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글 에세이시
세이지 꽃이 있는 풍경
찬기운이 살갗에 닿자마자 마음의 온도를 낮춘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는 신호를 피부로 먼저 실감하는 것이다.
이유를 대면할 사이도 없이 찬바람이 불 때면
쓸쓸해지기도 하는 것을 설명하지는 못하겠다.
세이지 꽃이 감나무 밑에서 여름을 지나와 가을 어귀로 스며든다.
감잎들은 벌써 붉게 색을 들이며
알레르기 비염에 걸린 듯 바람의 결을 타고 있다.
흐린 하늘 아래서 낯익은 가을 풍경이 서사적이다.
깨씨무늬병에 침탈당해 쭉정이로 털려야 하는 벼이삭처럼
고개 숙이지 못한 채 가을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나
원하는 대로 이루고 살지 못했다는 자책을 벗겨내지 못하겠다.
그러므로 가을에는 까닭 없는 쓸쓸함을 허락해야 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