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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

왜 깨작깨작먹냐?

by 맑은희망

“누가노?”

외할머니는 경상도 사람으로 전화를 하시면 “누가노?”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저 경숙이에요. 잠시만요”하며 엄마를 바꿔드렸다.


엄마는 일이 생겼다며 아빠와 같이 서울에 가야한다며 “외할머니가 와계실거야. 말씀 잘들어”하고 말씀하셨다.

며칠후 외할머니가 오셨다. 원래 말이 길지는 않으신 외할머니는 짐을 정리하시고 우리에게 오셨다.

“뭐 먹고 싶은거 있노?”

언니는 “김밥이요”하고 말했다.


외할머니는 당근을 수북히 채썰으셨다. 당근을 볶고 깨도 듬뿍 뿌리셨다. 외할머니는 햄, 시금치, 계란도 빠른 손놀림으로 만드셨다. 외할머니는 능숙하게 압력밥솥도 사용하셨다. 어찌보면 엄마랑 비슷한 듯도 하면서 다른 듯한 손놀림이었다. 외할머니는 김을 놓고 그 위에 양념한 밥을 펼쳐서 놓으셨다. 그리고 하나씩 재료들을 얹으신 뒤 당근을 수북히 쌓으셨다. 저게 다 말리려나 싶었지만 외할머니는 능숙하게 말았다.

우리 엄마는 밥을 많이 넣고 재료는 적게 넣으셨다. 엄마는 늘 건강하려면 싱겁게 먹어야한다면서 간도 적게했다. 그런데 외할머니 김밥은 아주 통통했는데 밥은 적었다. 하나도 터지지 않게 자르셨다. 할머니는 분명 당근에도 깨를 뿌렸고 밥에 간할때도 뿌리고 우리에게 먹으라고 준 김밥에도 깨를 부리셨다.


“먹어라”하며 할머니가 예쁘게 담아주신 김밥은 정말 맛있었다. 당근이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도 좋았고 고소했다. “너무 맛있어요”하고 말하니 “니네 엄마도 요리 잘하는데?”하고 말씀하셨다. “엄마꺼보다 훨씬 커요”하고 말하니 웃으시더니 언니를 보고 “너는 왜 깨작깨작 먹냐? 먹기 싫음 관둬”하고 말씀하셨다.

언니는 “저 열심히 먹고 있는데요?”하고 말했다. 언니 딴에는 열심히 먹고 있는건데... 나는 웃음이 나왔다.

외할머니는 한번은 냉면을 해주셨다. 냉면 육수를 냉동실에 얼린 뒤 꺼내놓으셨다. 이번에는 오이를 잔뜩 채썰어 쌓아두셨다. 커다란 스덴양푼에 냉면육수를 넣고 채썰은 오이와 할머니가 사랑하는 깨를 잔뜩 넣으셨다. 외할머니는 계란도 삶으셨다. 나는 얼른 밖에 나가서 밭에있는 토마토를 따왔다. 깨끗이 씻어서 드리니 외할머니가 잘라주셨다. 외할머니는 면을 삶아서 물에 여러번 헹구셨다. 엄마 손보다 작았지만 손 힘은 외할머니가 더 센 듯 보였다. 냉면을 조금씩 덜어서 그릇에 담고 육수를 부어주셨다. 오이와 깨들이 잔뜩들어 있는 냉면. 나는 옆에서 완성된 냉면 위에 토마토와 계란을 얹었다. “먹어라” 언니랑 나는 냉면을 맛있게 먹었다. 면이 딱딱하지도 않고 너무 풀리지도 않게 잘 삶겨있었다. “맛있어요”하고 말하니 외할머니는 “너는 뭐든 맛있지?”하고 말씀하시고 웃는다.


엄마는 냉면보다는 국수를 잘해주셨다. 비빔국수. 국수를 만든 뒤 양념을 해서 김치랑 볶아서 주시면 양이 어마어마했다. “엄마 너무 많아”하고 말하면 “국수는 금방 배꺼져”하고 말했다. 엄마와 딸인데도 스타일이 다른게 재미있었다. 나도 나중에 크면 엄마나 외할머니처럼 요리를 잘 할까?


- 외할머니가 오셨다. 외할머니는 7남매를 두었고 그래서 손주도 많았다. 우리까지 외할머니의 사랑을 받기는 어려웠겠지. 외할머니와는 말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외할머니는 뭐 먹고 싶은게 있냐고 물으셨다. 나는 없다고 하면 서운해 하실까 싶어 그나마 무난한 김밥이라고 이야기했다. 외할머니는 손이 무척 빨랐다. 외할머니가 해주신 김밥은 엄마와 달랐다. 엄청 컸기 때문에 한 입에 넣기도 힘들었다. 맛이 있어서 열심히 먹고 있는데 “그렇게 깨작거릴거면 먹지 마라”하고 말씀하셨다. 나름 열심히 먹고 있는건데..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들었는지 내가 생선을 좋아한다면서 생선을 자주 구워주셨다.

경숙이는 아침잠이 많았다. 나는 아침이면 눈이 떠졌다. 생선을 굽는 외할머니에게 “안녕히 주무셨어요?” 인사를 하니 외할머니는 “힘들지? 서울 살다가 이리와서 늘 걱정이다”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네”하고 말하며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서울에서 시골로 온다고 했을 때 외할머니는 매우 서운해 하셨다. “엄마 자주 놀러올게” 엄마가 말했지만 외할머니는 한참을 서서 우리 차가 멀어질때까지 서서 쳐다보셨었다.

며칠후 엄마가 오셨다.

“엄마 더 있다가 가”

“싫다”하고 외할머니는 다시 짐을 싸고 일어나셨다. 아빠가 버스가 있는 읍내까지 태워다 주신다고 하셨다. "경숙아 아빠랑 데이트하자"하니 경숙이는 얼른 아빠 차에 탔다. 외할머니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셨다.


엄마는 안방에서 외할머니가 놓고간 돈봉투를 보셨다. “왜 이렇게 옷이 허름하냐고 하실까봐 일부러 차려입었는데 옷장을 열어보셨나봐.”

엄마는 돈 봉투를 잡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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