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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현이 Apr 14. 2021

천사 며느리가 병들었다

 방문 밖으로 아침부터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이내 엄마가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어서 일어나 짐 나르는 것을 도와야 한단다. 밖으로 나가보니 순천에서 올라온 큰아빠와 사촌 오빠가 정체불명의 보따리를 끊임없이 나르고 있었다.

  큰아빠의 화물차 뒷칸을 다 비우고 나니 이제는 채울 시간이다. 할머니가 바리바리 싸 둔 옷가지, 화분, 반찬 등 빼낸 짐보다 싣는 짐이 더 많다. 순천에서 분당까지. 막히지 않으면 편도 세 시간 삼십 분. 그 오랜 시간을 실려온 짐들은 주방 다목적실에 켜켜이 쌓였다. 놀랍지도 않다. 서로 오고 가는 정만큼 순천과 분당 사이 오가는 보따리는 셀 수 없다.


 아빠의 생일이다. 삼 남매 중 막내인 우리 아빠. 언니들이 주방에서 열심히 밥을 한다. 생일상 메뉴는 로제 파스타와 샐러드. 그리고 고모가 한 잡채를 곁들인다. 남동생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순천에서 큰아빠와 큰엄마가 올라오셨다. 모두 같이 모여 식사를 맛있게 하고 케이크에 촛불을 분다. 마치 영화에 나올법한 삼대가 어우러진 화목한 대가족의 정경이다.

 

사실 우리 아빠는 막내가 아니었다. 아래로 동생이 둘이 더 있었는데 한 명은 태어나고 얼마 안 되어 죽었고 아빠 바로 아래 남동생은 아빠가 대학생 시절 죽었다고 한다. 아빠는 이십 대를 회상하며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유는 묻지 못했지만 동생이 죽고 이후 몇 년 뒤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짐작만 해본다.  여하튼 그렇게 남은 삼 남매와 그들의 어머니, 곧 나의 할머니는 그 무엇보다 가족과 형제간 우애를 가장 중시하게 되었다.

 

 박가네가 이렇듯 화목한 가정을 지킬 수 있었던 데엔 박 씨가 아닌 이 씨 성을 가진 며느리의 혁혁한 공이 있었다. 바로 우리 엄마다. 우리 할머니는 엄마를 천사 며느리라고 칭한다. 이십 년간 시어머니와 함께 살며 고부갈등 한번 없었고, 매번 가족들의 생일과 환갑 그리고 퇴임을 미리 챙기는 아주 센스 있는 며느리다.

 할머니의 팔순에는 사촌 모두 동원하여 관광버스 한 대를 대절해 제주도로 여행을 갔고. 작은할아버지 퇴직에는 가족 다 함께 하와이 여행을 갔다. 시댁 식구들과 함께하는 해외여행이라니. 누가 들으면 놀랄 이야기인데 엄마는 먼저 나서 여행을 기획하고 비행기표며 여행 숙소며 혼자 다 예약했다.


 그런 엄마가 암에 걸렸다.

그리고 영화에서나 볼법한 우리 가족에게 더욱 영화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며느리의 병환을 시발점 삼아 각자 마음에 담아온 가족에 대한 상처와 인생에 대한 회한 숨겨진 삼 남매와 어머니 사이의 복잡한 관계들이 아문 상처를 비집고 드러났다.


 이 모든 건 지난 한 해 동안 일어난 일이다.

나는 모든 걸  관찰하며 그들 모두를 사랑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기록해주고 싶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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