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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이 Dec 09. 2022

독일 유학생의 손목 결절종 수술, 1부

독일에서 나 홀로 정형외과 방문하기

고백하자면, 나는 겁쟁이라서 병원 가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게다가 말도 잘 안 통하는 타국에서, 겨우 유학생용 사보험을 가지고 있다 보니 무서워서 더욱 가고 싶지 않았다. 진료비 폭탄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손목에 뭔가-... 혹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뭐가 있네? 싶었던 물혹은 약 한달 만에 눈에 띄기 시작했고, 2주일 만에 크기가 두 배가 되었다.



말랑말랑하긴 했지만 슬슬 거슬리기 시작했고 좀 저린 느낌이 들기 시작했을 때엔 이미 팔과 손목을 일자로 만들어도 눈에 보일 정도였다. 독일의 병원은 그냥 가서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행히 정말로 집 바로 앞 건물에 정형외과 Orthopädie가 있었고,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그 병원에 예약을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병원을 예약하고 기다리는 2주 동안 물혹의 크기는 두 배가 되었고, 이제 나는 이 손목의 문제가 손목 결절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사와 대화를 나눠야 하기 때문에 관련된 단어를 미친 듯이 찾아봤다.*) 그리고 크기가 저 정도로 커지자 가만히 있어도 약간 징-하고 울렸다. 또 손목을 꺾으면 찡! 하고 아플 때가 있었다. 덕분에 활동을 할 때에 매우 거슬리기 시작했고, 왼손 넷째와 새끼손가락에는 힘이 잘 안 들어가기도 했다.




진료실(?) 안에는 배드도 있고 싱크도 있다. 이런 방이 여러 개이고 환자들이 대기실에서 차례로 불려나가 배정받은 방에서 기다리면 된다.



여하튼 예약 당일 아침 8시 40분이 예약시간이라 약 5분 정도 이르게 병원에 가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내가 대기실에서 진료실에 들어간 시간은 (모든 사람들이 예고했듯이 엄청 늦은) 역시나 9시 20분쯤이었고, 의사 선생님은 40분쯤에 들어오셨다. 그전에 간호사 선생님과 짧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건강보험이 공보험이 아니라 사보혐이라는 것을 알리고 내 가입 서류를 보여주었다.*


의사 선생님은 들어오셔서 내 손목과 서류를 확인했다. 내가 진료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보자 "일단 우리가 이 보험사에 비용을 청구해서 네게 돈이 들어오면 네가 그걸 우리한테 보내주면 돼"라고 말하셨다.** 


그사이 내 곁에는 초음파 기계가 들어와서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의사 선생님도 내게 지불 방식을 설명해 주면서 내 손목에 젤을 바르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초음파를 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 손목에 생긴 것이 역시나 강글리오놈 Ganglionom이 맞다고 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어서 끄덕끄덕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수술을 하자고 하셨다. 


"여기에 조그맣게 구멍을 뚫고 얘를 제거해 버리는 거야."

"그, 그냥 주사기로 하면 안 됩니까...."

"아? 주사기로도 가능은 한데, 그건 재발을 하게 될 거야. 그래도 일단 한 번 시도해 볼까?"

"네... 수술은 싫어요...."


그 순간 나는 약간 겁먹었기 때문에, 무려 "무서워요"를 영어로 뱉어버리고 말았다. 의사 선생님이 웃으며 알겠다고 일단 주사기로 제거해 보자고 했다.


나는 엑스레이도 두 방 찍고, 엑스레이를 통해 다시 한번 갱글리온의 위치를 확인했다. 의사 선생님은 헌혈할 때 쓰는 무척 두꺼운 바늘을 끼운 주사기로 손목에 구멍을 내고 내 관절액(!)을 뽑아주셨다. 중간쯤에 찌잉- 하고 울리면서 아팠는데, 내가 나도 모르게 움찔거리자 선생님이 미안해-라고 하셔서 또 반사적으로 괜찮아요...라고 대답하며 최대한 가만히 있으려고 애썼다.


주사기로 내 관절액을 뽑아내는 동안에(?) 의사 선생님은 내 신상조사를 하셨다. 어느 동네에 사니, 독일엔 뭐하러 왔니, 등등을 물어보다가, 별안간 "Lee라는 성은 한국인이 많지. 너도 한국인이지? 이건 왕의 성씨잖아."라고 말해서 나를 놀랬다. 주사기를 뺀 뒤 밴드를 붙여 후처치를 하신 의사 선생님이 말하셨다.


"2미리쯤 나왔어. 네 손목에 비하면 양이 많긴 했네. 이거 좀 재밌는데 한 번 볼래?"


