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어느 날 진동이 찾아왔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를 둘러싼 세계에
미세한 진동들이 연속으로 일어나
작은 균열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번 일어나기 시작한 그 균열들은
소리 없이 작은 틈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전엔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던
낯설면서도 그리운 경험들이
내 작은 세계를 뒤흔들기 시작했지요.
이 세계 넘어 존재하는 무언가에 대해
끊임없이 꿈을 꾸기도 하고
한 마리 나비 같은 희망을 품었다가도
나는 또다시 익숙하고 평범한
내 세계 속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전엔 느껴보지 못했던
답답함과 불안함에 계속해서 이리저리
온몸을 움직여보기 시작했습니다.
평온하고 안전하게만 느껴졌던 이 세계가
나는 더 이상 만족스럽지 않아져 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원히 평온하고 안전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의 세계가
천천히 파괴되고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두려움에 온몸이 마비되었고
하늘이 두쪽으로 나뉘며 퍼지는
천둥 같은 큰 울림들에
두 눈을 있는 힘껏 감았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무시무시한 폭풍이 멈추고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한 고요함 속에서
나는 살며시 두 눈을 떴습니다.
눈을 뜨자 그곳엔
따스한 햇빛과 상쾌한 미풍이 불어오고
발아래로는 드넓게 펼쳐진 푸르른 들판과
머리 위로는 하얀 구름들이 떠다니는 하늘이,
저 멀리에는 맑고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한때 나의 전부였던 세계,
그 얇고 메마른 껍질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나는 뜨거운 눈물로 기쁨의 작별을 고했습니다.
"지금까지 나를 잘 보살펴줘서
정말 고마워. 너도 참 고생 많았어.
이제 너도 네 할 일을 다 마쳤으니
어머니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렴.
나도 빛과 푸름이 가득한 이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투쟁을 기쁘고 치열하게 시작해 볼 테니.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우리 각자의 삶에 충실하자.
그래서 다시 만나는 그날
환하게 웃으며 서로 꼭 안아주면서
뜨거운 눈물로 기쁨의 재회를 하자!"
나는 나의 정든 껍질에게 인사를 건넨 뒤
내 앞에 놓인 빛과 푸름의 세계를 향해
한 발자국 다가섭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당신을 바라보며
손을 내밀어봅니다.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던
나는 당신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마치 내가 내내 혼자가 아니었듯이.
그러니 포기하지 마세요.
아무리 힘들어도 당신의 곁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상이, 우리가,
내가 있습니다.
나는 언제나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