돔 페리뇽

Day 16. 오트빌레 (Hautevillers), 프랑스

by 여행에 와 락

와인이나 샴페인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돔 페리뇽이라는 샴페인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돔 페리뇽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리고 가장 비싼 샴페인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돔 페리뇽이 샴페인과 와인의 생산과 보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중세 수도사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돔 페리뇽 동상. 에페르네 (Epernay)의 샴페인 거리에 있는 모엣 샹동 샤토에 위치한다.



오늘 우리는 돔 페리뇽이 시무하던 교회와 샴페인이 태어난 곳인, 오트 빌레(Hautevillers)라는 마을에 왔다. 우리가 묵고 있는 빌레-도망 쥬(Ville-Domange)에서 그림 같은 풍경 속을 25분 정도 남쪽으로 달려가면 또 다른 그림 같은 마을이 나온다. 이 길은 어제저녁 올라갔던 뒷동산을 거쳐가는 곳으로 오직 현지인들만 아는 길이다. 내비게이션을 켜면 이 길이 아닌 렘스(Reims)에서 가는 큰 도로길을 안내해준다. 이 그림 같은 길은 집주인인 디디에가 반드시 이리로 가야 한다고 가르쳐 준 길이다. 오트 빌레에 도착하기 바로 전에 내리막 길이 있는데 그곳에 서서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면 넓고 넓은 포도밭 사이사이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들이 그림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씨닉 뷰 포인트 (Scenic View Point)인 셈이다. 오트빌레와 저 멀리 샴페인 지역의 또 하나의 중요한 마을인 에페르네 ( Epernay) 도 보인다. 에페르네도 이 길을 통해 가게 되어있다. 오늘은 에페르네까지 갈 예정이다. 올드타운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에 디너 예약을 했기 때문이다.


오트빌레 가는 길 언덕에서 바라본 포도원과 마을 전경



오트빌레, 건물 사이로 보이는 포도밭



돔 페리뇽 ( 1638-1715)은 오트빌레의 베네딕타인 애비 ( Benedictine Abbey)의 수사이자 와인 셀러지기였는데 와인을 만드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공로를 세운 바 있다. 항간에는 그가 샴페인을 처음 만들었다는 말도 있으나 이는 사실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돔 페리뇽은 적포도를 사용해 완벽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법을 창안해 내었고, 샴페인을 만들 때 포도가 가진 당도를 잘 활용하여 두 번째 발효가 자연스럽게 잘 되게 하는 방법, 샴페인의 기포를 잘 유지하는 방법 등을 마스터했을 뿐 아니라 나무 마개 대신 코르크 마개를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이다. 이 지방의 기온 차이 때문에 와인이 숙성되는 과정에서 병이 터지며 폭발하는 사례가 빈번히 일어나자 이때 생성되는 기포를 잘 유지하기 위해 더 두꺼운 병을 사용하고 코르크 마개 위에 철사를 감아 고정시키는 방법을 쓰면서 샴페인을 완벽하게 보관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 돔 페리뇽은 와인 마스터이자 샴페인의 아버지이다. 이 교회는 아주 작고 소박한 교회였는데 강단 앞쪽으로 나가면 바닥에 그의 이름이 그곳에 잠든 다른 수사들의 이름과 함께 적혀있다. 그 교회 바닥 아래에는 그들의 무덤이 있다. 예전 유럽에서는 교회 바닥 아래에 수사들을 묻는 관습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돔 페리뇽이 시무했던 교회, 오트빌레



동 페리뇽이 시무했던 교회 내부




이 돔 페리뇽의 스토리를 비즈니스에 잘 활용하는 회사가 있다. 이 일대의 포도밭을 사들여 샴페인을 출시하는 모엣 샹동 ( Moet & Chandon)이다. Moet & Chandon이라는 훌륭한 샴페인도 생산하지만 그 유명한 돔 페리뇽을 생산하며, 크루그 (Krug)와 오렌지 레이블로 유명한 뵈브 클리코( Veuve Cliquot )도 소유한 샴페인 굴지의 회사이다.



