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은 Jun 24. 2024

오로라의 춤

이제은

나를 붙잡고 있는

그 손을 놓아주어요


나를 붙잡고 있는

그 생각을 놓아주어요


누군가요

누구의 손인가요

누구의 생각인가요


나는 그저 나이고

그저 나이지요


당신은 그저 당신이고

그저 당신이에요


우리 두 팔을 활짝 벌려

놓아주어요, 모두


지금 우리를 붙잡고 있는

모든 것들을


귓가에 흐르는 음악소리에

그저 맡겨보아요


내 가슴을 울리는

그 선율 하나하나에


기쁘게 뛰는 심장의 박동을

벅차오르는 뜨거운 숨결을

손끝으로 퍼져나가는 열기와

두 다리에 느껴지는 뿌리 같은 단단함을


어느새 온몸을 휘감은 환희는

빛나는 어머니 태양과 푸르른 아버지 하늘,

나무와 새, 구름 형제자매들과 함께

세상 모든 것들이 나의 가족임을 속삭여주어요


길가의 작은 풀잎에서부터

밤하늘의 조용한 별들의 반짝임 속에서도

내가 있고 당신이 있지요


나는 손을 뻗어 붙잡아요

흔들리는 우리들의 걸음마를


한걸음

한 번에 한걸음

그렇게 한 번에 한 걸음씩

놓아주고 춤추고 또 붙잡아주며

함께 나아가지요


장미처럼 발그레진 두 볼

초승달처럼 휘어진 두 눈

사랑스러운 그 미소에

내 작은 가슴은 기쁨의 날개를 달고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춤을 추지요





작년 아이슬란드에 갔을 때 만났던 오로라. 간절함이 현실이 되었던 꿈같던 순간. 기적처럼 만났던 오로라의 아름다운 춤은 다름 아닌 우리들의 영혼의 춤임을.




https://youtu.be/7F-ZefJhXFM?si=Z-VkSOUpJf4D95cZ

츠지이 노부유키의 곡 <花水木の咲く頃 (화수목 꽃이 필 무렵)>

花水木の咲く頃 (辻井伸行)



저는 주기적으로 새로운 음악을 듣습니다. 좋아하는 곡을 들을 때의 기쁨도 그 나름대로 있지만 몰랐던 새로운 곡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의 기쁨도 참 크지요. 그래서 인내심을 갖고 듣다 보면 운이 좋은 날에는 첫사랑같이 마음에 사로잡는 곡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만나게 된 곡이 츠지이 노부유키의 <화수목 꽃이 필 무렵>이라는 위의 곡입니다. 이 글도 이 곡이 영감이 되어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며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궁금해 찾아보다 그가 시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009년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기도 한 그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우린 때론 행복을 상대적으로 느끼지만 사실 행복은 절대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불행 앞에서 내 삶에 대한 감사함을 느낄 수 도 있지만 그의 불행에 대해 연민을 느낄 수 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의 행운 앞에서 질투를 느낄 수 도 있지만 함께 기쁨을 느낄 수 도 있지요. 츠지이 노부유키의 연주를 들으며 그 안에서 그의 영혼의 눈부신 의지와 음악을 향한 불타는 사랑과 끝없는 열정을 조금이나마 느껴보았습니다. 그 어떤 명상과 가르침보다도 제 영혼 깊숙이 다가온 그 선율들 하나하나가 감사와 감동이었습니다.


저는 이 곡을 들으며 모든 감정이 그저 내 안에서 일어나는 파도의 물결임을 알아차릴 때 비로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감정들에게서의 자유임을,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함께 흘러가는 유연함임을 배웠습니다. 음악은 우리 안에 깊숙이 잠들어있는 자유와 유연함을, 그리고 그 둘을 향한 우리들의 간절함을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춤을 추어보라 부드럽게 나를 일으켜 세워줍니다. 누구를 혹은 무엇을 위한 춤이 아닌 그저 내 안의 수많은 감정들(기쁨과 고통, 슬픔과 괴로움, 외로움과 불안함, 행복과 감사함)을 내가 몸으로 느끼고 몸으로 표현하는 행위는 나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일치시켜 줍니다.


그렇게 일치되는 순간 큰 환희가 오로라처럼 밤하늘을 밝혀줍니다. 따뜻하고 신비로운 오로라의 황홀한 춤사위에 아무도, 나 자신도 미처 알아보아주지 못했던 나의 모든 순간들이 눈 녹듯 부드럽게 녹아내림을 느낍니다. 내가 나를 용서하고 내게 용서를 구하며 오랫동안 잊혔던 화해를 이루어냅니다. 내가 나를 자비로운 사랑으로 쓰다듬어줄 때 나 또한 세상을 향해, 그 안의 모든 것들을 향해 자비로운 사랑의 마음을 품을 수 있겠지요. 아직도 많이 서투르고 미숙한 나의 모습에서 마치 걸음마를 조심스레 내딛는 아기의 모습이, 그리고 그 아기를 무한한 인내심으로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부모님의 모습이 모두 보입니다.   


한 번에 한 걸음씩, 우리가 서로의 걸음마를 붙잡아주고 또 그렇게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지요? 우리의 작은 가슴들이 기쁨의 날개를 달고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해 보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순간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황금빛 햇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