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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은 엄마가 데리러 오면 좋겠어

by 맑은희망

최악의 조합, 비가 오는 날 그 공장 앞이다.

학교 가는 길에 있는 그 공장 앞은 항상 물이 고여있었다.

물론 물웅덩이야 여기저기 많지만 이 공장 앞은 물의 양도 많고 웅덩이의 크기도 컸다.

길을 걸어가다가 지나가는 차에 물이 튀면 온몸이 다 젖는다.

'사람이 걸어가고 있으면 좀 천천히 가야 하는 거 아닐까?'

나는 폭삭 물에 젖었지만 저만큼 떠난 차를 보며 '가다가 펑크나 나라'하고 젖은 몸을 털며 구시렁댔다.

그 후로는 그 길을 지나갈 때면 차가 오나 안 오나 살핀 뒤 서둘러 그 길을 건넜다.

웬만해서는 신발 안 양말까지 젖을 때도 많았다.


그날은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려고 나섰는데 비가 오고 있었다.

아침마다 일기예보를 보면서 엄마가 “오늘 비 온대 우산 가져가.”하고 말씀하시는데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못 들었다.

어떻게 집에 걸어서 가야 하나 내리는 비를 보며 고민했다


서울에서는 비가 오는 날 데리러 오는 부모님들도 있었다. 나는 가게들 처마밑으로 뛰어다니며 집으로 오곤 했는데 이곳은 집에 갈 때까지 아무런 가게가 없다. 그저 길 옆은 논과 밭이라 비를 피할 곳이 없다.

남자아이들은 이 비를 맞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비를 맞으니 더 재미있는지 웃으며 놀고 있었다.


엄마가 데리러 오면 좋겠다. 엄마가 우산을 들고 오면 얼마나 좋을까? 아빠가 차로 데리러 오면 얼마나 좋을까? 텔레비전을 보면 기사님이 태워다 주고 좋은 차 뒷자리에 타고 내리던데.. 차는커녕 한 번이라도 데리러 와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지간히 비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실내화 가방을 머리에 쓰고 달렸다. 달리다가 지쳐서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갔다.


집에 가는 길 밭에는 분주한 어른들이 보였다. 갑작스러운 비에 농사지은 것들이 젖지 않게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셨다. 어른들은 이 비를 맞으며 여태 일하고 계셨구나…


집에 와보니 엄마가 널어놓은 빨래들이 보였다. 빨래들을 걷어서 거실 바닥에 놓았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았다. 시골은 비 오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창가에 앉아서 비가 오는 모습을 한참을 쳐다봤다.

목말랐던 풀들이 더 살아난 느낌.


엄마는 비가 오는 날은 부침개를 해주셨다. 부추를 자르며 "부추 한 사발이 피 한 사발이래"하고 말씀하셨고 약간의 애호박과 오징어도 함께 넣으셨다. 엄마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한 국자 떠서 놓으셨다. 그리고 우리 집에 가장 얇은 숟가락으로 얇게 피셨다. 엄마는 꼭 프라이팬을 두 개를 사용하셨다. 그리고 프라이팬을 들고 살짝 흔드신 뒤 프라이팬의 손잡이를 잡고 부침개를 뒤집었다. 부침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의 요리이다. 물론 무엇이든 잘 먹지만 비가 오는 날 부침개는 왜 그리 맛있을까?

엄마는 부침개를 마름모 모양으로 잘라주실 때도 있고 피자모양으로 잘라주실 때도 있었다. 간장을 찍어먹어도 맛있고 김치랑 먹어도 맛있고 돌돌 말아서 먹어도 맛있고 식어서 먹어도 맛있었다.

엄마의 부침개면 우산을 가지고 오지 못하시는 건 금방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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