그리고 그 관절액을 내 손가락에 좀 덜어주었다. 나는 완전히 놀란 얼굴로 또 반사적으로 그 액을 문지르며 이게 정확히 뭐냐고 물었더니 관절에 관절을 부드럽게 하는 윤활액 같은 게 있는데 그게 주머니를 만들며 모여 있던 것이라고 했다. 그 액의 느낌은 마치 크리니크의 수분 젤 같은 느낌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주신 티슈에 손을 닦고, 다음 주에 경과를 한 번 보자는 말을 듣고 나왔다.



드레싱도 따로 없이, 그냥 이렇게 밴드 하나 붙이고 끝이었다. 밴드는 다음 날 제거했다.



병원에 가기 전과 비교해서 확실히 크기가 줄어든 혹 덕분에 바늘이 깊게 찔렀던 부분 말고는 불편함이 없었다. 나는 일주일 뒤 경과를 지켜볼 일만 남았고, 접수대에서는 내 다음 예약만 확인해 주고 정말 아무런 돈을 청구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의 길고 사연 많은 손목 결절종 수술 사건이 시작되었다.







Tip

1. 만약 주치의 Hausarzt가 없이 독일의 병원을 가고 싶다면 무조건 구글에 검색을 하고 후기도 읽어보고 예약하길 추천한다. 독일은 어디든 대부분 방문 전에 예약 상담 전화를 해야 한다. 전화를 해서 접수처 직원이 받으면, 단순하게 지금 아픈 것이 어떤 통증인지 밝히고 이름과 내가 가지고 있는 보험의 종류를 알려주는 것 만으로 예약이 가능하다. 그러나 독일에 주치의가 있다면 우선 주치의를 방문하고 다른 병원으로 이원하는 것이 낫다.(고 한다) 단, 감기 같은 경우는 2주 뒤에 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단순 진료가 아니라 치과나 정형외과처럼 치료, 시술을 하는 경우 내가 예약 시간에 도착해도 1시간 넘게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2. 나는 독일에서 상비 약을 몇 개 가지고 있길 추천한다. 우리나라에서 비판텐으로 알려져 있는 연고 베판텐, 소염 진통제인 이부프로펜, 해열진통제인 파라세타몰, 생리통과 치통에 효과가 좋은 돌로민, 근육통과 생리통에 효과 있는 부스코판 같은 알약은 물론 이베로가스트 같은 소화제, 다래끼에 바르는 연고, 입술 염증에 바르는 연고 등 대부분의 약은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 독일의 건강보험, 공보험과 사보험:

독일에서는 모든 거주자가 무조건 독일의 건강보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비자를 받거나 학교에 입학할 때에도 이 보험이 필수다. 석사 이하이며 30세 미만의 학생이거나,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경우, 공보험이라고 불리는 매우 비싼 건강 보험에 자동으로 가입이 된다. 대부분 솔로이기 때문에 혼자를 커버하는 보험료가 한 달에 거의 120유로 정도 된다. (보험사는 AOK, TK 등이 있다.)

그러나 나는 30세 이상이며 박사 학생이기 때문에 첫 가입 시 최장 기간 5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보험 Care Concept에 가입했다. 이것은 일종의 유럽 내 여행자 보험 같은 개념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보험료가 한 달에 35유로 내외로 아주 저렴하다. 중요한 것은 이것도 회사에 따라 가입 가능한 나이가 다르다. 만약 나이가 35세 이상이고 박사 연구를 시작했으며 (이것이 아주 중요한데) 학교에서 사보험을 허가해 주지 않는다고 하면 무조건 비싼 공보험에 가입해야 할지도 모른다.

공보험의 좋은 점은 대부분의 진료 등이 보장된다는 것이고 귀찮은 일이 적다는 것. 사보험의 단점은 반대로 보장 내역이 특약에 따라 다르고 약간 귀찮다는 점이다. 그런데... 사실 독일에서 병원을 가는 일 자체가 그렇게 흔하지 않기 때문에 선택은 자유다. 어차피 만약에 독일에서 직업 생활을 제대로 시작하게 되면 보험은 자연히 공보험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 부분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이 내가 서류에서 확인한 정보와 조금 달랐다. 내가 알기로 내가 가입한 보험사의 경우 우선 내가 먼저 병원에 진료비를 내고, 진단서와 영수증 등을 보험사에 스캔해서 보내면 그들이 돈을 돌려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다. 나는 의사를 만났으니까. 더구나 복잡한 과정을 병원이 해결해 준다는데 당시엔 그런가 보구나-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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