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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Apr 04. 2024

벚꽃을 보며 기껏 떠올린 생각

'좋은데 마냥 좋지만은 않아. 아니, 좋아해 줄 만한 여유가 없어.' 


회사를 나와 혼자가 된 시간이 길어지니 한동안 깊은 고립감에 빠졌다. 내가 바라던 것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만 이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의 고립감은 나를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렇다고 또 맘껏 뒤돌아 보지도 못하게 했다. 나아가려면 지나친 순간들을 떠올리고, 곱씹어 보려 하면 달려 나가는 사람들을 비추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었던 마음의 장난질. 홀로서기의 가장 어려운 순간이지 않았을까 싶다.


잘 지나왔고 덕분에 마음이 단단해진 것도 맞지만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순간 튀어나오는 건 여전하다. 단지 이전처럼 진흙탕에 빠지지 않고 건너가는 방법을 터득했을 뿐. 그중의 하나가 집이 아닌 공간으로 가는 것이다. 조금은 번잡스럽고 북적대지만 그 자체로 생기가 느껴지는 곳. 나는 오늘도 카페로 출근했다.


봄이 벌써 무르익어 간다. 집 앞의 벚꽃 잎이 바닥에 흩뿌려져 있다. 아직 제대로 눈에 담지도 못한 것 같은데 벌써 지는 게 마치 봄을 잃어버린 기분마저 든다. 다행히 카페에 좋아하는 자리에서는 창너머 벚꽃을 바라볼 수 있다. 오늘은 글을 쓰며, 책을 읽으며, 자주 고개를 들어야겠다.


꽃이 피는 건 지극히 당연한 계절의 순환일 뿐인데 그것만으로 삭막했던 버스 정류장이, 그리고 그 옆을 스쳐 지나가는 자전거가 한 폭의 풍경이 되는 게 신기하다. 그러고 보니 거리의 꽃을 사진에 담는 부류가 꼭 아이 또는 어르신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몽글몽글 피어난 벚꽃만은 모두가 한 번은 사진에 담아 간다. 


한 계절을 지속하지도 못하는, 고작 길어야 2주에서 한 달 만에 모습을 감추는 벚꽃인데, 그 시간을 이렇게 풍미하고 가는 모습에서 새삼 자기다움이 느껴진다. 피어날 때를 알고 가장 화려하게 만개한 뒤 지는 모습마저 정취를 만들고 내년을 기약할 줄 아는 삶.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뚝심 있는 창작자로 살아가려면 자기다움을 아는 게 필연적이다. '멈춘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시간이 맞는다'는 말처럼, 트렌드의 사이클에서 어느 순간 맞아떨어질 날이 오지 않을까. 벚꽃처럼 삶의 한 절을 수놓을 수 있는 그런 날이.


창너머 벚꽃을 바라보며 자기다움, 창작자의 삶을 운운하는 나도 참 어지간한 의미충인가 싶다. 아무래도 근래에 자주 맞닥뜨리는 고민이 '나답게 깊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라 나도 모르게 생각이 그리로 기운 듯하다. 변화를 거듭하는 시대를 타지도 못하고 깊이에 타당성을 더해주는 번듯한 성과 없는 나로 여겨질 때가 많지만 이 시간이 쌓여 결국 나답게 깊어지지 않을까. 위안 삼아 본다.  


그나저나 오늘 스벅에서 선택한 아이스 피스타치오 크림 콜드 브루는 딱히 내 취향은 아닌 듯. 입안에 텁텁함이 남는 게 아메리카노 한 잔 더 마시며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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