오트빌레에 있는 모엣 샹동 소유 포도밭. Moet & Chandon 이라는 표시가 있다



돔 페리뇽은 항상 빈티지 샴페인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샴페인은 와인과는 달리 늘 빈티지 연도를 레이블에 명시해 놓지 않는다. 대부분은 연도가 없다. 연도를 새겨놓은 것을 빈티지 샴페인이라고 하는데 이건 샴페인 제조 회사가 이 샴페인은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포도의 질이 아주 좋다고 판단되는 해에 만들어 연도를 새겨놓는다. 대부분 샴페인은 3-5년은 두고 마셔도 괜찮은데 빈티지 샴페인은 10년 이상 두고 마셔도 괜찮다. 우리 집에도 1976년 페리에 쥬엣 (Perrier Jouet)이 있는데 막상 코르크를 따면 어떤 맛이 날지 무척 궁금하다. 너무 오래됐지 싶다.


돔 페리뇽의 교회를 방문하고 오트빌레의 돔 페리뇽 거리를 조금 올라가니 디디에가 알려준 와인바가 나왔다. 이 와인바에서는 샴페인을 만들 때 들어가는 3가지 품종의 샴페인을 각기 단품으로 마셔볼 수 있다. 무척 궁금했다. 3 flight를 시켜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샤도네이, 피노 누아, 피노 뮈니에( Pinot Meunier) 샴페인을 각각 시음해 보았다.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샤도네이와 피노 누아는 비록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었어도 와인을 마셔본 사람들은 잘 아는 그 맛이다. 그런데 피노 뮈니에는 달랐다. 처음 맛보는 특이한 맛으로 샴페인 특유의 맛이었다. '그렇지, 이게 들어가야 샴페인이지!' 하는 맛이다. 어제오늘 체득한 샴페인에 대한 지식에 뭔가 정점을 찍는 기분이었다.


오트빌레에 위치한 Au36 와인바







Au 36 와인바에서 제공하는 샤도네이, 피노 누아, 피노 뮈니에 로 만든 단품 샴페인. 이 세 품종으로 샴페인을 만든다. 잔 바닥에 품종을 새겨 놓았다.




오트빌레. 골목 끝에 돔 페리뇽이 시무했던 교회가 보인다



저녁 식사 전에 에페르네(Epernay)를 잠깐 둘러보았다. 렘스(Reims)와 더불어 샴페인의 생산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에페르네에는 샴페인의 거리가 있다. Avenue of Champagne이라고 한다. 이곳에 가면 유명한 샴페인 샤토들이 줄을 지어 거리에 세워져 있다. 저녁 예약까지 시간이 많지 않아 부지런히 가서 차로 일단 돌아보았는데 당장이라도 내려서 다 둘러보고 싶을 정도로 유혹적이었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들이 줄지어 거리에 서 있었는데 그것들이 모두 샴페인 샤토였다. 그런데 시간이 없다. 아무래도 내일 다시 와야 할 것 같다. 내일은 벨기에로 떠나는 바쁜 날이라 차를 거꾸로 돌려 여기를 다시 왔다가 가야 하나 싶었지만, 이 샴페인 거리를 어떻게 포기한단 말인가? 우리는 쿨하게 결정했다. 내일 다시 오늘 지나온 그림 같은 길을 달려 에페르네의 샴페인 거리를 탐험하자. 이 샤토에서 최소한 한잔은 마셔야 한다.


단지 유명한 샴페인이어서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돔 페리뇽. 드라마나 영화에서 럭셔리하고 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하는 돔 페리뇽. 나에게는 이런 느낌이었던 돔 페리뇽의 역사와 실제 스토리를 알게 된 것은 샴페인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지만 사실 의외의 수확이었다. 돔 페리뇽 수사의 교회를 방문하기 전까지는 오트빌레는 에페르네로 가는 길목의 아름다운 마을로만 여기고 왔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와인바에서 맛 본 3가지 다른 품종의 샴페인을 테이스팅한 것은 더없이 색다른 경험이었다. 각각의 맛을 구별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근사한 인테리어와 옆 창문으로 언뜻 비치는 중세에 세워진 커다란 교회당의 불빛까지 환상적이었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의 품위 있는 식사. 오늘 하루는 더할 수 없이 만족스러웠다. 이 세상 것이 아닌 풍경들, 눈과 마음으로 배부르게 먹은 샴페인에 대한 지식. 미쉘린 스타 레스토랑은 못 갔지만 미쉘린 스타 여행을 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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