미 마흔 줄에 접어든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아직 우리에게도 다음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부디 용기 낼 수 있길 바란다.
부디 당신의 목소리를 내뱉을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