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많은 안 좋은 기억들 중 나를 유난히 강하게 끌어당기는 기억을 살펴보았다. 최근에 코로나로 인해 잠시 일을 쉬게 되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나와 내 동생 J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릴 적 (그리고 학창 시절)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상처 받았던 일들에 대해 서로 솔직한 대화들을 나누었다. 그러면서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은 J는 어떤 미술심리 치료에 의하면 자신의 집을 그린 그림을 통해 그 사람의 내면에 대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J는 만약 우리들이 어릴 적 상처 받았을 때를 떠올리면 과연 머릿속에 어떤 집들이 그려지는지 상상해보자고 했고 우리는 꽤 진지하게 1분간 생각한 후에 서로의 집에 대해 이야기했다.
J가 먼저 자신의 집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J의 집안에는 사람들 뒤에 큰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집안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큰 그림자가 어릴 적 J가 겪은 스트레스와 두려움, 걱정 등이 어린아이의 시선을 통해 큰 그림자들로 표현된 것이라 아닐까 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어 나는 내가 그린 집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는데 사실 아무 생각이 안 들었기 때문에 그냥 대충 지어내려고 했지만 차마 나를 진실함이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는 J에게 어수룩한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고 최대한 진심으로 머릿속에 나의 집 그림을 그려보았다. 나는 작은 집 하나를 구석에 그린 후 대답했다.
“내 집은 크기가 꽤 작고 좀 구석에 있네?”
그러자 J는 더 노력할 수는 없냐는 듯, 더 진실되게 노력하라며 나를 노려보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보이는 것을 말했다.
나는 내가 집안에 있지 않아. 멀리 떨어져서 서있어.
나도 모르게 내뱉은 뒤 나 조차도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내가 미술심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것은 본능적으로 꽤 심각한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J 또한 그렇게 느꼈는지 우리는 잠시 침묵한 후 진지하게 내 머릿속 집 그림에 대해 이야기했다. 도대체 나는 왜 그렇게 희한한 그림을 그렸을까?
미리 말하지만 어린 시절 나는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특이하다면 특이한 어떤 집에도 있을 법한 웬만한 일들이 일어나는 가족 안에 살고 있었다. 보통 가족과 함께 보통 집에서 일어날 듯한 가족 간의 일일 드라마와 사건들 속에서 말이다. 어느 집에서나 일어났을 법한. 하지만 왜 나는 나 스스로를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집안이 아닌 멀리 동떨어진 곳에 그린 것일까?
그에 대해 J는 조심스럽게 내가 나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그렇게 그린 것이 아니냐 말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딱히 별로 상처가 없다고...순탄한 어린 시절을...평범하게...보통 가족 안에서 보냈다고 생각, 혹은 믿고 있었는데...
내 마음은 사실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어느 집에서나 일어났을 법한 가족 간의 일일 드라마와 사건들 속에서 나는 나 나름대로 상처들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한 채 그냥 앞으로 전진하며 살아온 것이다.
나는 내가 상처를 받을 때마다 그 상처를 잘 감싸서 내 무의식 심연 속 끝이
보이지 않는 아주 긴 대나무통 안에 꾹꾹 눌러 담아왔다.
처음엔 무척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렸을 것이다. 아마 마음을 추스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해야 탈이 없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음속에 불쑥불쑥 올라오는 감정들을 작은 손바닥으로 긴 대나무 통 안으로 꾸욱 눌러 담는 일은 분명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낯설고도 흥미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렇게 그 감정들을, 그 시간들을 버텨온 것이 아닐까.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니 그 이후에는 나름 요령이 생겼는지 시간도 에너지도 얼마 안 걸려서 뚝딱 해치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예 상처 받은 적이 없다는 듯 태연하게, 아니 오히려 더 씩씩하게 행동해왔다.
결국 나는 나와 J의 어린 시절 상처에 대한 깊은 대화를 통해서 내가 그동안 외면하며 눌러 담아 온 나의 상처들의 존재에 대해 알아차린 것이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온 나 자신이 나는 대견하면서도 동시에 안쓰럽고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왜 더 나은 방법을 택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 택하지 못했던 것이겠지.
그때는 몰랐었으니까... 무엇이 나은 방법인지 아닌지를...
지금이야 나이도 들고 경험도 쌓여서 무엇이 나은 방법인지 아닌지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어린 시절 나는 그런 생각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 내가 최선이라고 믿었던 방법을 택한 것이었을 것이다. 아니... 사실 지금도 습관처럼 내 감정들을 눌러 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직도 그때의 날감정들이 칼날처럼 마음 이곳저곳을 쑤셔왔기 때문에 나는 이 기억을 선택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과 싯다르타에게 간단히 나와 J의 어릴 적 상처에 대한 대화, 그리고 내가 그림 나의 집과 그 집이 어떻게 나의 상처들과 연결되어 있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나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었다. 내 이야기를 끝내고 나는 괜히 쑥스러워져서 애꿎은 코만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아인슈타인은 기다렸다는 듯 담담히 말하기 시작했다.
“괜찮네, 자네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닐 걸세. 사람들은 본인이 가장 되돌리고 싶은 순간을 떠올리라고 하면 대부분 자신이 가장 후회하거나 혹은 자신을 어떤 것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싶은 순간들을 떠올리기 마련이지. 그러니 지금 자네가 느끼는 그 감정들이 그저 자연스럽게 자네를 지나가게 놔두게.
그 기억과 감정들은 더 이상 자네를 해치거나 공격하지 못한다네.
그것들은 이미 일어난 일이니까 말이네.
바로 자네의 과거라는 지나간 시간 안에서 말이지. 그러니 다시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마음의 평점심을 찾게나. 이때 자네가 필요한 만큼 시간을 갖고 준비가 되면 우리에게 말해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