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2. 잔세 스칸스 ( Zaanse Schans), 네덜란드
잔(Zaan) 강을 배경으로 유유히 그리고 평화롭게 돌아가고 있는 이 풍차들은 잔세 스칸스 ( Zaanse Schans)라는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17세기에서 20세기 사이에 지어진 풍차들이다. 지금은 색색으로 컬러풀하게 페인트 되어 아름답게 보이지만 현실적인 기능을 위해 쓰였던 이 풍차들이 그 시기에는 어떤 모양과 색이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이곳에는 8개의 풍차가 있는데 모두 그 기능이 다르다. 스파이스, 겨자, 목재, 염색, 오일 등을 짜고 만드는 풍차들인데, 오일 밀 ( Oil Mill)이 4개로 제일 많다고 한다.
이들 중 몇 곳은 내부를 공개하여 입장료를 내면 들어갈 수 있는데, 들어가면 지금은 현대식으로 다시 만든 나무 기계들, 예를 들면, 커다란 톱니가 맞불려 돌아가는 기계, 방아를 찧는 듯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기계, 커다란 맷돌처럼 짓누르며 돌아가는 기계 등이 열심히 일을 한다. 좁다란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풍차를 둥글게 둘러싼 커다란 데크가 나오는데,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잔강은 물론, 뒤편의 튤립밭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우리가 방문한 8월은 튤립 시즌이 아니라 잡초 같은 풀이 무성했지만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형형색색의 튤립밭이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잔세 스칸스에는 풍차와 튤립만 있는 건 아니다. 풍차 바로 옆에 한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공예 공방과 박물관이 있다. 네덜란드 전통 나무 신발, 치즈 팩토리, 주석 공예, 베이커리, 앤티크 샵, 동물 농장, 우유 짜는 곳 등, 들러서 구경할 곳이 아주 많다. 18세기와 19세기의 네덜란드 마을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말하자면 민속촌이다. 이 마을도 아주 작은 운하로 둘러 싸여 있는데 이를 잇는 작은 구름다리들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
이 마을은 1961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는데 몇몇 건물은 전국 각지에서 운반해오기도 했다고 한다. 한 건축가의 설계로 형성되어 역사와 문화를 재현해 낸 이 마을은 네덜란드 최고의 관광지가 되었다. 그래서 네덜란드 여행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곳이 바로 이 잔세 스칸즈다. 일 년에 수십만 명이 다녀가고 하루에 수백, 수천 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마을에 있는 집들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래서 관광객들에게 조심을 당부하는 글도 함께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느 예쁜 집 앞에 한 노 부부가 한참을 벤치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풍차를 둘러보고 마을로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나무 수레에 가득 실려있는 양철로 만든 우유통이었다. 보자마자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가 떠오른다. 네로와 파트라슈가 끄는 그 우유 수레다. 검색을 해보니 이 소설의 배경은 벨기에의 안트베르프 근처라고 한다. 벨기에의 60%가 네덜란드어인 더치 ( Dutch)어를 쓰고 있고 벨기에는 네덜란드와 바로 국경을 마주한 곳이니 문화가 같을 수밖에 없나 보다.
앤티크 샵을 지나 작은 목장으로 가는 길에 조그만 창문 안에서 '플란더스의 개'의 아로아 복장을 한 예쁜 소녀가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다. 하나를 주문했다. 내가 좋아하는 바닐라맛 소프트 아이스크림이다. 이 소녀는 십 대 후반이거나 20대 초반의 아주 앳된 친구였는데 우리가 미국에서 왔다고 하니 조잘조잘 떠든다. 자기도 미국에 가고 싶어서 돈을 모으고 있는데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둥, 뉴욕을 제일 가고 싶고, 샌프란시스코도 가고 싶다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한입 베어 물은 순간 난데없이 파트라슈의 우유통이 스쳐갔다. 이후 순식간에 나의 뇌는 연상작용을 시작하여 네덜란드, 낙농업, 소, 우유, 아이스크림... 휘리릭 눈 깜짝할 사이에 이 아이스크림의 왜 이토록 맛이 있는지 이유를 알아냈다. 우와... 이 맛은 이 세상 맛이 아니다. 우유의 풍미가 가득한 아주 진한 우유맛의 아이스크림. 최고의 아이스크림을 만났다. 이후로도 우리는 네덜란드 곳곳을 다닐 때마다 아이스크림을 시켜서 먹어봤다. 그런데 이곳의 아이스크림 맛이 나질 않는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곳에서 가장 권하고 싶은 곳은 아이스크림 스탠드이지만, 수십 종류의 치즈를 만들고 전시하는 치즈 팩토리와 베이커리 뮤지엄, 앤티크 샵 그리고 나무 신발 공예공방도 꼭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