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타는 대봉감
금정면 사무소를 지나가면서야 시골스럽지 않은 가을의 면모를 보게 되었다. 붉은 글자들, 속 타는 농심이 플래카드로 걸려있다. 죽어라 지은 쌀농사가 벼멸구의 기승에 죽자고 쓰러져 있다. 누렇게 말라 자빠져 있는 벼 이삭들이 흡사 황달 걸려 죽어있는 시체와 같다. 가을을 걷어 살아내야 하는 운명이 처연하게 병들어버린 것이다. 햇빛데임병에 걸린 대봉감이 상품성을 잃어 수확량이 반으로 죽었는데, 나락 농사마저 쭉정이가 절반이다. 좋아지겠지, 좋아지게 해 주겠다는 거짓 공약들에 솎고 있진 않았지만 행여라도 그렇게 됐으면 하는 바람은 버리지 못했다. 참고 살았던 시간의 밑창을 피 같은 글씨로 적어 공중에 목매달아 놓은 것이다. "쌀값 약속대로 보장하라." "벼멸구 피해 특별 재난지역으로 인정하라." 홍시가 되면 겨우내 속 빨간 단맛을 지켜주는 영암 금정에 대봉감 한 상자 사러 갔다가 면사무소 앞에서 발이 묶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