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초2까지는 공부방을 포함해 본인이 하고 싶은 과목과 엄마 생각에 필요한 과목 학원들을 여럿 다녔다.
하지만 여러 가지 학원 스케줄들을 소화할수록 점점 체력은 달리고 아이가 집에서 짜증만 내며 숙제도 급급하게 해 갔고 심지어 본인이 좋아하는 책 읽은 시간조차 부족한 모습을 보고 이건 다니다 싶어 모든 걸 중단했다. 그게 작년 11월 이야기다.
그렇게 초3이 된 올해 1년은 피아노, 태권도, 수영, 미술 같은 음미체 위주로 즐겁게 살았다. 그 결과 피아노는 체르니 100을 마무리 해가는 중이며 태권도는 1품과 줄넘기 자격증을 땄고, 수영은 중급반 평영을, 미술에서는 초급이긴 해도 매주 다양한 기법들을 배우고 있다.
도서관에서 매주 책을 빌려오며 줄글책에 꽤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 당근과 단지 내 무료 나눔도 잘 이용해서 좋은 책을 열심히 들이고읽었다.
되돌아보니 학습적인 부담을 좀 내려놓고 꽤 재밌게 보낸 한 해 였다.
# 수포자가 많이 나오는 초4를 앞두고
이제 곧 다가올 예비 초4 겨울방학을 앞두고 초등 저학년이 아닌 고학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이니 수학만큼은 학원에서 시작해야겠다 싶었다. 특히 수포자가 많이 나오는 시기가 초4라고 하는 것처럼 미리 맷집을 키워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공부로 1년을 해보니 스스로 문제집을 챙겨 풀어가는 걸 습관화하기가 가장 어려웠다. 엄마인 내가 잔소리하기도 하고 혼자 체크리스트도 만들어보고 용돈으로 연결시켜보기도 하는 등 여러 방법을 쓰며 안간힘을 썼지만 속시원히 성공했다 말하긴 솔직히 어렵다.
마치 유튜브에 수많은 훌륭한 홈트 영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운동하기 힘든 것처럼. 저렴한 단지 헬스장은 끊어놓고도 쉽게 외면하는 것처럼 말이다.
거금의 비싼 돈을 들여 개인 PT라도 잡아둬야 돈 날리기 아까워서라도 무거운 몸을 일으켜 억지로 운동하러 나가게 되는 원리와 비슷하다.
아이가 학교에서 수학 단원 평가를 보면 70~90점 사이를 오가며 아주 잘하지도 아주 못하지도 않은 평균 점수를 받아오는데 아이는 스스로 나쁘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아 이참에 주제파악을 좀 세게 해 보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 멍청하게 구구단도 못 풀었어
수학을 스스로 가장 못한다고 여겨 수학에 대해 유독 겁도 많고 자신감이 없는 아이라 레벨테스트를 보러 가기 전 긴장을 많이 했다. 어차피 모르니까 배우러 가는 거라고 다독였고 아이도 자기는 가장 기초반에 들어갈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실제 레벨테스트는 1시간에 40문제 정도 3학년 전범위를 포함했다. 기본부터 심화까지 골고루 섞여있었고 쉽지 않은 편이었던 것 같다.
시험을 마치고 나온 아이는 예상대로 얼굴이 사색이 돼있었다. 구구단도 못 풀만틈 잔뜩 긴장했다고 말했다. 손이 축축해져 땀을 흥건히 흘린 채로 자기 스스로 너무 멍청한 것 같다며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궜다.
원장 선생님은 매일 구구단을 거꾸로 외우고 랜덤으로 퀴즈 게임하듯 놀아달라고 엄마인 내게 숙제를 주셨다. 지금도 자기 전에 하는데 그래도 첫날보다 실력이 많이 늘었다.
아이는 레벨테스트를 보고 와서 며칠 동안 스스로의 실력에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혼자 울기도 하며 속상해하길래 괜찮다고 위로했지만 그것 또한 아이 스스로 감내할 부분이다 싶었다. 한참 생각하더니 아이는 이번에 학원 다니면서 자기가 더 많이 배워야겠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원래 학원 레테는 어렵게 내는 걸 알고 있어서 난 별 신경을 쓰진 않았지만 아이에게는 의도치 않게 좀 극단적인(?) 메타인지 효과를 얻었다.
자신감 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속상했지만 이제는 고통스럽더라도 그 보호막들을 뚫고 나와서 자신이 굳은살이 배기도록 공부해 가며 성장의 걸음마를 시작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학 문제를 읽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 이해가 되는데 그걸 수학적으로 푸는 걸 모르겠다는 아이의 답이었다. 문해력이 아주 떨어지지는 않으니 문제를 이해하는 데는 연습하면 속도가 붙을 거라고, 그동안 책을 많이 읽고 좋아했으니 넌 분명 장점이 있을 거라고 격려했다.
그래도 10살 인생 첫 레벨 테스트를 포기하지 않고 잘 해냈으니 칭찬받아 마땅하다.이제 개강 후 쏟아질 숙제들과 개념들을 지금처럼 아이가 포기하지않고 꼭꼭 씹어서 잘 소화해내길 바라는 게 엄마의 마음이다. 어디까지 선행했고 몇 점을 맞았고 무슨반으로 레벨업 했는가보다 더 중요하다.
맨날 쉽고 재밌는 것만 하며 살 수 없다는 것과 못하는 걸 무조건 피하지 말고 도전하고 연습해서 잘하게 되면 재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가 지혜롭게 배워가길 바란다.