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글 에세이시
가을 들다
가을이 왔다고 묵혀두었던 슬픔을
지척으로 불러오지 않으려 하지만
찬바람이 어깨를 결리게 하고 가슴이 씁쓸해진다.
맺고 거둬들이는 가을이 아이러니하게
상실의 쓸쓸함으로 기분을 지배당하는 계절이다.
외적인 풍요가 내면의 빈곤을 불러오는 것이다.
한없이 넘치고 싶으나 품고 있는
과분한 공간을 원하는 만큼 채울 수가 없어서다.
가을에 들어서면서 메우지 못한 마음의 허점이 커진다.
잊지 못할 공간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 지치고
진절머리 나게 밀고 들어오는 찬가운에 속이 아리다.
철 지난여름의 침범을 받았던 시월의 늦더위가
갑자기 무뎌지자 어김없이 가을이다.
돌이켜서는 안 될 슬픔들을 막아내지 못하겠다.
진하게 단풍이 들기 시작한 나무들처럼
상실을 붉게 물들여 떨어낼 가을 들어야 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