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다녀오면 엄마는 간식을 준비해주셨다. 언니랑 아빠는 저녁에야 들어왔기 때문에 점심과 저녁 사이 출출한 배를 채우는, 나만 누리는 특권이었을까?
특히 여름에는 맛있는 게 많았다.
토마토를 얇게 자른 뒤 엄마는 설탕을 뿌려주셨다. 그러면 동그랗고 얇은 토마토에 설탕이 적당히 들어가 맛있고 시원했다.
강원도에서 아빠 친구가 보내준 옥수수와 감자도 좋은 간식이 되었다. 고구마보다 감자를 더 좋아하는 나는 감자가 너무 맛있었다. 엄마는 껍질을 까서 간을 살짝 해주셨다. 감자가 다 익은 뒤 겉에 살짝 일어난 표면이 너무 맛있었다. 숟가락으로 먹기 전 간이 잘 밴 껍데기를 손으로 떼서 먹곤 했다. 집에서 캔 감자와는 확실히 달라서 이래서 강원도 감자가 유명한가보다 생각했다.
엄마가 미숫가루를 해주셨을 때도 그 한잔이 너무 시원하고 든든했다. 시원한 물에 설탕을 넣은 미숫가루. 마지막 가루가 다 나오지 않았을 때 조금 아쉬워서 그 후로는 마지막 마시기 전에 잔을 흔들어서 마시곤 했다.
엄마는 참외를 반으로 자른 뒤 다시 작게 잘라서 주셨다 외할머니는 길게 잘라주셨는데 참외를 자르는 것도 다른게 신기했다. 나는 참외 껍질을 다 깐 뒤 통째로 우적우적 씹어먹는걸 좋아했다. 가운데 부분이 부드럽고 옆에 하얀 부분이 얇아서 더 맛있게 느껴졌다. 언니는 “난 참외씨가 싫어. 자꾸 이빨에 껴”하고 말하며 가운데 부분을 포크로 밀어버린 뒤 하얀것만 먹었다.
아빠가 수박을 사오셨다. 수박을 반으로 자르고 반 개는 엄마가 화채를 만들자고 하셨다. 언니랑 나는 숟가락으로 수박을 펐다. 마지막에 하얀 부분이 나올때까지 열심히 펐다. 엄마는 후르츠 칵테일 캔을 까서 부으시고 사이다를 부으셨다. 나는 얼른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내왔다. 엄마가 예쁜 그릇에 한가득 퍼주셨다. 언니랑 나는 맛있게 퍼먹었다. 엄마가 큰 반찬통에 남은 화채를 넣으셨다. “이따가 저녁에 아빠오면 드리자”하고 말씀하셨다. 빈 수박 반통을 들고 나는 머리에 뒤집어 썼다. 그 모습을 보며 언니랑 엄마가 웃었다. 언니랑 나는 너무 맛있지만 화장실에 가고 싶을까봐 저녁에는 먹지 않았다.
저녁이면 엄마가 상을 차리시고 아빠는 그 상을 거실로 옮기셨다. 우리 4식구는 저녁에 모두 모여 앉아 밥을 먹었다. 경숙이는 늘 엄마 껌딱지였다. 항상 옆에서 종알종알 이야기도 많고 심부름을 거들었다. 무엇이든 잘 먹는 경숙이는 그래선지 엄마가 간보는 것도 자주 시키곤 했다
“엄마 깍두기 먹고 싶어”하고 말하면 엄마는 “그래”하고 말했지만 며칠 뒤에 올라올 때가 많았다.
“깍두기 먹고 싶다며 왜 안먹어?”
“먹고 있는데?”하고 말하는 적도 자주 있었다.
‘그때 먹고 싶었는데 지금은 먹고 싶지 않아졌어...‘
그냥 혼자있고 싶었다. 그래도 공부라도 계속해서 잘하면 엄마가 덜 우울하겠지 싶어서 공부도 열심히 했다.
어느날 경숙이가 매일 끼적이며 숨기는 일기장을 읽었다. 시골로 이사왔지만 나름 잘 지내려는 모습이 보였다. 한참을 읽고 있으니 “언니 일기장을 읽었다. 언니도 많이 힘든데 씩씩하게 잘 지내주고 있다. 나도 힘을 내야지”하고 써있었다.
밤에 자려고 누워있는 경숙이의 옆에 누웠다.
“야 너 내 일기 읽었냐?”
“왜? 안 읽었는데?”
“거짓말하지마. 니 일기장에서 다 봤어”
“언니 내 일기 읽었어?”
우리는 “일기 보지마. 앞으로는 보지마”하고 약속을 했다. 그 후로 경숙이는 일기장에 “언니 일기 읽고 있지? 보지마”라고 중간중간 써있었다
나는 작은 자물쇠가 있는 일기장으로 얼마뒤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