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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현이 Mar 14. 2022

생일파티 그 이후

고모, 큰아빠, 아빠. 

박 씨 성을 가진 삼 남매와 그들의 배우자와 자녀, 그리고 나의 할머니까지.

모두가 함께한 아빠의 행복한 생일 파티는 끝났다. 

날이 밝고 아침 일찍 부모님과 언니들은 출근했다. 


집에는 나와 할머니, 그리고 큰엄마 큰아빠, 고모 그리고 약간의 적막만이 남았다. 

고모는 적막을 깨고 조심스레 우리 엄마의 상황을 할머니께 전했다. 

할머니의 작은며느리, 나의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그 암은 치료가 어렵고, 설사 치료가 된다 해도 재발률이 높고 예후가 안 좋은 암이라고. 


 큰아빠는 할머니께 이제 나현이 소현이도 다 컸고, 며느리도 아프니 할머니의 고향 순천으로 내려가 자신과 함께 살자 권했다. 할머니는 완강히 거절했다. 그건 오히려 처절함이었다. 자신은 순천에서 분당으로 올라올 때, 이곳에서 죽어 뼈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노라 다짐했다고. 당신이 죽기 전엔 절대 다시 그 땅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고모는 할머니를 설득했다. 

항암치료가 시작되면 나현엄마 밥도 잘 못 먹고 힘들어할 텐데 맘 편히 쉴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겠다며. 

할머니는 고모의 그 말을 납득할 수 없었다. 

아픈 며느리를 두고 어떻게 떠나냐며, 당신이 집에 남아 밥을 차려줘야 한다 하셨다. 

고모는 그런 할머니가 답답했다. 왜 그렇게 아기처럼 자기 생각만 하냐며 화를 냈다. 

그리고 난 그저 방에서 그들의 대화를 띄엄띄엄 들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틈만 나면 눈물을 훔치셨다. 

당신이 너무 오래 살았다고 스스로의 인생을 비탄해하며 텅 빈 집에 혼자 남아 긴 하루를 견뎠다. 

와중에 할머니는 쉼 없이 일했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성남시에서 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에 나가 쓰레기를 줍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차리고.

낡은 스웨터를 풀어 목도리를 짜고. 또 풀어서 다시 짜고를 반복했다.  

그 하루 속에 할머니는 아파했다. 그녀의 몸은 낡은 노인의 것이었다. 


엄마 아빠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 전 반드시 할머니가 차린 아침을 먹어야 했다. 

할머니가 엄마의 병을 알게 된 다음날 아침, 여느 때와 같이 엄마 아빠는 할머니가 차린 아침을 먹고 있었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사과했다. 자기 때문에 네가 병든 것이 아니냐며,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셨고 자신이 너무 오래 살았다 스스로를 자책했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물었다.  


“너도 내가 내려가면 좋겠냐? 내가 내려가야 쓰겄냐?”


엄마는 답했다. 


“어머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하셔야죠.”


할머니는 그 말이 너무나 서운했다. 

이십여 년간 함께 살며 당신과 며느리는 그 흔한 고부 갈등 없이 너무나도 서로에게 진짜 가족이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며느리가 자신을 붙잡으며 필요로 한 길 바랬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너무 서운하다 말씀하시며 흐느끼셨다. 

아빠는 그 상황이 너무 고통스러웠고, 자신의 노모에게 도대체 아픈 사람에게 왜 그러냐며 버럭 화를 냈다. 

나의 엄마는 그 자리에서 큰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다. 

엄마는 자신의 시모에게 내려가라 할 수도, 같이 살자 할 수도 없었다. 

엄마가 그렇게 소리를 내어 우는 것은, 정말이지 함께한 시간 동안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 울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난 도무지 그 울음에 담긴 뜻과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다만 확실히 느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결코 딸과 엄마가 될 수 없다는 걸.


혹은 어쩌면 모든 인간관계는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걸 마주하는 건 너무나 아프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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