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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현이 Mar 14. 2022

아픈 며느리와 늙은 시어머니


엄마의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지금껏 현대의학에서 암은 죽을병이 아니고 극복될  있는 질병으로만 생각했는데, 암의 진짜 무서움은 치료라는 이름을  항암에 있었다.

일 년간 지속된 항암치료 동안 내가 보고 느끼고 사랑한 엄마는 몸속 암세포와 함께 사라졌다.

  이상 내가 알던 엄마는 없었다.


천사 같은 우리 엄마는  그런 힘든 병에 걸렸을까?


 엄마의 삶은 '바른 삶'의 표본이었다.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직장에 나가 일을 하고. 매일 열한 시에 잠드는. 술과 담배는 일절 하지 않고, 심지어 카페인이 함유된 커피, 녹차 등도 마시지 않으며 유해한 가공식품과 인스턴트식품은 입에 대지 않았다. 엄마는 이십 대부터 지금껏 건강한 식단과 규칙적 생활을 통해 일정한 체중을 유지했다. 항상 밝고 긍정적이었으며 자신의 삶과 가정과 직장에 늘 감사하며 만족해했다.

난 우리 엄마가, 그녀의 삶이 행복하다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엄마가  그런 병에 걸렸는지, 우린 도무지   없었다. 우린 엄마가 병에 걸리고 나서야, 그녀의 삶에 우리에게 미처 내비치지 않았던  스트레스가 있었음을 짐작해볼 뿐이었다. 수십 년을 일하는 엄마로 살아온 엄마는, 몸이 병들어서야 휴직을   있었다. 엄마는 우리가 성인이  이후  할머니가 잠든 늦은  퇴근했다. 그게 단순히 야근이 잦아서가 아니었다는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모두가 출근한  집엔 아픈 엄마와 늙은 할머니만이 남았다. 그리고    졸업전시 준비를 명분으로 아픈 엄마와 늙은 할머니가 있는 분당을 떠나 학교 앞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엄마의 아픔을  함께   없었다. 그럴 용기가 내겐 없었다. 다만 자주 엄마가 보고 싶었고 주말이면 매주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달라진 엄마를 볼수록 더 엄마가 보고 싶었다.


분당에 가면 할머니는 내게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난 그저 할머니의 얘길 들어줄 뿐이었다.


할머니는 당신이 직접 키우신 나에게 물었다. 묻고 또 물으셨다.


“너도 내가 내려가면 좋겠냐?”

할머니는 당신의 애교 많은 막내 손녀만은 자신의 편이 되어주길 바라셨다.


 할머니는 나이가 들수록 나를, 막내 손녀 소현이를 사랑했다. 집에 맛있는  있으면 언니들  먹게 숨겨뒀다 몰래 내게 주기도 했다. 그녀는 자기가 죽으면  아무도  울고  기뻐할 거라고, 오직 소현이만 슬퍼하며 울거라 말했다. 고모는 할머니가 너무 늙어 노망난 소릴 한다며 걱정했다.  


 할머니의 총명함이 빛바랠수록, 그녀는 자주 옛날 얘기를 꺼냈다.

내가 여섯 살쯤 되던 .  하루는 나와 할머니가 길을 걷고 있었는데, 어린 내가 할머니에게, 우리 집은 할머니 없으면 절대  된다며, 할머니 없으면 우리 엄마 일도 못하고 우린 밥도  먹는다며 말했다고 한다.  말을 하며 폴짝폴짝 뛰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그게 자신에게 너무나  위로가 되었다고. 늙은 할머니는  얘길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나도 그때가 기억난다. 할머니는 모든  낯선 도시의 생활에 깊은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두고  큰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품고 있었다. 할머니는 종종 나현언니와 내게 우리가 말을  들으면  싸서 다시 순천으로 내려가 버릴 거라 했다.

어린 나는 왠지 할머니가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할 것 같았다.

난 할머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그때의 난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렇지만 성인이 된 나는 두려웠다.

할머니가 정말로 순천으로 안 내려가고 평생 우리와 살게 될 것이, 그래서 우리 엄마가 더 힘들어질 것이 두려웠다.

어른이 된 난 할머니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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