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순간
그날에는 그날만의 느낌이 있듯
그에게는 그만이 가진 고유함이 있었다.
가까이 가면 은근히 감정을 진정시켜 주는
독특한 체취가 그에게서 풍겨 나왔다.
마주 서면 눈꼬리가 처져있는 눈꺼풀 안에서
가만히 신경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차분한 눈동자가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박력이 넘쳐 손가락 끝이 치켜 올라가
허공이라도 가리키면 금세 화창하던
가을 하늘에 푸른 멍이 뚫려
비라도 내리게 할 기세가 그에게는 있었다.
그날 나는 그처럼 매력적이고 싶어 져서
그의 모습을 흉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을 반전시킬 절박한 기로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외로움인지 그리움인지 분할할 수 없는
시간의 분기점에서 절박하게 탈출할 기회의 날이었다.
한 사람을 향해 다부지게 서야 하는 날이었다.
인연은 뜻밖의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운명을 걸어야 했던 그날을 그렇게 기억한다.
그날이 준 구원의 느낌을 그에게서 받아내며
평생의 영감으로 삼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