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GoldstarTV, 삼성 필름 카메라, 소니 캠코더, 1997년, IMF. 남은 돌반지 하나 없는 그 세대에 태어난 나는 유독 어린 시절을 또렷이 기억한다. 추운 겨울 복도식 아파트에 울리던 엄마의 구두 소리와 문을 연 순간 새하얘진 엄마의 안경, 그 모든 내음을 기억한다.
내 최초의 기억, 사랑하는 엄마로 모든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1985년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녀는 공무원이 되었다. 그녀는 공직과 매우 잘 어울렸고 직업에 대한 만족감과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난 직감적으로 공무원이 그녀의 본래 꿈은 아니었다는 걸 알았으며 그녀의 어릴 적 꿈이 무엇이었는지 자주 묻곤 했다.
그녀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전라남도 해남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부족함 없이 자랐다. 그녀의 조부는 일본 유학을 하고 마을에 초등학교를 설립한 지식인이었으며 3남 4녀 전부를 각각 대학, 고등학교까지 보낸 당대로선 상당히 교육에 깨어있던 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의 장남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두 살이 되던 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녀의 어머니는 재가했다. 그렇게 그녀는 부모님이 아닌 조부모님 그리고 작은아버지와 고모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그러나 그녀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어떠한 결핍이나 부모님의 부재를 느끼진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어디 하나 모난 곳 없는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자랐다.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부모 없는 서러움을 느낀 건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중학교 3학년, 열여섯 살이었다. 학업 성적이 우수했던 그녀는 인문계 학교 진학 후 대학에 가고 싶었으나 당시 그녀 곁엔 학업을 지원해줄 부모님도, 조부모님도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작은아버지의 권유로 상고에 진학했다.
일하는 엄마를 둔 우리 집은 낮에 엄마가 집에 있는 집과 다르다는 걸 난 직감적으로 알았고 아주 어릴 때부터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아주 간혹 엄마가 평일 낮에 집에 있었다. 그런 날은 참관수업, 학예회, 운동회 등 행사가 있던 날이었다. 엄마는 휴가를 냈다고 했고 난 휴가는 정말 좋은 거라 생각했다.
하루는 유치원에서 아나바다 장터를 열어 아이들이 동네 주민들에게 물건을 파는 행사를 했다. 난 당연히 엄마가 휴가를 쓰고 오면 될 거라 생각했다. 직장인들이 휴가를 쓰는 건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라는 걸 알기엔 어린 나이었다.
때는 오월 가정의 달로 다른 사무실 다른 직원이 이미 학교 행사로 휴가를 내었고, 엄마는 업무 손실을 막기 위해 출근을 해야만 했다. 사실 동네 주민들에게 물건을 파는 행사에 엄마의 참석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으나, 나는 엄마가 꼭 와야 한다며 괜한 고집을 부렸다. 결국 엄마는 분당에서 광화문까지 출근했다가 오후에 반차를 내고 행사가 다 끝나갈 무렵 얼굴을 비췄다.
어린 시절 난 부족함 없이 자랐음에도 우리 집이 남들보다 가난해서 엄마가 돈을 벌러 나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엄마에게 종종 우리 집이 부자인지 물었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우린 마음이 부자라고 했다. 난 그 대답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엄마가 일을 한다는 건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것의 반증으로 느껴졌지만 동시에 난 일하는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내가 중학생이 됐을 무렵, 우리 집이 가난하지 않다는 걸 알만큼 자랐을 때 , 하루는 엄마가 내게 본인이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으면 어떨 것 같냐 물었다. 난 엄마가 내게 미안한 마음에 그런 얘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난 엄마가 일하는 게 자랑스럽고 내가 배우고 싶은 거 맘대로 배울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 말을 하던 엄마의 얼굴은 매우 지쳐 보였다.
엄마는 한 번도 직장생활이 힘들단 얘기를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대학에 가고 분당에서 서울까지 통학을 하며 엄마의 출퇴근이 참 고됐겠구나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참 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엄마가 집을 나서는 이유가 비단 돈을 벌기 위해서만이 아니구나를 알게 되었다.
스무 살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유방암이라는 병을 진단받기 전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그녀의 몸에 암세포가 만져질 정도로 자라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는 쉴 수 있었다.
엄마의 암 진단 이후 문득 과거 엄마가 내게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유난히 지친 모습으로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을 그만두면 어떨 것 같냐 물었던 엄마. 그때 엄마는 어떤 대답을 듣고 싶었을까. 그리고 나는 왜 엄마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어쩌면 알면서도 내 삶이 바뀔 수 있다는 이기심에 애써 엄마의 마음을 외면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