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은 밖에 있었다. 걸어서 몇 걸음 안되지만 화장실을 가려면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야 했기 때문에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쓰고 화장실을 가야 했다. 자기 전에 화장실에 갔지만 새벽에 화장실에 가는 건 최악이기 때문에 경숙이랑 나는 언제부턴가 물을 잘 안 마셨다.
겁이 많은 나는 밤에 화장실에 가는 게 너무 무서워서 경숙이에게 “화장실 같이 가자”하고 말하곤 했다. 그나마 소변은 서로 보고 오면 되는데 큰 일을 볼 때면 경숙이가 혼자 가버릴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나는 화장실 안에서 “너 밖에 있지? 안 갔지? 가면 죽어”하고 경숙이에게 계속 말을 시켰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게 “노래 불러봐”였다. 경숙이는 대답하기도 귀찮아하기 때문에 노래를 시켰다. 경숙이는 밖에서 어떤 때는 세게 걷다가 점점 작게 걸으며 집에 간척을 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숨어있다가 놀라게 하기도 했다. 경숙이는 하지만 단 한 번도 먼저 집에 간 적이 없었다. 내가 겁이 유독 많은 걸 알고 있기 때문일까?
가끔 경숙이는 궁금하다며 '전설의 고향'을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무서워서 못 보게 하려고 110V를 220V로 바꿔주는 플러그를 빼서 손에 쥐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러면 경숙이와 엄마는 "안 볼게. 그냥 줘"하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모두 '전설의 고향'을 볼 수 없었다.
마당이 흙이었기 때문에 비가 오는 날은 신발이 진흙투성이가 되는 걸 보고 엄마는 어디서 큰 돌을 주워오셨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는 길에 징검다리처럼 놓아두셨다. 나름 맘에 드셨는지 쳐다보며 웃기도 하셨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밤새 비가 많이 왔는지 마당이 진흙투성이였다. 엄마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데 눈이 부어있었다.
“엄마 울었어?”
“새벽에 화장실에 가려고 나왔는데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길은 진흙 투성이야. 징검다리 돌은 잘 보이지도 않고.. 그렇게 걷다가 넘어졌어. 근데 너무 속상해서 갑자기 눈물이 터진 거지. 애기처럼 운 거야. 근데 아빠가 엄마 보더니 ‘미안해’하더라고. 아빠가 단 한 번도 여기 오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이 없었는데... 그래서 둘이 끌어안고 펑펑 울었어. 울고 나니 좀 시원하네”하고 말하며 엄마는 웃어 보였다.
가끔 할머니에게 전화가 오면 “잘 지내지 그럼. 엄마 여기 엄청 예쁘고 공기도 좋아”하고 말하며 눈시울이 붉어지긴 했지만 항상 웃는 얼굴이던 엄마가 처음으로 울음이 터져버렸나 보다.
“경숙이한테는 얘기하지 마.”하고 엄마가 말했다.
“응”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경숙이는 알까? 한 살 차이래도 장녀의 비밀이 쌓여가는 것을.
- 우리 집 화장실 옆에는 수국이 피었다. 수국이 얼마나 많이 피었는지 화장실에 한 면을 다 덮을 정도였다. 화장실 옆에 수국이라니 너무 안 어울리지만 수국이 피었을 때의 화장실은 화장실이 특별해 보이게 만들었다. 수국은 멀리서 봐도 그 풍성함에, 아름다움에 감탄하지만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한 개의 작은 꽃까지 예뻤다. 또 수국은 색깔도 얼마나 예쁜지 수채화의 색을 담아서 한 가지 색이 아닌 여러 가지 색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수국은 하나의 존재만으로도 결혼식 부케처럼 보였다. 물을 좋아해서 그런지 비 온 뒤에는 더욱 아름답게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